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안나온 지도부 책임론..반란 좌절된 모래알 민주당 초선

임장혁 2019. 10. 26. 06: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고된 봉기는 없었다. 25일 오후에 있었던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 이야기다. 의원총회를 앞두고 민주당 내에선 조응천 의원을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이 ‘조국 사태’ 수습과 관련해 지도부 쇄신론 또는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후보자 지명(8월 9일)부터 사퇴(10월 14일)까지 두 달여 간의 논란 끝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지만 시정연설(22일)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당 지도부조차 책임과 성찰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 초선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이철희·표창원 의원 등의 불출마 선언이 이어진 데다 이해찬 대표가 러시아 방문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여서 자유로운 발언이 가능할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조 의원이 주변 여러 의원에게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익명 원한 초선 의원)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이날 의원총회에서 지도부 책임론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의원총회 막바지에 마이크를 잡은 조 의원은 "검찰개혁과 공수처를 조국의 레거시(legacyㆍ유산)로 연결시켜 조국을 계속 소환하는 게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 민생 문제에 집중하고 검찰개혁은 남은 절차에 따라 가면 되지 않느냐"는 취지의 제안을 남기는 선에서 발언을 끝냈다고 한다. 초선들은 왜 봉기하지 못했을까.


문재인 지지자들에 대한 공포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뉴스1]
이철희 의원[연합뉴스]
금태섭 의원. 최승식 기자
‘조국 대전’ 과정에서 ‘조국 수호’ 단일 대오를 강조해 온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냈던 건 초선 3인방(금태섭·김해영·박용진)이었다. 이들은 발언 이후 하나같이 문재인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들로부터 문자와 전화 테러에 시달려야 했다. 박 의원은 8월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딸에 대한 논문, 입학 관련 의혹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면 최악의 상황으로 갈 것”이라고 말한 게, 김해영 의원은 같은 달 23일 이해찬 대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조 후보자의 딸과 관련한 의혹이, 적법 여부를 떠나 많은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던 게 화근이 됐다. 박 의원은 업무용 휴대전화를 추가로 마련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지난달 6일 인사청문회에서 유일하게 임명 반대 입장을 피력한 금태섭 의원도 수천통의 비난성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세 사람의 수난을 지켜본 다른 초선 의원은 “지도부를 만류하고 싶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세 사람이 겪는 수난을 보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비공개 의총이라지만 혼자 총대를 메면 곧 다 알려질 텐데 지지자들의 감성에 맞설 용기 있는 의원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모래알 초선

지난 24일 기자들에게 불출마 배경을 설명하는 표창원 의원. 그는 불출마의 변에서 ’사상 최악 20대 국회,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뉴스1]
국회 법제사법위원으로 ‘조국 사수’ 대열에 섰던 두 사람의 초선 의원은 결국 불출마 선언으로 하고 싶었던 말들을 대신했다. 이철희 의원은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정치는 결국 여야, 국민까지 모두를 패자로 만들 뿐”이라는 말을 남겼고 표창원 의원은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텼지만 법사위는 지옥 같았다”고 털어놨다.

처음 국회를 경험한 초선들의 복잡한 심사가 집단적 분노나 불만으로 표출되기보다는 개인적 좌절과 포기로 이어지는 게 민주당 분위기다. 수도권 지역의 한 초선의원은 “의미 있는 흐름을 만드는 방향으로 의기투합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면서도 “‘초선 불출마’ 행렬이 오히려 쇄신론 확산을 차단하는 효과를 낳는 거 같아 더 안타깝다”고 말했다. 재선 도전 의사를 밝힌 사람 중에 조 전 장관 사퇴 이후에도 지도부와 공개적으로 맞서는 사람은 금태섭 의원뿐이다. 지도부는 ‘조국 사태’로 인한 수세 국면 전환용으로 ‘공수처법 우선 처리’를 들고 나왔지만 금 의원은 지난 21일에도 보수단체가 개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고위공직자만을 대상으로 수사권과 기소권, 두 가지를 모두 가진 기관이 세계 어느 국가에도 없다”고 비판했다. 조응천·박용진 의원도 공수처법의 문제점에 대해 금 의원과 교감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개적 문제 제기에 나서진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20대 초선들이 유독 모래알 같다”(핵심 당직자)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지역에서 고락을 같이하던 부산·경남 의원들끼리, ‘더벤져스’라는 별칭이 붙었던 문재인 당 대표 시절 영입 인사들끼리, 비문 초선들 몇몇끼리는 종종 어울리지만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만한 초선 그룹은 형성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더벤져스’의 일원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워낙 개성들이 강해서인지 우리끼리도 잘 뭉쳐지진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엔 지도부에 불만을 가진 10여명이 모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그러나 이 모임의 구성원으로 알려진 한 초선 의원은 “몇몇이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던 자리가 확대 해석된 것”이라며 “총의를 모아서 집단행동을 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 아니다”고 말했다.


강경한 중진들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뉴스1]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25일 의원총회에선 조국 국면 대응에 관한 성찰과 당 쇄신이 아닌 지도부가 야당과 싸울 새로운 전선으로 들고나온 ‘군 계엄령 문건’ 이야기가 주된 주제였다. 국방위원인 도종환 의원의 발제에 “문제가 심각하다”며 대야 강경 투쟁론에 힘을 보탠 건 이석현(6선)·설훈·김진표(이상 4선) 의원 등 중진들이었다. 조국 대전 기간에도 이석현·이종걸(5선)·설훈 의원 등 일부 중진들은 싸움을 말리기보다는 붙이는 ‘독전(督戰)조’ 역할을 톡톡히 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의 보좌관은 “과거 여야 갈등이 심각할 때는 항상 호남 중진들로부터 온건론이 제기되곤 했는데 지금은 호남 중진들이 다 탈당해 없다”며 “일부 중진들은 ‘중진 용퇴론’ 때문에라도 강경파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여야의 타협을 강조해 오던 원혜영(5선) 의원은 이미 주변에 불출마 의사를 전한 상태다. 김부겸(4선) 의원 등의 움직임은 지도부에 개인적 의견을 전달하는 정도다. 충청 지역구의 한 의원은 “지도부도 강경파인 데다 중진들이 무한 갈등을 조장하는 분위기다 보니 초선들이 소신을 피력할 공간이 비좁다”고 말했다.

임장혁·하준호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