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시각장애 동생 "형 아파해 힘들다"..희귀병 형제 슬픈 선택

최충일 2019. 5. 1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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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앓던 병은 만성 염증성 질환인 베체트병
혈관에 염증 후 눈·구강 등 다른 곳으로 옮겨져
유서에 "이런선택이 최선, 사랑한다, 용서해라"
경찰, 형 시신 부검..동생 살인 혐의 배제 않아
17일 전북 남원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이 설치한 에어매트. 투신 남성을 구했다. [사진 전북소방본부]
전북 남원에서 같은 희귀 난치병을 앓던 중년 형제가 동생은 아파트 12층에서 투신하고 형은 아파트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 형제가 가족에게 남긴 유서가 발견됐다. "이런 선택이 최선인 것 같다. 가족을 사랑한다. 용서해 달라”는 내용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형제는 수년 전부터 이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왔다.

19일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여년 전부터 희소 난치병인 베체트병을 함께 앓고 있었다. 동생 A씨(47)는 3기, 형인 B씨(51)는 말기인 것으로 확인됐다. 베체트병은 혈관에 염증이 생긴 후 주로 눈이나 구강·음부 등에 궤양이 생기는 만성 질환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피부·위장관·중추신경계·심장·폐 등 혈관이 닿을 수 있는 다른 여러 장기로 염증이 전이될 수 있다.

이 병은 1930년대 터키의 한 의사가 발견해 알려졌으며 그의 이름을 따 베체트병이라고 부른다. 조사결과 이런 증세가 좀 더 양호했던 시각장애인 동생 A씨가 형 B씨의 병시중을 수년간 들어왔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베체트병은 전 세계적으로는 우리나라와 일본, 지중해 연안과 중동 지역에 주로 발생한다고 한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환자의 절반 이상에서 관련 유전자가 발견됨에 따라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에게 주로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어떤 검사로도 베체트병을 확진할 수 없기 때문에 최종 진단은 환자의 특징적인 임상 증상을 종합하여 판단하게 된다고 한다. 치료도 동반하는 증상을 완화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사건은 함께 살던 노부모가 타지로 간 사이에 벌어졌다. A씨는 사건 직전 가족에게 “너무 아파하는 형을 안락사시키고 나도 죽겠다”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후 7시 42분쯤 전북 남원시 한 아파트 13층 발코니에서 A씨(47)가 투신했다. A씨의 투신 시도를 목격한 주민은 소방당국에 곧바로 신고했고, 소방당국은 즉각 출동해 에어매트를 설치했다. A씨는 소방당국이 설치한 에어매트 위로 떨어져 목숨을 구했다. 당시 A씨는 자신이 거주하는 13층 아파트 발코니 난간에 20여 분 매달려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며 요추 등에 경상을 입은 상태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경찰은 전했다.

형제가 살던 방 안에서는 희소 난치병을 앓아 온 A씨 형 B(51)씨가 이불에 덮여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의 현장 조사결과 B씨의 시신 외부에선 둔기나 흉기가 사용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주변에선 유서와 수면제, 여러 빈 약봉지 등이 함께 발견됐다. 경찰은 A씨가 형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하고, 형의 시신 부검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형제가 심한 고통을 겪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며 "A씨가 회복하는 대로 사건 경위를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남원=최충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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