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체감 나이는 52세..중국 답사 대장정은 이제 시작"
"둔황·실크로드..오랜 답사 로망 이뤄"
"동아시아 전체 속에서 중국을 바라봐야"
![둔황 월아천 전경.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중국은 즐거운 여행의 놀이터이자 역사와 문화의 학습장"이라고 말했다. 월아천 전경은 유 교수가 직접 촬영했다. [사진 창비]](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4/28/joongang/20190428185449983pici.jpg)
만 일흔이 되는 해를 앞두고 유홍준(70·명지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교수는 지난해와 올해 초에 걸쳐 자신의 '오랜 로망'을 이뤘다. 그것은 둔황·실크로드 답사였다. "더 미뤘다가는 영영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타클라마칸사막 끝자락을 향한 떠났던 그는 이 길을 가리켜 "꿈의 여로"라고 강조했다.
최근 그가 펴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2』는 시안에서 출발해 하서주랑을 거쳐 둔황 명사산까지 2000㎞에 이르는 여정의 기록이다. 그 소감을 그는 "명불허전(名不虛傳)" 이라는 말로 압축했다. 이어 그는 "그 감동의 울림이 너무 커 이름 '명'자 대신 울릴 '명'을 쓰고 싶다"면서 "명불허전(鳴不虛傳)"이라고 덧붙였다. 돈황·실크로드 답사에서 그는 또 어떤 이야기를 길어올렸을까. 그에게 '명불허전'의 이야기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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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이 된『답사기』대장정"
Q : 1993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권 출간 이래 지금까지 모두 16권(국내편 10권, 일본편 4권, 중국편 2권)이 나왔다. 처음부터 빅피처를 그린 건가.
A : "아니다. 첫 권을 낼 땐 국내편 3권으로 끝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게 운명이었나보다. 북한편을 내게 될 줄 몰랐는데 중앙일보를 통해 남북 양측에서 공식 허가를 받아 북한까지 답사하지 않았나. 지난 26년 사이 『화인열전』(2001) 『완당 평전』(2002)등 미술사 책을 더 냈고, 한낱 재야의 미술사가인 내가 문화재청장(2004~2008)까지 지냈다. 시간이 흐르며 나 자신도 변화하고 성장하며 여기까지 왔다."
Q : 중국편 답사 1번지로 둔황·실크로드를 택했다.
A : "베이징이나 쑤저우·항쩌우 같은 고도에서 시작하면 중국 사람들이 주장하는 중화사상 얘기를 안할 수 없겠더라. 또 동북3성 만주부터 쓰면 애국주의적 입장이 강조될 것 같았다. 동아시아 전체 속에서 중국을 바라보고 동서 문화 교류의 접점을 보기 위해 둔황·실크로드를 출발점으로 삼고 싶었다."
유 교수의 둔황 대장정은 모두 세 차례, 25일에 걸쳐 이뤄졌다. 둔황 답사를 오래 꿈꿔왔지만 그 여정으로 그를 먼저 이끈 것은 그의 '예술적 도반'인 이건용(작곡가·전 한예종 총장), 민현식(건축가·전 한예종 미술원장)등이었다. 이 여행길엔 각각 불교사와 불교미술사 전문가인 최연식(동국대), 최선아(명지대)교수 등 동료 학자들도 함께했다.
첫 여정은 시안-허시저우랑-투루판-우루무치로 이어졌고, 두 번째 답사는 우루무치에서 타클라마칸을 거쳐 파미르 고원에서 마무리했다. 세 번째엔 자위관-유림굴-둔황 막고굴-양관과 위먼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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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일흔에 이룬 '답사 로망'
Q : 둔황 답사가 왜 로망이었나.
A : "둔황은 실크로드의 관문이다. 아름다운 모래 구릉 명사산(鳴沙山)과 전설적인 석굴사원 막고굴(莫高窟)이 거기 있다. 막고굴은 내가 한국미술사를 가르치며 불교미술의 원류를 말할 때 빠뜨리지 않고 언급해온 곳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1980년대엔 로망조차 될 수 없었는데, 84년 일본 NHK 다큐멘터리 '실크로드' 30부작을 본 이후부터 더 동경해왔다. '둔황학'이란 학문 분야가 있을 정도로, 둔황은 중국 역사를 이해하고, 불교문화교류사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다."
![병령사 석굴 대불 좌상. 당나라 때 조성된 것으로 병령사 석굴의 상징이다. [사진 창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4/28/joongang/20190428185450355hoyv.jpg)
![병령사 석굴의 와불상.유홍준 교수는 이를 가리켜 "내가 이제까지 보아온 열반상 중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 명작 중의 명작"이라고 극찬했다. [사진 창비][사진 창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4/28/joongang/20190428185450535ckw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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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고굴, 둔황 답사의 백미
A : "막고굴 없는 돈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종주하고 나니 실크로드를 뚫은 힘은 '돈'과 '종교'라는 것을 알겠더라. 1000년의 시간에 걸쳐 하나의 절벽에 그렇게 거대한 석굴 사원이 수 백개(492개)가 만들어졌다. 막고굴이 불교미술의 보고(寶庫)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둔황 막고굴 전경. 불교미술의 보고라 할 만하다. [사진 창비]](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4/28/joongang/20190428185450682gaas.jpg)
![옥문관 관람로. [사진 창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904/28/joongang/20190428185450856ezqk.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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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의 감동은 여전해"
Q : 경주 석굴암의 감동을 다시 강조했다.
A : "중국 문화유산을 깊이 볼수록 우리 문화의 진정한 가치가 새롭게 다가온다. 석굴암은 인류 문화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인공 석굴이다. 과거에 석굴암을 측정했던 남천우 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화강암으로 인공 돔을 만들며 그 엄청난 무게의 돌을 자르고 깎아 세우면서도 10m를 재었을 때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산사 문화와 석굴암에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유 교수는 앞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국내편 제2권에서 "석불사의 석굴, 그것은 종교와 과학과 예술이 하나 됨을 이루는 지고의 최미"라며 토함산의 석굴암이 전하는 감동을 절절하게 전한 바 있다. 당시 그가 전한 석굴암의 감동은 이랬다.
"지금도 석불사의 석굴 앞에 서면 숨 막히는 감동과 살 끝이 저려오는 전율로 인하여 감히 아름답다는 말 한마디조차 입 밖에 내는 것을 허용치 않으며 오직 침묵 속에서 보내는 최대의 찬미만이 가능하다."
"보지 않은 자는 보지 않았기에 말할 수 없고, 본 자는 보았기에 말할 수 없다."
Q : 다음 계획은.
A : "둔황·실크로드는 대장정의 시작일 뿐이다. 올해 마무리할 3권엔 투루판-쿠차-호탄-카슈가르 답사기를 담을 계획이다. 중국의 8대 고도와 고대 고구려·발해와 조선시대 연행 사신의 길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도 한·중 문화교류사 현장도 찾을 예정이다. 중국편 답사기만 10권에 이를 것 같다."
최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유 교수는 "올해 70세이지만 내가 느끼기엔 52세 정도 된 것 같다"면서 "따로 운동하지는 않지만, 답사를 자주 해서 많이 걷는다. 글을 쓰기 위해 술도 자제한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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