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후배 총장임명, 남을 이유 없어"..김호철 고검장 사의
김호철(52·연수원 20기) 대구고검장이 25일 사의를 표명하자 그와 함께 근무했던 전직 검사가 한 말이다. 김 고검장은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59·연수원 23기)의 연수원 3년 선배다.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 8인에도 이름을 올렸던 인물이다.
김 고검장은 이날 오후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에 글을 올리고 "지금 검찰이 어려운 상황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검찰 구성원이 일치단결하여 나라와 조직을 위해 헌신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검찰에 있는 동안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밝혔다.
━
"3년 후배 총장 임명, 사표 머뭇거릴 이유 없다"
김 고검장은 최근 지인들에게 "3년 후배가 검찰총장에 임명된 이상 검찰에 남을 이유도, 사표를 머뭇거릴 이유도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김 고검장과 대검에서 함께 근무했던 전직 검사는 "김 고검장은 현 정부의 수사권 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라며 "총장이 관련 업무를 맡기지 않고 관여할 기회도 없어 답답해했다"고 말했다.
노무현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에 파견돼 이석수 현 국정원 기조실장 등과 검찰 측 입장을 대변했다. 이명박 정부 때도 대검 형사정책단장을 맡아 수사권조정 업무를 전담했다.
2011년 6월 말 경찰에 수사개시권을 부여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자 홍만표 당시 대검 기조부장 등 검사장들과 함께 김 고검장(당시 부장검사)도 사의를 표명했었다.
김준규 검찰총장과 청와대에 대한 검사들의 집단 항명으로 '대검의 반란'이라 불렸던 날이다.
━
수사권 조정 전문가 "특수수사 줄이되 경찰 통제 필요"
김 고검장은 검찰의 특수·직접 수사를 최소화하되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권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6월 대구고검장 취임사에서도 "검찰권을 절제하는 미덕을 갖춰야 하지만 검사가 수사 지휘 과정에서 수사를 통제하는 것은 국민의 인권 침해를 보호하는 핵심적 장치"라는 소신을 밝혔었다.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김 고검장은 각 정부 때마다 수사권 조정 문제로 힘든 시기를 겪어왔다"며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지휘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김 고검장이 이날 '일치단결'이란 표현을 쓴 것도 수사권 조정을 두고 검찰 내부 이견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고검장의 주장과 달리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보다 검찰의 직접(특수) 수사권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특수통 검사들도 검찰 내부에 상당하다는 것이다.
최근 김 고검장을 만났다는 검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지휘권과 직접수사권을 놓고 검찰의 의견 정리가 필요하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안태근과 영동고·서울대 동기 "1·2등 다퉜다"
김 고검장은 선·후배들 사이에서 차분하고 조용한 성품에 합리적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법무부 법무실장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에서 광주고검장으로 승진해 대구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게 됐다.
김 고검장은 안태근 전 검사장과 영동고·서울대 법대 동기로 검찰 내에서 가장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고교와 대학 시절 1·2위를 다툴 정도로 뛰어난 수재였다. 연수원은 20기로 동기지만 사법시험은 안 전 검사장이 한해 앞선 3학년 때 합격했다. 김 고검장은 최근 안 전 검사장이 성추행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자 안타까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