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년 케이크입니다""단 것 잘 못먹습니다"..文·아베 궁합 이렇다
아베의 케이크 깜짝 선물에
문 대통령 "단 것 잘 못 먹어" 사양
아베, 평창 올림픽 리셉션 지각
"한·일 정상 신뢰부터 회복해야"
지난해 5월 9일 도쿄의 총리 공관에서 열린 한·일 정상 오찬 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을 위해 준비한 깜짝 선물이 등장했다. 한글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주년 축하드립니다’라고 적힌 딸기 케이크였다. 케이크가 나오자 참석자 모두가 박수를 쳤다.
아베 총리가 "케이크를 드십시다"라고 권했는데, 문 대통령은 "(임플란트 시술을 많이 하는 등) 이가 안 좋아 단 것을 잘 못 먹는다"고 사양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측 참모들이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펜스 부통령과 함께 6시 35분께야 현장에 도착했다. 두 인사는 곧장 리셉션장으로 향하지도 않았다. 리셉션장이 아닌 공간에서 기다리고 있자 문 대통령이 그리 가서 별도로 기념 사진을 찍었다.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펜스 부통령은 사전에 불참을 통보했지만, 아베 총리는 그냥 늦었다. 다른 나라 정상의 일정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며 불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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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이한 두 정상 스타일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의 첫 회담을 시작으로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5번의 회담과 12번의 전화 통화를 했다. 하지만 문재인-아베 시대 한·일 관계엔 ‘역대 최악’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있다.
두 정상간 호흡 불일치엔 양국간 고질적인 갈등 구조가 자리한 때문이지만 두 정상의 판이한 스타일도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아베 총리는 최근 과감한 스킨십을 선보이곤 한다. 정치 초년병 시절엔 '수줍은 도련님'이란 별명도 있었지만 옛날 이야기다. 아베 총리는 2016년 말 취임도 안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러 트럼프타워 펜트하우스를 찾아갔다. 갈 때 ‘첫째는 그의 말이 무조건 옳다고 할 것, 둘째는 그보다 짧게 얘기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응법도 숙지했다고 한다. 아베는 2017년엔 트럼프 대접에 열중하다 골프장 벙커에 빠지는 굴욕도 겪었지만 어쨌든 트럼프의 귀를 잡는 데 성공했다는 게 국제 외교가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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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과 기름? 화성·금성 남자?
이런 깜짝 스타일은 문재인 대통령과 잘 맞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논리를 중시한다. 사법고시를 거친 법률가 출신으로 논리에 맞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불편해 한다. 또 납득하지 않으면 쉽게 움직이지 않는 신중파다. 문 대통령은 친분을 위해 어설픈 농담을 던지는 일도, 마음에 없는 얘기를 인사 치레로 하는 일도 잘 없다. 특히 허세가 들어간 퍼포먼스엔 관심이 없다. 문 대통령은 필요한 말을 하는 스타일이라 없는 말은 잘 하지 못한다는 게 그를 오래 접했던 여야 국회의원, 당직자, 친문 인사들의 공통된 얘기다.
두 정상은 살아온 길도 180도 다르다. 아베는 어려서부터 총리 외조부(기시 노부스케)의 무릎 위에서 놀았고, 외무상 아버지(아베 신타로)의 비서를 지냈다. 일본 근·현대사를 쥐락펴락한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에 보수ㆍ친기업 계층이 고정 지지층이다. 반면 문 대통령의 부친은 일제 시대 흥남시청 농업과장을 지내다 월남했다. 문 대통령은 학생운동을 했던 인권 변호사 출신이다. 아베 총리는 태어나는 순간 정치인으로서의 인생이 결정됐지만, 문 대통령은 실향민의 아들이었고 처음부터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다.
이처럼 출신 배경부터 인생의 경로까지 판이하니 두 정상을 놓곤 ‘금성 남자와 화성 남자’, '물과 기름' 아니냐는 비유까지 한일 외교가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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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신뢰 회복이 급선무”
한일 정상이 만날 수 있는 계기는 오는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다. 문 대통령이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유동적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강경화 외교장관은 13일 “일부 다자 정상회의에는 국무총리의 참석을 우선 검토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일본연구소 남기정 교수는 "현 한일관계가 과거와 가장 다른 점은 정상간에 신뢰가 전혀 없다는 점"이라며 "과거엔 정상과 직결되는 측근이나 복심이 연결고리의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그 마저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임 주일대사는 청와대의 사고구조를 솔직하게 전달하고, 일본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상간 신뢰를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도쿄=서승욱ㆍ윤설영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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