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덕의 북극비사]구한말, 조선 여인은 왜 북극바다 섬까지 흘러 갔을까

최준호 2019. 9. 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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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지만 얼어붙은 야쿠츠크 레나강변에 있는 항구. 폭이 수km에 달해 마치 바다항구처럼 보인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북극은 비밀의 문이다. 100년도 더 전인 1909년 미국의 군인이자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가 최초로 북극점을 ‘정복’했지만, 북극엔 ‘점’만 있는 게 아니다. 북극해에는 전설 같은 일각고래가 2m가 넘는 엄니를 외뿔 삼아 얼음바다를 가르고, 흰 외투를 덮어쓴 북극곰이 빙붕 위를 지배한다. 영하 30도 이하의 기온과 광풍같은 눈보라 휘몰아치는 그곳엔 우리와 닮은 사람도 살고 있다. 약 1만년 전 유라시아 땅에서 동으로 북으로 이동해 간 이들은 베링해협을 건너고 알래스카를 넘어 지구의 또 다른 끝 그린란드에 정착했다. 우리가 과거 에스키모라 불렀던 사람의 아들 이누이트가 그들이다. 중앙일보에 북극의 숨겨진 이야기를 연재하는 김종덕 박사는 국내 몇 안되는 북극 전문가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서 지난 2010년 이후 관련 연구를 수행하면서 노르딕 국가와 러시아, 그리고 북아메리카와 그린란드로 이어지는 북극권을 총 30여 차례 다녀왔다. 연재를 통해 지난 10년간 그가 목격한 북극의 비밀스런 얘기를 풀어놓는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사하공화국 야쿠츠크. 얼어붙은 레나강과 마치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 숲이 보인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① 북극의 조선 여인

한반도에는 봄꽃이 피기 시작하는 지난 4월초. 러시아 사하공화국(야쿠치아)의 수도 야쿠츠크는 지난 겨울 영하 40도까지 떨어졌다. 이제 매서운 한겨울은 뒤로 했지만, 필자가 동토의 짙은 향기를 느끼는 데는 영하 15도의 온도와 꽁꽁 얼어붙은 레나강으로 충분했다.

레나강은 사하공화국의 주인 야쿠트인의 말 에벤크어로 ‘큰 강’이라는 뜻이다. 세계 최대의 담수호인 바이칼호에서 발원, 3000㎞를 달려와 야쿠트인의 땅 야쿠치아에 도달한 레나강은 다시 1000㎞를 더 흘러 북극바다인 랍테프해로 이어진다.
러시아 사하공화국의 수도 야쿠츠크에서 만난 한 여인. 한국에서 보기 드문 두꺼운 털모자를 쓴 것을 빼면 우리나라 여느 할머니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사하공화국은 연중 최저기온이 영하 64.7도에 달할 정도로 추운 지역이다. [신화사=연합]


우리와 닮은 사하공화국 사람들

사하공화국의 사람들은 우리와 많이 닮았다. 이 곳 사람들은 스스로 바이칼호에서 왔으며 우리 한민족과는 1300여년 전 해동성국이라 불린 ‘발해’를 같이 건국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러시아 북극 원주민이 주축이 된 노던포럼의 안드레이 이사코프씨는 이것이 한반도와 북극권을 처음으로 이어준 인연이라고 설명한다. 이 곳에서 만나는 또 다른 인연, 조선 여인의 이야기가 사하공화국에 남아 있다.

‘고기잡이 배들은 섬 이곳저곳에 여자들도 포함된 일꾼들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들을 다시 데려간다. 하지만 평소보다 여름철이 춥고 겨울추위가 빨리 와서 바다가 얼어버릴 위험이 있으면 돌아가는 항로 상에 있는 일꾼과 정어리만 싣고 바로 떠나버린다. 북극해를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 조선 여인도 그렇게 남겨졌지만, 그녀는 노바야시비리를 좋아했고 그곳에 스스로 남았다’
1932년 간행된 단행본 『황금의 땅 북극에서 산 30년』(얀 벨츨 저, 이수영 역ㆍThirty Years in the Golden North).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 얀 벨츨은 체코인이다. 이 책은 황금의 땅을 찾아 북극권 땅 사하공화국의 북쪽 끝 북위 75도의 섬지역인 노바야시비리까지 갔다가 에스키모 족장까지 됐던 벨츨의 30년 삶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이 소설에는 예상치 못한 우리네 여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1932년 저술된 『황금의 땅 북극에서 산 30년』(Thirty Years in the Golden North)에 나오는 내용이다.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 얀 벨츨은 체코인이다. 이 책은 황금의 땅을 찾아 북극권 땅 사하공화국의 북쪽 끝 북위 75도의 섬지역인 노바야시비리까지 갔다가 에스키모 족장까지 됐던 벨츨의 30년 삶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이 소설에는 예상치 못한 우리네 여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한글 번역본은 2010년 출간됐다.


북극섬 조선여인과 같이 생활한 체코인

웰츨은 자신이 입양한 에스키모(이누이트) 여자아이를 기르는 7년 동안 ‘한국(Korean)’ 여인과 같이 생활을 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고, 그 여인은 태평양에서 여름철에 북극해로 넘어오는 정어리를 잡기 위해 일본ㆍ중국ㆍ한국에서 온 배를 타고 와서 그곳에 정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흰 비단띠로 머리를 단정히 묶어 주었고 웰츨은 그것으로 인해 섬의 원주민들에게 더욱 존경을 받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의 책 속에는 일본과 중국을 분명히 ‘코리아(Korea)’와 분리하여 설명하고 있고 ‘흰 머리띠’를 강조해서 설명한 것으로 보아 우리의 모습이 분명해 보인다. 그가 조선 여인에 대한 설명 바로 뒤에 1909년의 이야기를 서술한 것으로 보아 조선 여인을 만난 것은 그 이전이 아닌가 생각된다.

북극바다 북위 75도에 떠 있는 노바야시비리는 러시아 사하공화국에 속한다. [구글지도 캡처]


80년 이상 길어지는 한국과 북극해의 역사 공유

만약 웰츨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와 북극해 간의 역사는 거의 80년 이상 길어지고, 북극해의 수산업에 대한 이해도 상당히 달라지게 된다. 정어리가 태평양과 북극해 사이를 이동한다는 것도 지금의 과학적인 증거와 맞지 않는 내용이지만, 그의 설명은 너무나 명확하고 확신적이다.

약 120년 전, 이름도 없이 북극해를 품었던 구한말의 여인. 청결하고 책임감이 강했으며 웰츨 자신의 품격을 높여주었다고까지 했던 그 여인은 누구였을까. 그녀는 왜 고향 땅으로 돌아가지 않고 극한의 동토, 노바야시비리에 남았을까. 마침내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갔을까. 그녀가 당시 제국주의의 위협 속에 풍전등화였던 고향땅을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그리워했을 터. 그녀의 마음은 북극 원주민의 생각처럼 초록빛 오로라로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야쿠트 박물관에 전시된 야쿠트 전통 장승. 한국의 마을어귀 장승과 흡사하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21세기 북극항로가 살려낼 노바야시비리섬

20세기 들어 긴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노바야시비리는 금단의 땅이 되었고, 군사적 활동만 간간이 있는 머나먼 땅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북극항로가 이 곳을 다시 지나면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인의 북극 인연을 러시아 땅 끝까지 가져간 여인의 흔적이 언젠가 다시 우리의 손에 꼭 들어오길 바란다.

북위 77도까지 이어져 북극해를 마주하고 있는 사하공화국은 한반도 면적의 15배에 이르는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겨울철 최고 영하 71도까지 떨어진 기록이 있는 지구상에서 사람이 사는 곳 중 가장 추운 곳이다. 이곳에는 우리와 얼굴은 물론, 풍습까지 닮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곳이 러시아의 다이아몬드 생산의 90%, 세계 부존량의 25%가 묻혀 있다고 알려져 있고, 북극해와 시베리아 내륙을 연결하는 물류거점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시베리아의 전설에 따르면 신이 지구의 보물이 든 가방을 가지고 사하공화국 위를 날아가다 극심한 추위에 그만 손이 얼어버려 가방에 든 보물을 다 떨어뜨려 버렸다고 한다.

②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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