"저 좀 보호해주세요".. 신변보호 요청 봇물 난감한 경찰

황윤태 기자 2019. 11. 2.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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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8월까지 9086건 보호조치


경찰은 지난 3월 말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고(故) 장자연씨 사건의 증인을 자처한 배우 윤지오(본명 윤애영·32)씨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위치추적장치 겸 비상호출 스마트워치가 작동되지 않았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그러자 일부 네티즌을 중심으로 ‘중요한 증인에 대해 신변보호 하나 제대로 못하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윤씨는 현재 후원금 사기 의혹 등으로 수사 대상이 되는 등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당시 일로 ‘경찰에 요청하면 신변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의 뇌리에 남았다.

실제로 최근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해 도움을 받는 경우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경찰이 시민의 신변보호 요청을 받았을 때 이를 받아들이는 확률은 100%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누구나 꼭 필요한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작 보호조치가 필요한 이들이 소외되고 경찰력이 낭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맞서 범죄 예방을 위해서라면 최대한 많이 신변보호조치를 제공하는게 좋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국민일보가 경찰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8월 말까지 경찰은 신변보호조치를 9086건 실시했다. 2015년 1105건, 2016년의 4912건, 2017년 6889건, 2018년 9442건으로 매우 가파른 증가 속도를 보인다. 더욱 인상적인 건 신청 대비 실시 비율이다. 최근 3년간 이 비율은 모두 99%가 넘는다. 신변보호조치를 요청하면 경찰이 거의 모두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이후 성범죄 피해자들이 적극적인 보호를 요청하면서 실시 건수가 급증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지난해 미투운동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찾는 경우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신변보호조치는 범죄 피해자나 신고자가 가해자의 보복으로 인해 생명과 신체의 피해가 우려될 경우 경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조치다. ‘버닝썬 사태’의 최초 신고자인 김상교(28)씨도 신변보호조치를 받았다. 조치가 실시되면 경찰은 요청자의 위험 정도에 따라 임시숙소를 제공하거나 보호자의 동선을 따라가는 맞춤형 순찰 등 10가지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마트워치 등 경찰이 즉각적으로 출동할 수 있는 장비도 지급한다.

범죄 신고자나 피해자가 신변보호조치를 신청하면 관할 경찰서는 ‘신변보호심사위원회’를 꾸려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위원장은 해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부서의 과장급 경찰관이 맡는다. 성폭력으로 인해 신변보호를 요청한 경우에는 여성청소년과장이, 협박에 시달리고 있는 신청자의 심사는 형사과장이 위원장을 맡는다. 이밖에도 해당 사건을 수사하는 담당 수사관과 신청자의 관할 지구대장, 112상황실장, 청문감사관 등 6~7명이 모여 신변보호조치 실시 여부를 결정한다. 사안이 중요하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경찰서장이 직접 심사위원회를 여는 경우도 있다. 심사위원회에서 실시를 결정하면 경찰은 즉시 최대 10개 프로그램을 가동해 신청자를 보호한다.

경찰의 신변보호조치는 범죄의 위협이 분명할 때는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3월 아파트 층간 소음을 호소하며 시청과 주민센터에 진정을 제기했던 50대 여성은 윗집 남성이 ‘공무원이 우리집을 조사하는 것이 불쾌하다’며 식칼이나 각목을 들고 복도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경찰은 집 근처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고 스마트워치를 제공했다.

하지만 사소한 이유로 신변보호를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수도권의 한 지구대 순찰팀장은 “‘자신이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고 있다’거나 ‘원룸 복도에 남자 여러 명이 우리 집을 감시하고 있다’며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경우 실제 출동하면 아무 위협도 없어 난감할 때가 있다”면서 “야간이나 주말 신고가 몰리는 시점에 신변보호 요청이 접수되면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서울 한 경찰서의 여성청소년과 경찰관은 “신변보호심사위에서 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의했는데 다시 신청하는 경우 난감하다”면서도 “신변보호 신청자에게 미온적으로 대응했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어 위원회도 최대한 승인하는 방향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 내에서는 최대한 많은 조치가 시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의 한 계장급 경찰관은 “강력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조치 시행 자체가 추가 사건을 예방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출동횟수나 사안의 중요성, 입건 여부 등에 따라 단계적으로 조치를 적용하는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관은 “성폭력의 경우에는 2차 가해의 소지가 다분하므로 수사관들이 오히려 신변보호조치를 권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성폭력으로 인한 신변보호는 최근 3년간 662건에서 1915건으로 3배 넘게 늘었다. 올해 신변보호조치 신청자도 여성(7935명)이 남성(1151명)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문가들은 효율적인 신변보호조치를 위해서는 신변보호심사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신이철 원광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은 사소한 이유로 신변보호 요청을 반려했다가 큰 사건이 날 경우에 대한 부담감이 있어 대부분 신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심사위에서 이 부분을 가려내 현장의 짐을 덜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악성민원과 긴급한 신변보호 요청을 가려내 경찰력의 낭비를 줄이는 것이 신변보호심사위의 역할 중 하나”라며 “신변보호를 요청한 사안이 얼마나 긴급한지에 따라 단계적으로 조치의 수준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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