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발견] 미드 '체르노빌'의 공포, 후쿠시마에서 되풀이된다면
1986년 원전 파국을 키운 '거짓의 대가'
![미드 체르노빌 [사진 HBO]](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9/21/joongang/20190921080100673nxwf.jpg)
이미 입소문에 본 사람이 많지만 오는 22일(현지시간) 제71회 에미상 결과가 나오면 또 한번 붐이 일 전망이다. 지난 5월 미국 HBO에서 방송된 ‘체르노빌’은 최우수 미니시리즈 등 1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있다. 지난 14~15일 사전행사 격으로 열린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상’(Creative Arts Emmy Awards)에서도 실력을 발휘했다. TV 프로그램의 효과, 음악, 캐스팅, 디자이너 등 기술 부문을 대상으로 하는 이 시상식에서 총 10개 부분을 수상한 ‘왕좌의 게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7개 부문을 휩쓸었다.
![1986년 4월 구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룬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 미국 케이블 네트워크 HBO가 처음으로 영국 SKY와 손잡고 공동제작해 기록적인 시청률과 함께 격찬을 받았다. [사진 HBO]](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9/21/joongang/20190921080101857unar.jpg)
북유럽 특유의 감성이 배어서일까. ‘체르노빌’에는 희한하리만치 ‘음악’이 거의 없다. 리투아니아에서 로케이션 촬영된 화면을 지배하는 건 오로지 음산한 금속성 음향 혹은 서늘한 바람소리, 물소리 등이다. ‘픽션’이라는 걸 잊게 만드는 실존 인물들의 다큐멘터리급 사투가 이어진다. 그리고 묵직한 질문.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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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 시청률 기록 깬 화제작
HBO가 처음으로 영국 SKY와 손잡고 공동제작한 ‘체르노빌’은 당시 사고 조사위원이었던 실존 인물 발레리 레가소프 소장이 1988년 4월 26일 1시 23분 경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드라마는 2년과 1분 전으로 돌아간다. 1부 제목 ‘1:23:45’는 노심 폭발사고가 발생한 1시 23분 45초를 뜻한다. 프리피야트 시내 한 소방관의 아내가 창문 너머 멀리서 피어오르는 구름과 섬광을 봤을 때 비극은 이미 시작됐다.
그로부터 시청자는 악몽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타게 된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난이 벌어졌는데 드라마 속 인물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무지 일색이다. 부조리한 지휘 체계 속에 사태는 악화되고 공포는 커져간다. 1부가 끝날 즈음 레가소프 소장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솔루션 트랙을 타게 되지만 해결난망이다. 숱한 ‘이름 없는 이들’의 고통과 희생을 거쳐 5부에선 일종의 법정스릴러 양상을 띠는데, 이 과정 어느 한 틈 긴장감과 휴머니티를 잃지 않는다. HBO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HBO GO’와 ‘HBO NOW’ 시청률 집계 결과 52%를 기록, ‘왕좌의 게임’이 갖고 있던 최고 기록(46%)를 깰 수 있던 이유다.
![1986년 4월 구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룬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 미국 케이블 네트워크 HBO가 처음으로 영국 SKY와 손잡고 공동제작해 기록적인 시청률과 함께 격찬을 받았다. [사진 HBO]](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9/21/joongang/20190921080105626qbfz.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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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은폐, 커져가는 공포와 비극
![크리스 조던이 북태평양 미드웨이섬에 서식 중인 새들의 삶을 8년간 추적한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2018)의 한 장면. 바다에서 구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이로 생각한 어미가 새끼에게 게워 먹이고 있다.[사진 크리스 조던]](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9/21/joongang/20190921080107689ffly.jpg)
변호사 출신의 환경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이 지난 봄 서울 성곡미술관 전시회 때 내한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조던은 북태평양 미드웨이섬에 서식 중인 새들의 삶을 8년 간 밀착 관찰해 사진과 다큐로 담았다. 특히 바다에서 구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이로 생각한 어미 알바트로스가 새끼에게 게워 먹이는 장면이 큰 화제를 불렀다. 자신이 믿고 먹인 것 때문에 자식이 죽게 된다는 걸 안다면 어느 누가 그러겠는가.
그래서 ‘체르노빌’을 보는 시청자도 소리치고 싶어진다. 지금 당신들이 호흡하는 공기는 온통 방사능이라고, 그 흑연에 손대는 순간 엑스레이를 4000만회 이상 쬐는 피폭을 당하게 된다고, 피폭 당한 남편을 간호하는 아내 역시 피폭될 거라고, 당신 태중의 아기는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역사가 스포이기 때문에, 2019년의 나는 알고 1986년 프리피야트 주민은 몰랐던 것들. 죄책감과 무력감 뒤에 우리도 언제든 저들 중 한명이 될 수 있다는 불길함이 덮친다.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에 오염수를 담아둔 대형 물탱크가 늘어져 있는 모습. 처분하지 못한 오염수가 급격히 늘며 현재 부지에는 오염수 100만 톤(t)이 물탱크에 담긴 채 보관되고 있다. [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9/21/joongang/20190921080107916rsky.jpg)
하지만 최근 아베 내각과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전에 쌓여있는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수면 아래 있던 문제가 올라왔다. 일본은 원전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계속 냉각수를 주입시켜왔는데 이로 인해 축적된 방사능 오염수가 이미 100만t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일부 각료는 "과감히 (바다에) 방출해 희석하는 방법 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고 말해 일본 정부의 '무작정 방류' 의혹에 불을 지폈다. 한국이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 정기총회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자 한‧일 간 갈등도 격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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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의 진실' 일본이 밝힐 수 있을까
오염수 문제는 그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의 ‘후쿠시마 부실 대응’까지 재조명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당시 어떻게 졸속 처리됐는지, 현재 방사능 오염 악화를 막을 길은 없는지, 오염수 방류가 생태계에 얼마나 해로운 수준인지 등에 대해선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린다. 일각에선 이 때문에 내년 도쿄올림픽을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웃나라인 한국의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주의할 것은 원전사고 관련된 '은폐'도 문제이지만 '공포 과열'도 진실 파악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죽음의 다리'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결국 이로 인해 다 사망했다고 '체르노빌' 에필로그는 전한다. 하지만 이는 '도시 괴담'이고 실제론 전원 사망까진 아니었다고 알려진다. 거짓과 진실 문제를 파헤친 드라마까지도 착오를 피하지 못했으니 실체 규명이란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만큼이나 오래 걸리는 일일지 모른다.
![1986년 4월 구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룬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 미국 케이블 네트워크 HBO가 처음으로 영국 SKY와 손잡고 공동제작해 기록적인 시청률과 함께 격찬을 받았다. [사진 HBO]](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9/21/joongang/20190921080109826eyix.jpg)
그간 미국과 유럽, 한국까지 ‘체르노빌’ 열풍에 휩싸일 동안 일본에선 유독 방영되지 않아 별의별 억측이 있었다. 그런데 ‘왓챠플레이’의 정보에 따르면 드디어 오는 25일부터 일본 영화전문채널 '스타채널'을 통해 방영된다고 한다. 한편 일본에선 내년 3월 '후쿠시마 50'이라는 영화가 개봉하는데, 원전사고 당시 마지막까지 발전소에 남았던 50명의 희생과 영웅정신을 그리는 내용이라고 한다. 일각에선 '도쿄올림픽 홍보를 위해 사고 안전대응을 자찬하는 프로파간다'라고 폄하하는 소리가 벌써 나온다. 과연 일본 사회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50'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고 귀를 기울일까.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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