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2% 합법적 병역 면제, 이스라엘 총선 흔드는 '하레디'
17일(현지시간) 치러지는 이스라엘 총선 재선거의 최대 이슈는 '하레디'로 불리는 초정통파 유대인의 병역문제다.
구약성서 시대의 삶을 추종하는 하레디는 유대교 지식탐구라는 명목으로 징병제 국가인 이스라엘에서 병역을 면제받고 있다. 종교적 이유로 병역 의무를 거부하는 국내 '양심적 병역거부'와는 다른 개념이지만, 병역 형평성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선 국내 사정과 비슷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그동안 연립정부 구성을 위해 초정통파 정당과 손잡고 하레디의 병역 면제를 옹호해왔다. 그러나 하레디의 초국가적 특혜에 대한 국민적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연정 파트너였던 강경보수 정당이 하레디 병역문제를 이유로 연정을 탈퇴하면서 하레디 병역문제가 이스라엘 선거판을 뒤흔들고 있다.
유대인도 싫어하는 유대인 '하레디'
하레디는 근본주의 유대학교(예시바)에 다니며 오로지 경전만 읽고 연구하는 유대인이다. 평생 율법 공부에 전념하며 대부분 직업을 갖지 않고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한다. 하레디 남성들은 전통적으로 커다란 검은색 원통형 모피모자를 쓰고 구레나룻을 목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다닌다. 현대 의학의 치료까지 거부하는 등 모든 세속적 가치를 배제한 채 경전에 기대 살아간다.
이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이유는 변변한 직업도 없이 세금을 내지 않고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하는 데다, 병역 또한 면제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징병제에 따라 남성과 여성이 각각 3년과 2년씩 의무 복무를 마쳐야 한다. 이 의무에 유일한 예외로 인정받았던 하레디 문제는 매번 국가적 갈등을 야기했고, 그때마다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곪아왔다.
하레디가 받는 사회적 특혜는 이스라엘의 아픈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레디의 병역 면제 조항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전후로 시작됐는데, 홀로코스트로 말살된 유대인 문화와 학문을 재건하기 위해 경전을 연구하는 수백명의 학생들에게 병역 의무를 면제해 준 것이 시초다.
그러나 비(非)하레디에 비해 출산율이 3배나 높은 하레디의 인구는 점점 늘어나 이스라엘 전체 인구 900만명 중 12%를 차지하게 됐다. 이에 따라 2017년에는 3만명 이상의 하레디가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이들은 유대교 고문헌을 연구함으로써 자신들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경제를 갉아먹고 사회적 분열을 초래하는 하레디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커지고 있다. 급기야 2017년에는 이스라엘 대법원도 하레디 병역 면제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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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발목 잡은 하레디 병역 문제
지난 4월 총선에서 승리한 네타냐후 총리가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한 원인이 바로 이 하레디다. 7월 안에 개정이 필요한 징병 관련 법안을 놓고 함께 연정을 구성한 우파정당 사이에 의견이 갈렸다.
연정 파트너였던 강경우파 이스라엘 베이테누당이 연정 참여 조건으로 초정통파 유대교 청년들에 대해서도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네타냐후 총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5석을 가지고 있는 베이테누당이 연정을 이탈한 것이다. 결국 네타냐후 총리는 1석 차이로 연정구성에 실패했고, 5월 29일 이스라엘 의회 크네세트가 해산됐다. 총선이 치러진 지 약 7주 만이며, 이스라엘 총리 지명자가 연정 구성에 실패한 첫 사례다.
하레디 문제로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 셈법도 복잡해졌다. 사전 여론조사 결과, 하레디 병역 부과를 주장하며 연정을 이탈한 베이테누당이 지난 4월 총선에서는 5석을 얻었지만, 이번 재선거에서는 더 많은 8석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네타냐후 총리 입장에서는 베이테누당을 설득하든지 아니면 초정통파당의 손을 놓아야 하는데, 초정통파당도 8석을 확보하고 있어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이스라엘방송 채널12와 채널13이 지난 13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집권여당 리쿠드당과 야당인 청백당은 이번 재선거에서 각각 32석씩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정 가능성이 있는 우파정당들의 의석을 모두 합쳐도 58~59석으로 과반의석(61석)에 2~3석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통신은 "네타냐후 총리가 베이테누당의 자비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베이테누당이 리쿠드당과 청백당의 거국중립내각(unity government) 구성을 제안했지만 청백당 측은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당과는 마주 앉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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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의 위기, 하레디의 운명은
네타냐후 총리는 지금까지 연정구성을 위해 초정통파 세력과 손을 잡아 왔다. 지난 2014년 하레디 남성들에 대한 병역 의무를 명시한 법안이 통과됐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하레디 정당들과 연정을 구성한 뒤 법안은 이듬해 철회됐다.
하레디 병역 문제에 발목 잡힌 네타냐후 총리는 돌파구로 강경보수 표심을 결집하기 위한 극우적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지난 10일 발표한 팔레스타인 정착촌 요르단강 서안지구 합병이다. 그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끈끈한 외교 관계를 이용해 "재선에 성공하는 즉시 서안지구를 합병하겠다"고 확언해 국제사회에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는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부패 혐의 기소 건도 걸려 있다. 앞서 지난 2월 이스라엘 검찰은 3건의 부패혐의로 네타냐후 총리를 기소할 방침임을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에게 소추면책특권을 부여하고 대법원 권한을 약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지만, 야당 반대에 가로막힌 바 있다. 이에 따라 17일 열리는 총선 결과에 따라 '이스라엘 최장 총리'로서의 그의 정치적 운명이 결정될 전망이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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