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죽인 '수상한 구멍'..60대 농부는 왜 제초제 넣었나

김윤호 2019. 8. 1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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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한 영양군의 가로수. 농약을 밀어 넣은 구멍이 보인다. [사진 영양군]
가로수에 물 대신 농약을 슬금슬금 뿌리고, 뿌리 부근에 구멍을 내 농약을 밀어 넣어 고사시킨 60대가 적발됐다. 경북 영양군 특별사법경찰은 15일 가로수를 손괴한 혐의로 A씨를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7월 중순 영양군 한 국도변에 식재된 가로수 4그루를 제초제 성분의 농약을 이용해 고사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고사한 가로수는 35년생 은행나무 4그루로, 높이는 6~7m다. 김영묵 영양군 산림녹지과장은 "관내 국도변을 돌아보는 중 고사한 가로수를 봤고, 해당 마을을 중심으로 탐문을 시작하니, A씨가 자수를 해왔다"고 했다.

영양군 조사결과, 고사한 은행나무가 있는 국도변에 5900여㎡의 논을 가진 A씨는 벼농사를 지을 때 나무들이 해를 가리는 게 싫었다. 또 나무뿌리가 논바닥에 있는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것에 화가 났다. A씨는 제초제 성분의 농약을 가져다가 나무 주변에 뿌렸다. 또 전동 드릴로 나무 밑 부분에 직경 1㎝, 깊이 3㎝ 정도로 각각 3~4개의 구멍을 냈다. 그러곤 농약을 이들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고사한 영양군의 가로수들. [사진 영양군]
A씨는 검찰 송치 직전 고사한 가로수에 대한 배상금으로 200만원을 군에 지불한 상태다.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가로수를 임의로 고사시키거나 베어내다 적발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영양군은 검찰 수사가 끝나면 고사한 가로수를 제거할 예정이다.

이렇게 가로수를 고사시키는 행위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다. 지난 6월에도 한차례 있었다. 강원도 원주시 한 사거리에서 고사한 수령 20년 이상 된 왕벚나무들이 발견됐다. 원주시가 “나무를 고사시킨 범인을 잡아달라”며 원주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가 자수했다. 그는 “나무가 식당 간판을 가려 이 같은 일을 벌였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7월엔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대전시 동구 대청호 일대 가로수 3그루가 죽은 채 발견된 적도 있다. 나무에선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해당 지자체는 당시 농약을 뿌린 범인을 찾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또 나무 주변에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도 설치했다.

고사한 가로수는 높이 15m, 뿌리 지름이 50㎝에 이르는 느티나무였다. 나무 주변엔 대청호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인근에는 상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해당 지자체 측은 “느티나무가 전망대 주변에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토양 중화제와 수액 등을 공급해 살려보려고 했지만, 결국 고사를 막진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영양=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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