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LOUNGE] 日 수입대체 선봉장 정지완 솔브레인 회장 | 반도체 소재 국산화 앞장..매출 1조원 눈앞
솔브레인 주가가 요동치고 있다.
연초만 해도 4만원대였던 주가가 7월 한때 8만원대까지 치솟았다. 그러다 다시 6만원대로 밀렸고 이틀 만에 7만원대 중반 이상으로 급등하는 등 널뛰기 장세를 연출하고 있다. 주요 이유는 한일 무역갈등이다. 솔브레인은 반도체 장비, 소재 산업에서 일가견이 있는 회사다. 특히 반도체 주요 소재 중 하나인 불산(HF, 고순도 불화수소)을 취급하는데 일본이 이를 수출 제한 업종으로 지정하면서 국산화 대체 가능 기업으로 주목받았다. 증권가에는 솔브레인의 경쟁력 관련 리포트가 쏟아졌고 주가는 곧바로 우상향곡선을 그었다.
그러다 지난 7월 중순 키움증권 보고서를 기점으로 급락세를 연출했다. 키움증권은 보고서에서 솔브레인의 실질적인 수입대체 기술을 제한적이라 평가했다. 특히 액화 불화수소 기술력은 알려진 것보다 미진하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키움증권은 솔브레인에 대한 투자의견을 ‘아웃퍼폼(outperform·시장수익률 상회)’에서 ‘언더퍼폼(underperform·시장수익률 하회)’으로 두 단계 하향 조정했다. 언더퍼폼은 사실상 주식 매도에 가까운 투자의견이다.
이후 논란이 증폭됐다. 애널리스트의 소신은 존중하되 솔브레인 측은 사실관계가 일부 잘못됐다고 문제 제기했다. 불화수소 제품을 액체와 기체로 구분했는데 액체 불화수소는 일본의 규제 대상이 아닌 것처럼 기술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증권사 리포트는 수정됐지만 투자의견은 변하지 않았다. 대신 모 언론이 수입대체 기술이 조만간 가동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주가 불씨가 되살아났다. 옥신각신하는 와중에 솔브레인 소액주주들이 주가 급락의 책임을 물어 키움증권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최근 솔브레인이 증권가에서 단연 뜨거운 관심 종목 중 하나로 떠오른 스토리다.
자연스레 솔브레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솔브레인 창업주는 정지완 회장(63)이다. 전신은 테크노무역. 정 회장이 서른 살 즈음(1986년) 서울 여의도에 작은 사무실 하나를 빌려 사업을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이때 시절을 그는 ‘오퍼상(소규모 국제무역 상인)’이라 부른다. 그 정도로 규모도 작고 사업 모델은 제한적이었다. 반도체 만들 때 들어가는 소재를 일본을 통해 국내에 조달하는 업무가 대부분. 그 과정에서 시장 성장성을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이 길러졌다.
어느 정도 회사가 커지자 정 회장은 제조업 원천기술 확보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길로 평소 교류가 있던 일본 화학 업체와 합작법인을 만들어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1999년 10월 테크노세미켐으로 이름을 바꾼 후 이듬해 코스닥에 상장했다. 이후 반도체 소재 외 패널, 2차 전지 등에 들어가는 다양한 화학 소재로 범위를 넓히며 회사를 성장시켰다. 2011년 지금의 이름으로 회사명을 바꿨다. 지난해 관계사를 포함하면 연결 기준 매출액은 1조원에 가까울 정도(9634억원)로 급성장했다. 직전 해인 2017년 연결 기준 매출액은 7756억원이었다.
정 회장이 회사를 키워온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제휴(합작)와 M&A다. 애초 무역 사업을 하면서 반도체 산업 이해도를 높인 그는 기술력과 판로 있는 기업이라면 한배를 타는 전략을 마다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일본 반도체 소재 업체 트리케미컬연구소, 일본의 미쓰비시케미컬과 잇따라 합작법인을 설립해 기술력을 다진 것이 대표 사례다. 2010년 이후에는 글로벌 화학 업체 씨그마알드리치와 합작법인을 만들어 기술처 다변화도 꾀했다.
중국 업체와의 합작법인도 다수 만들었다. 중국 삼환공사와 합작법인 삼환테크노를 만든 데 이어 중국의 바이그룹과도 합작법인을 출범시켰다. 판로 개척, 공동 기술 개발, 자본 확보 등의 이유를 들어서다.
▶차세대 성장동력은 바이오·헬스케어
왕성한 M&A도 눈길을 끈다.
2000년대 초반 LS산전의 전신 LG산전 신소재사업부문 일부를 인수한 데 이어 국내 반도체 업체인 파이컴, 2차 전지 업체인 엘티케이도 인수합병했다.
업계 관계자는 “창업 초창기부터 IT 산업 관련 국내외 업무를 많이 하다 보니 반도체 장비·패널 등의 기술동향,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특히 일본 산업 발전사에 대해 상당히 공부를 많이 해 국내에서는 어떤 점이 취약한지 어떻게 하면 빈 부분을 솔브레인이 채울 수 있을지를 보고 2000년 상장 과정에서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회사를 키웠다”고 설명했다. 솔브레인 관계자는 “현재의 안정적인 사업을 기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2025년에는 첨단 IT 소재 대표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힌다.
더불어 정 회장은 꾸준히 이종 산업, 신수종 사업을 찾는 데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2006년 밀양상호저축은행 지분 취득, 2007년 여신 전문 금융업체 나우아이비캐피탈을 설립한 것이 같은 맥락이다.
나우아이비캐피탈은 상장 전 기준 정지완 회장과 솔브레인이 각각 52.84%, 42.11%의 지분율을 가진 신기술사업 금융회사. 운용자산(AUM)만 약 5000억원에 달한다. 2016년에는 국민연금으로부터 2000억원을 출자받아 나우그로쓰캐피탈PEF(사모펀드)를 단독으로 결성하는 등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고 지난해 10월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솔브레인은 이종 산업 직접투자에 나서기도 했다. ‘하유미 마스크팩’으로 유명한 화장품 업체 제닉을 인수했는가 하면 미국 제약사 ARK 지분을 확보했다.
정 회장이 이 같은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자명하다. 삼성,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에 납품하는 사업 모델로 성장해왔는데 반도체 업황이나 납품처 사정에 따라 매출이 휘둘릴 소지가 늘 있기 때문이다.
올해 2분기 증권사 보고서에서 지적된 부정적 요인 대부분도 이와 무관치 않다.
증권가는 삼성전자 낸드(NAND)사업부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솔브레인의 반도체 소재 부문 출하량이 계속 하락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2분기 실적은 전년 대비 소폭 증가할 가능성이 높지만 연초 솔브레인의 시장 기대치와 비교하면 하락세가 뚜렷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일본 반사이익 기대 같은 증시 호재가 잠잠해지면 실제 솔브레인의 실적만 놓고서는 오히려 부정적 투자의견이 더 많아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정 회장은 일찌감치 이런 상황에 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수익처 다변화 일환으로 소비자와 직접 상대하는 B2C 산업, 궁극적으로 차세대 성장동력인 바이오 산업에 그룹의 미래가 있다고 봤다. 코스닥 상장 후 코스닥협회에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회사의 명멸을 눈으로 직접 보며 이 같은 인식을 갖게 됐다는 후문이다. 2013년부터 2년간 제8대 코스닥협회장을 맡으면서 이런 그의 소신은 더욱 뚜렷해졌다고.
물론 정 회장의 이런 행보가 꼭 ‘잭팟’을 터뜨린다고만 볼 수는 없다. 제닉의 경우 투자 당시부터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인수했다는 IB 업계 평가가 있었다. 제닉은 2018년 연결 기준으로 매출 690억원, 영업손실 114억원으로 적자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리더스 마스크팩 신화로 유명한 박철홍 대표를 영입, 반등을 꾀하고 있지만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솔브레인 관계자는 “솔브레인은 전형적인 B2B(기업 대 기업) 전문기업으로 커왔고 일본과 합작관계에 있는 사업도 많아 세간의 관심이 부담스럽다. 반도체 관련 제조 사업과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을 두축으로 지속 성장을 이어가겠다는 것이 회사 방침”이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시장 기대치에는 밑돌지 몰라도 올해 말 연결 기준 매출로는 무난히 1조원 클럽에 가입할 것으로 낙관한다. 당대 매출 1조 기업을 이룬 정 회장이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에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 일러스트 : 강유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19호 (2019.07.31~2019.08.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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