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이틀만에 시효 다한 마지막 '조국 수호' 집회 무엇을 남겼나
조국 가족 향해선 범죄도 지지
검찰 개혁 내세운 조국 수호 집회
팬덤·거짓말 가득한 그날 서초동
서초동 9차 촛불집회의 한복판에서


팬덤


누군가 높이 쳐든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법무부 장관 얼굴 펜화가 그려진 피켓을 따라 가보니 ‘이재명 경기도지사 상고심 무죄 범국민대책위’가 무죄 청원 서명을 받고 있었다. 메인도로는 조국 잔치였지만 양쪽 보도는 이재명 무대라 할 정도로 서명 부스가 많았다. 그런가 하면 지난 8차 집회 때 ‘세월호참사전면재수사’라는 노란색 대형 피켓을 앞세워 메인 무대 맨 앞줄에 앉았던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이번엔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지낸 정청래 마포을지역위원장과 함께 재조사 서명을 받고 있었다.


그래도 이날의 주인공은 역시 조국이었다. 무대 위 스크린에서는 그의 웃는 얼굴 동영상이 반복됐고 인파 속에서는 그의 얼굴 사진을 박아넣은 ‘조국 수호’ 피켓이 물결쳤다. 개그맨 강성범, 서울대 우희종 교수 등이 무대에 서서 조국 수호 연설을 했다. 대검찰청 외벽엔 ‘당신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라는 빔 프로젝트가 반복됐다. 아이돌 스타 못지않은 팬덤의 향연이었다.
![SNS에 돌아다니는 조국 수호 집회 사진. '미남보존협회' 명의의 현수막과 피켓이 많이 보인다. [페이스북 캡처]](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10/15/joongang/20191015091147099rcbx.jpg)
팬덤의 실체는 딱 둘로 나뉜다. 하나는 그의 외모, 따른 하나는 문프(문 대통령) 지지의 연장선이다. SNS에서 숱하게 봤던 ‘전국미남보존협회’ 명의의 ‘힘내라 조국’ 현수막과 깃발이 나부끼는 건 그의 외모에서 기인한다. 그가 뭘 했는지, 또 뭘 할 수 있는지보다 그의 외모에 끌린 팬덤은 증거 인멸 범죄의 피고인인 그의 아내 정경심 교수와 대학·대학원, 의전원까지 모두 가짜 스펙으로 들어간 그의 딸 조민씨로까지 확장됐다.
이날 집회 사회를 맡은 개그맨 노정렬은 검찰의 비공개 소환을 비롯해 조사 시간보다 조서 열람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온갖 특혜를 받은 정 교수를 놓고 거꾸로 “떡검들이 초미세먼지털이식으로 망신주고 인격모독했다”며 “정 교수님 힘내세요 사랑합니다”를 선창했다. 지난 집회 땐 생일날 온 가족이 모여 생일 파티를 못 한 조민씨가 불쌍하다며 생일노래 떼창까지 나왔다고 한다.
기자들이 28세인 조민씨를 밤 10시에 찾아갔다고 인권유린이라며 목청을 높이는 이 사람들은 불과 3년 전 고작 20살짜리 젊은 여성에게 가해진 온갖 모진 일엔 환호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두 돌 안 된 아이와 함께 덴마크에 머물던 최순실의 딸 정유라 얘기다. 그를 좇던 기자는 한밤에 정유라를 발견하자 불법체류로 현지경찰에 고발했고, 불법체류가 아니었던 정씨는 현지 경찰에 구금당한 후 특검의 긴박한 범죄인인도 청구 요구로 감옥에 구금됐다 결국 수개월 만에 수갑을 찬 채 귀국해 포토라인에 섰다. 입시 비리로 이미 고교 졸업 자격까지 박탈된 그에게 당시 특검은 입시비리에 따른 업무 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도 윽박질렀다. 입시 비리의 기획자가 아닌 수혜자라는 점에서 조민씨와 똑같은 상황이었는데 검찰과 언론에서 받은 대우는 이렇게 달랐다. 누구도 인권을 말하지 않았다.
거짓말

![지난 10월 5일 열렸던 8차 서초 집회. [유튜브 캡처]](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10/15/joongang/20191015091148336fnba.jpg)

최인훈이 『광장』을 처음 쓴 1960년의 그 광장으로 타임머신을 탄듯한 착각에 빠질 지경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월북한 후 노동신문 본사 편집부에서 근무하게 된 이명준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그는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했다는 이유로 자아비판대에 서서 “사실을 보도한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추궁당한다. 편집장은 “인민의 적개심을 고무시키는 방향으로 취사선택이 가해져야지 무책임한 사실의 나열을 일삼는 건 자본주의 신문”이라면서 “(사실을 옮기면) 인민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째 딱 지금의 우리 상황 같지 않나. 조지 오웰이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선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이라고 말한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을 지낸 사회학자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은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이지, 저마다의 사실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게 일반인의 상식이지만 서초 집회에선 이런 상식은 통하지 않았다. 그저 조국 수호만 앵무새처럼 외쳤다.
서초역 4번 출구에서부터 시작해 반포대로 저 아래 누에다리 너머 조국 사퇴 집회를 거쳐 우리공화당의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집회’를 끝으로 이날 서초 집회 참관을 마쳤다. 조국 수호만 있고 검찰 개혁은 없는 검찰 개혁 집회, 처음부터 명분이 없었던 이 집회를 기다리고 있던 건 그땐 몰랐지만 조국의 사퇴였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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