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정 기자 태도, 문제였나" 현직 언론인 7인에게 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취임 2주년을 맞아 KBS와 특별 대담을 가졌다. 오랜만의 언론 인터뷰인데다 4시간 전 북한이 단거리미사일까지 쏜 상황이라 대통령의 발언에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대담이 끝난 뒤 온라인을 달군 건 ‘송현정’이라는 엉뚱한 이름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KBS 기자의 질문과 태도가 네티즌의 집중포화를 받으며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이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송현정 기자’로 도배됐고, 송 기자의 사촌동생으로 알려진 가수 인피니트 멤버 성규의 인스타그램에까지 항의성 댓글이 올라왔다.
네티즌들의 비판은 대략 3가지로 요약됐다. 대통령의 말을 중간에 끊는 게 무례했고, ‘독재자’라는 용어를 사용한 질문이 부적절했으며, 인터뷰 내내 지은 독특하게 찡그린 표정이 불편했다는 것이다.
여당 지지층의 분위기는 온라인에 도배된 댓글로 짐작이 가능하다. 물론 “속시원했다”는 야당 지지층의 응원 역시 예상 가능한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인터뷰를 직업으로 삼는 기자들의 평가는 어떨까. 현직 언론인들은 송 기자의 대담과 송 기자를 향해 쏟아지는 국민적 비난 및 칭찬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국민일보는 10일 신문기자 6명과 방송기자 1명을 포함해 총 7명의 현직 언론인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질문과 태도 문제 있었나
‘송 기자의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기자 7명 중 5명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중간중간 말을 끊고 표정을 찡그린 행동에도, 질문의 수위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종합일간지 온라인뉴스부 기자 A씨는 “대통령은 우리 사회 최고 권력자다. 어느 정도 예의는 갖춰서 질의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전제한 뒤 “다만 진행자는 대통령이 포괄적인 답변을 하면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 핵심을 담은 답변을 유도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말을 끊는다는 지적을 하는데 오히려 답변을 돕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사회부 기자 B씨도 “프로페셔널한 방송인이 표정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은 다소 문제일 수 있다”면서도 “그동안 봤던 대담과는 확실히 차별화가 된다. 인터뷰를 한 기자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송 기자를 칭찬했다.
물론 송 기자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소수의견도 있었다. 종합일간지 경제부 기자 C씨는 “언론이 진행하는 대통령과의 대담이나 기자회견 후에는 이런 논란이 많이 벌어진다. 하지만 논란을 최소화할 방법은 있다”며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뽑은 지도자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의를 갖추고 인터뷰해야 하고 국민이 보기에 부적절한 언행은 삼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송기자 D씨는 가장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그는 “답변을 듣는 표정이 논란을 불러 일으킬만 했다”며 “특히 답변을 중간에 잘라먹는 건 적절치 않았다. ‘독재자’ 같은 단어 선택도 부적절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사람들은 왜 화를 낼까
만약 다수 기자들이 답했듯이 대담을 진행한 기자에게 문제가 없었다면 네티즌들은 왜 이렇게 비판적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언론인들이 각자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종합일간지 정치부 기자 E씨는 “왕에게 공손히 질문해야 하듯 대통령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일부 국민이 바라는 것 같다. 한국이 여전히 왕조사회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경제지 산업부 기자 F씨는 “문 대통령의 팬들은 실례 되는 표현으로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송 기자에게 가장 비판적이었던 D씨는 “흔히 볼 수 없는 방식의 대담이라 국민에게 다소 생소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D씨는 “기자가 질문을 던지는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데 미흡했던 듯하다”며 “질문을 숙지한 상태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이어가는 방향이 보다 깊이 있는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타이밍에 다음 질문해야 하는데’ 같은 초조함도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잘했든, 못했든 신상털기는 폭력”
‘송 기자와 친척, 송 기자를 옹호하는 사람들까지 공격 받는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모든 언론인이 “사회의 법과 도덕을 넘어서는 정도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비판적 의견을 내놓았다. 이른바 신상털기는 대담과 상관 없는 집단 린치라고 답한 언론인도 있었다.
C씨는 “송 기자를 옹호하는 댓글을 올린 사람의 신상까지 터는 건 부적절하다”며 “나와 다른 생각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과 토론하면서 우리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피해의식 때문에 여권 지지자들이 기성 언론에 반발심을 가지는 것은 이해한다”며 “그러나 특정 기자의 신상을 터는 일은 결국 스스로 악이 돼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국민의 알 권리에 어떤 영향을 주겠나’라는 질문에는 “대통령도 일반 취재원과 마찬가지로 질문해야 시청자의 알 권리가 충족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종합일간지 소속 청와대 출입기자 G씨는 “기자들이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과 대통령이 직접 생각을 말하는 것은 천지 차이”라며 “만약 송 기자가 하염없이 문 대통령의 말을 듣기만 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면 준비했던 질문의 반도 못했을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생각한다면 괜찮았던 인터뷰”라고 밝혔다.
D씨는 “지난번 대통령 기자회견 때 경인방송 기자도 이런 비난을 들어야 했다. 고분고분하게 상대가 하고픈 말만 끄집어내는 게 기자의 할 일은 아니다”라며 “더 세게 질문해도 될 것 같았다는 문 대통령의 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질문자의 태도를 지나치게 문제 삼는 상황은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C씨는 “국민의 알 권리는 중요하지만 정말로 국민이 알고 싶어하는 사안인지 잘 따져봐야 한다. 아울러 인터뷰 대상을 지지하는 국민을 존중하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언론 환경에 미칠 영향은
송 기자를 향한 비판이 언론의 취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대체적으로 “취재 환경의 위축”을 우려했다.
F씨는 “기자는 독자와 시청자의 알 권리를 위해 대통령에게도 일반 취재원과 똑같이 다양한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나친 비방과 욕설은 언론인들을 주눅들게 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A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나 대통령을 향해 어렵거나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면 기레기라고 욕을 한다”며 “취재 환경에 특별한 영향을 준다고는 생각지 않으나 언론인을 향한 평가가 좀 더 부정적으로 변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우려했다.
반면 C씨는 적대적인 여론에 대해 언론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C씨는 “언론은 이 같은 상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인지, 언론의 잘못은 없는지, 있다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고민하고 개선해야 한다”며 “그래야 국민도 언론을 더 신뢰하고 기자들의 취재환경이 나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준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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