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없게 생겼네" 악플 범인 잡고보니 "두 딸 아빠입니다"

이태윤 2019. 10. 2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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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 겪는다고 알려진 악성댓글(악플)이 일반인도 공격하고 있다. 서울에 사는 박모(26)씨는 3년 간 악플에 시달리다가 최근 변호사 상담까지 받았다. [박씨 SNS 캡처]
“야 성형쟁이 찔리냐?”

대학 졸업 후 최근 창업한 박모(26)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달리는 악성 댓글(악플)에 3년간 시달리다가 최근 변호사에게 법률 상담을 받았다.

악플이 달리기 시작한 건 지난 2016년부터였다. SNS에 모르는 아이디로 “성괴(성형한 괴물) 주제에” “필러 맞고 자연미인인 척하냐” 등 외모를 지적하는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상대를 차단해도 그때뿐이었다. 악플러는 계속 가짜계정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외모 비하 댓글을 달고 개인 메시지로 욕설을 보냈다.

성형한 적이 없는 박씨가 악플러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악플러는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박씨가 중·고등학교 시절 후배를 괴롭힌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허위사실을 퍼뜨렸다. “A학교 14학번 최모씨 네가 괴롭혔잖아”라며 구체적인 이름까지 언급했다. 박씨는 최씨가 누군지도 몰랐다. 악플러는 “박씨의 실체를 알려주겠다”며 별도의 SNS 계정까지 운영했다.
악플에 시달리던 박모(26)씨가 악플러에게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악플러는 허위사실 유포를 멈추지 않았다. [박씨 SNS 캡처]

박씨가 최근 창업하자 “취업 못 해서 창업했냐” 등 인신공격도 이어졌다. 박씨는 “지인들이 SNS 보고 사실이냐고 연락 올 때마다 스트레스 받아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악플러가 누군지 알고 싶었던 박씨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악플러 아이디를 신고했지만 해외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라서 도와줄 수 없다는 의견만 받았다고 한다. 1년에 한두 달 정도 악플을 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악플러를 경찰에 신고하기도 어려웠다고 했다. 박씨는 “주변 지인도 의심하게 되고 해코지당할까 봐 공포에 빠진 채로 살았다”고 말했다.

신문에 페미니즘 관련 글을 썼던 홍모씨도 지속적인 악플로 힘든 시간을 겪었다. 홍씨의 개인 계정까지 찾아온 악플러들은 근거 없는 욕설부터 “남자 못 만나게 생겼다”는 등 외모 비하, 성희롱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홍씨는 증거를 저장해 경찰에 신고했다. 노골적인 성희롱 댓글을 반복하던 범인은 40대 남성이었다. 홍씨는 “범인이 작성한 반성문 첫 줄은 ‘제가 두 딸의 아빠입니다’였다”며 “지속해서 악플 당하며 극단적 생각마저 했는데 허무한 감정이 들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악플’ 일반인도 공격…매년 1만건 넘게 신고
흔히 연예인이 겪는다고 알려진 악플 피해가 일반인에게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서울대 집회 참여했던 주최 측도 부모 욕설이나 개인 신상털이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일부 악플러는 주최 측의 여자친구 SNS까지 찾아가 악플을 남겼다고 한다.

사이버 모욕죄 및 명예훼손 현황.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2014년 8880건이던 사이버 모욕죄는 2015년 1만5043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난 후 2018년까지 꾸준히 1만30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올해도 지난 9월까지 발생 건수가 1만2000건을 넘었다.

사이버수사팀에서 일하는 경찰 관계자는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무선 IP로 접속하거나 VPN(virtual private network)과 같은 우회접속 서비스를 사용할 경우 추적이 까다롭다”며 “외국 사이트의 경우 수사 협조 요청을 보내도 시간이 오래 걸려 피해자들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사이버 모욕죄와 명예훼손의 검거율은 70% 정도다.


“악플은 범죄, 실형도 가능”
전문가들은 악플이 그 내용에 따라 다양한 혐의 적용이 가능한 범죄라고 입을 모았다. 법무법인 디라이트의 안희철 변호사는 “악플을 달아서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명예훼손죄 등 혐의로 처벌될 수 있고, 경멸적인 감정 또는 욕설 등이 있다면 모욕죄 성립도 가능하다”며 “내용에 따라 수차례 반복해서 올렸다면 실형까지도 선고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악플은 범죄고 심할 경우 실형도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러스트=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를 보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만일 사실이 아닌 거짓 정보를 유포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처벌 강도가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악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증거 수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댓글을 단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많이 수집하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법무법인 소백 최원재 변호사는 “화면에 상대방의 글뿐 아니라 아이피, 아이디 등 가능한 모든 게 보이도록 캡쳐해야 한다”며 “증거를 많이 수집해 악플의 빈도가 잦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다면 사건 진행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미리 사건의 개요에 대한 진술서 내용까지 작성하고 상대가 지칭하는 것이 본인이라는 점, 제3자가 본인임을 알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관련 정황을 꼼꼼히 담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악플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을 많이 받았다면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안 변호사는 “형사고소를 하면 그 과정에서 합의금이나 위자료를 받는 방식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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