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2명 청탁 명단에 등장한 '권성동' 석자..어떻게 무죄 됐나

박사라 2019. 6. 2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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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선고 이후 미소 짓는 권성동 의원(왼쪽)과 장제원 의원. [연합뉴스]

예상 선발 인원 437명. 청탁 대상자 692명.

뽑는 인원보다 청탁받은 사람 수가 더 많았다. 최종 합격자 전원이 청탁 대상자였다. 권성동(59) 자유한국당 의원의 1심 판결문에 나타난 2012년~2013년도 강원랜드의 채용 비리는 상상을 뛰어 넘는 수준이었다.

‘국회의원, 회사 임원, 지역구 관계자….’ 청탁의 종류가 너무 많아 인사팀은 이를 엑셀 파일로 정리해서 관리해야 했다. 그 파일에 권 의원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3번의 수사가 이루어졌고 재판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왜 검찰과 법원 모두 그가 ‘무죄’라 판단한걸까.


리스트에 등장한 ‘권성동’ 이름 석 자 의미는

엑셀 파일에 권성동 의원 관련 표현이 등장하는 건 크게 두 번이다. 1차 채용 당시 청탁 명단 비고란에 ‘권성동 국회의원’이라고 기재된 게 첫번째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 이름이 기재된 과정이 탐탁치 않다고 봤다. 검찰은 권 의원과 강원랜드의 중간 통로로 고향친구이자 전 강원랜드 리조트 본부장인 전모씨를 지목했다. 그런데 전씨는 처음에는 권 의원을 거론하지 않다가 인사팀이 난색을 표하자 갑자기 “권 의원 청탁이니 잘 해달라”고 했다.

전씨가 권 의원 영향력을 이용할 목적으로 그의 이름을 허위로 댔을 수도 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인사담당자도 당시 별다른 확인 없이 권 의원 이름을 그대로 써넣었다고 진술하면서 진실은 알 수 없게 됐다.


“권 시트의 주인공은 나다” 손 든 사촌동생

2차 채용 때도 권 의원 몫으로 지목된 청탁 리스트가 있었다. 그의 성을 따서 지었다는 이른바 ‘권 시트’다.

그런데 이 시트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권 의원의 사촌동생인 권은동 강원도축구협회장이다. 권은동 역시 최흥집 사장과 호형호제 하는 사이였기에 청탁을 주고받을 위치는 됐다.

그의 진술은 구체적이었다. 권 시트에 있는 청탁 대상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내가 최 사장에게 직접 청탁했다”고 했다. 그중 한명 측에게선 “합격했는데 못 가게 돼 미안하다”는 전화까지 받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청탁 여부가 불명확한 권 의원보다는 권은동씨가 ‘권 시트’의 당사자에 가깝다고 봤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강원랜드에 몇 명 꽃아주셨냐'는 돌직구 질문을 듣고 당황해하던 권성동 의원의 모습. [사진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물론 핵심 증거는 리스트 말고도 있었다. 최흥집 강원랜드 사장의 ‘자백’이다. 그는 권 의원을 직접 만나 청탁을 받았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 사장 진술의 허술함을 지적했다. 예컨대 그는 “권 의원이 선발 절차도 제대로 몰랐고 내가 나중에 채용 결과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어떻게 자기가 청탁을 해놓고 모를 수가 있냐는 것이다. 인사팀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청탁을 들어주라 지시했는지 그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점도 들었다.

결국 재판부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상당 부분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권성동에 피해 받은 사람이 없다”

법리적 문제도 있었다. 권 의원 공소장에 적시된 혐의는 인사담당자에 청탁을 넣어서 정당한 채용 업무를 방해한 혐의다. 이런 죄가 충족되려면 인사팀이 원래는 정당하게 채용을 진행하려 했지만 권 의원의 압박에 못 이겨 채용 비리를 저질렀어야 한다.

하지만 재판부가 보기에 인사담당자는 부정채용의 피해자가 아닌 ‘주도자’에 가까웠다. 그는 외부에서 들어온 청탁 외에도 자신이 따로 관리하는 명단을 만드는 등 상당한 권한을 행사했다. 최흥집 사장이 부탁한 청탁을 반만 들어주거나 반대로 들어주지 말라고 한 청탁을 임의로 처리해준 적도 있었다.

결국 권 의원이 업무를 방해한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재판부는 본 것이다.


“청탁은 있었지만 부정하지 않다”

권 의원은 다른 의혹도 받았다. 2013년 자신의 전 비서관 김모씨를 강원랜드 워터월드에 전문가로 취업하게 하는 대가로 최흥집 사장의 법안 청탁을 들어주었다는 혐의(제3자 뇌물수수)다.

재판부는 우선 최흥집 사장이 법안 청탁을 했다는 건 사실로 인정했다. 그가 의원실을 찾아와 ‘카지노 입장 요금을 대폭 올리는 개별소비세법 개정안 반대에 협조해달라’는 취지로 말했고, 실제로 권 의원이 인상률을 줄이는 방향으로 의정 활동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권 의원의 청탁 부분이다. “그 뒤 권 의원이 비서관을 챙겨달라고 했다”는 최 사장의 진술은 이번에도 증거로 쓰이지 못했다. 해당 비서관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도 안한 채 단번에 전문가 채용 승낙을 하는 건 말이 안된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결국 “현안에 대해 부정한 청탁을 하는 대가로 권 의원이 비서관 채용을 청탁했다는 의심이 간다”면서도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로 판결했다.

그러면서 권 의원이 강원랜드의 입장을 적극 반영하려 한 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지역민들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정당한 직무집행”이라고 했다.


안미현 검사 “마법같은 일” 공개 비판
권성동 의원의 수사 외압의혹을 폭로한 안미현 검사. 중앙포토.
이밖에 권 의원이 산업부를 압박해서 자신의 고교 동창을 사외이사로 지명하게 했다는 혐의 역시 증거가 없어 무죄로 결론났다. 재판부는 해당 동창이 특별히 자격에 문제가 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관련자들의 자백에도 불구하고 권 의원이 무죄가 나자 당장 검찰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권 의원의 수사외압 의혹을 폭로한 안미현 검사(40ㆍ사법연수원 41기)는 페이스북에 “마법과도 같은 일”이라는 글을 올려 비판했다. 그는 “영화 제목을 원용하자면 ‘자백은 미친 짓이다’”라며 “자백한 강원랜드 사장과 인사팀장은 처벌받고, 청탁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부인해서 면죄 받았다”고 적었다.

또 “권 의원 지역구는 강릉이고 워터월드는 강원랜드 사업으로 정선에 조성된 것”이라며 “이것이 지역구 업무면 강릉 지역구 국회의원은 강원도지사를 겸하는 자리인가”라고 비판했다. 반면 권 의원은 “검찰이 무리하게 엮어서 기소했다”며 “적폐청산을 빙자한 표적 수사”라고 입장을 밝혔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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