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일본 조각·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 | 앤디워홀도 따라한 반복의 미학 선구자

2019. 3. 18.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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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도널드 저드가 소장했던 작품으로 2008년 11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낮은 추정가의 두 배 이상인 약 580만달러(약 65억원)에 낙찰돼 당시 쿠사마의 작품 중에서 경매 최고가로 기록됐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직후,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세워진 기록이어서 더욱 큰 화제가 됐다.
2008년 11월 12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3m에 육박하는 큰 그림 한 점이 열띤 경합 끝에 60억원 넘는 가격(약 580만달러)에 낙찰됐다. 이는 낮은 추정가를 두 배 이상 뛰어넘는 높은 낙찰가였고, 해당 미술가의 작품 가운데 당시로서는 경매 최고가 기록이었다.

이 경매가 있기 불과 두 달 전, 세계적 규모의 글로벌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라더스가 600조원이 넘는 막대한 부채 앞에 속수무책 무너져 파산을 신청한 상태였다. 그 여파로 미국, 아니 세계 경제가 한창 술렁이고 있을 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경기 침체의 직격탄 속에서도 이런 대단한 기록을 세운 주인공은 일본 현대미술의 대모라 일컬을 만한 쿠사마 야요이다.

이날의 경매가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녀의 무궁무진한 창조력, 방대한 작품 세계와 동년배 서양 예술가들에게 미친 엄청난 영향력을 고려하면 오히려 대단한 기록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다. 우리는 흔히 그녀를 물방울무늬 점 또는 그물 모양의 반복적인 패턴과 재미있는 호박 모티브로만 기억하고는 한다. 하지만 사실 쿠사마는 그보다 훨씬 논할 것이 많은 중요한 현대미술가다.

그녀가 시애틀을 거쳐 뉴욕에 정착한 것은 1958년, 방년 스물일곱의 나이였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일본으로부터의 탈출을 각고의 노력 끝에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녀는 상당히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늘 불행했다. 아버지의 끝없는 외도와 이에 분노한 어머니의 폭력적 언행이 끊이지 않은 탓이다. 심지어 어려서 아버지와 외간여자의 적나라한 성행위 장면을 목격하기까지 했으니 마음의 상처가 오죽했으랴. 시집갈 나이가 돼서는 화가가 되려는 꿈을 묵살당한 채, 권력가 집안과의 결혼을 종용당했다.

2012년 럭셔리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이 쿠사마와의 협업으로 구두, 스카프, 가방, 지갑 등 다양한 상품을 발표해 큰 인기를 누렸다. 사진은 해당 협업 프로젝트의 광고 이미지.
미국 이주를 통해 이처럼 물리적, 심리적으로 숨 막힐 듯한 강압적인 환경에서 벗어나자 쿠사마의 억압됐던 창조성이 폭발적으로 분출됐다. 그 덕분에 뉴욕에 정착한 지 1년 만인 1959년, 그물과 점 패턴이 무수히 반복된 그림을 발표했을 때 뉴욕 미술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첫 개인전을 통해서 까다로운 뉴욕 미술계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은 것이다. 200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했던 작품 ‘끝없는 그물(Interminable net #3, 1959년)’ 역시 당시 개인전에서 발표한 작품 중 하나였다. 이 전시는 그야말로 선풍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미술계를 장악한 추상표현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고자 했던 뉴욕의 젊은 미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줬기 때문이다. 일례로 오늘날 미니멀리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도널드 저드는 이 전시를 극찬했고, 후에 작품 조수를 자처하다 그녀와 연인관계로 발전하기까지 했다.
2012년 럭셔리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이 쿠사마와의 협업으로 구두, 스카프, 가방, 지갑 등 다양한 상품을 발표해 큰 인기를 누렸다. 사진은 해당 협업 프로젝트의 광고 이미지.
저드가 솜으로 속을 채우며 조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연작 ‘축적(Accumulation)’의 최초 버전은 1962년에 발표됐다. 솜을 채워 넣은 수백 개의 남근 형태 헝겊 조각으로 1인용 소파 전체를 감싼 작품이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남근을 연상시키는 파격적인 형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최초의 부드러운 헝겊 조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대리석이나 청동 등 조각은 딱딱하다는 서양의 전통 관념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일상용품에 조각을 더했으니 일종의 신개념 설치미술이다. 대부분의 서양미술사 책들은 햄버거나 샌드위치 같은 일상 음식을 대형 사이즈의 헝겊 조각으로 제작한 ‘부드러운 조각(soft sculpture)’을 최초로 선보인 예술가로 클래스 올덴버그를 소개하지만 사실 진짜 선구자는 쿠사마였다.

이뿐 아니다. ‘항공우편(Airmail)’ 스티커를 반복적으로 붙여 캔버스 전체를 채운 작품을 발표한 것도 이즈음이다. 이 작품은 앤디 워홀에게 중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테면 코카콜라 병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반복적으로 찍어서 캔버스 전체를 채운 ‘녹색 코카콜라 병들(Green Coca-Cola Bottles, 1962년)’ 같은 작품은 쿠사마의 ‘항공우편’과의 분명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정작 ‘반복의 미학’으로 유명해진 것은 쿠사마가 아니라 워홀이었다. 이후 워홀은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로 승승장구했다.

1965년에 처음으로 선보인 ‘무한 거울의 방(Infinity Mirror Room)’ 연작도 많은 뉴욕의 동료 예술가에게 영감을 줬다. 이 작품 역시 평생 지속된 ‘무한’에 대한 쿠사마의 강박적, 편집증적 집착을 표현한 작품이다. ‘무한 그물’ 회화 연작에서 보여준 반복적 패턴을 유리 구슬이나 거울 등을 이용해 3차원 공간으로 확대했다. 일종의 만화경 같은 환영이 실제 3차원 공간으로 옮겨진 듯한 환상적인 공간으로, 마치 무한대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새로운 인지 경험을 제공하는 흥미로운 설치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도 미국 남성 예술가가 차용해 더 유명해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비록 첫 개인전으로 선풍적인 반응을 얻기는 했지만, 결국 여성인 데다 먼 동방의 타국에서 온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엄연히 존재했던 셈이다.

게다가 그녀는 1960년대에 히피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과격한 누드 퍼포먼스를 통해 베트남전쟁 참전 반대, 동성애 인권보호운동 등 사회운동에 적극 앞장서면서 미술계 중심에서 점차 벗어난다. 그동안 동료이자 잠시 연인이었던 저드마저 미니멀리즘의 대표 예술가이자 이론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녀의 누드 행위예술 역시 다음 세대 미국 페미니즘 여성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줬지만 자신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베네세재단이 운영하는 지추미술관, 이우환미술관 등 예술 특화 섬으로 널리 알려진 나오시마에 설치된 쿠사마의 대형 호박 조각.
이어지는 불평등에 좌절을 견디지 못하고 1973년, 쿠사마는 결국 일본 귀국길에 오른다. 우울증과 강박증이 한층 심각해지면서 1977년에는 자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지경에 이른다. 한동안 미술 작업을 전혀 하지 않고 소설과 시를 쓰면서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오랜 휴지기를 거쳐 다시 미술 작업을 시작한 그녀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일본관 대표미술가로 참여하면서였다. 자신을 상징하는 점 무늬가 입혀진 호박 조각으로 대히트를 친 것. 60대가 돼서야 예술가로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후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여러 회고전을 가지면서 쿠사마는 오늘날 독보적인 여성미술가로 굳건한 자리매김에 성공했다. 이제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의 한 명이자,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예를 들어 2012년에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과의 협업을 선보인 바 있다. 가방, 팔찌, 구두 등 액세서리 이외에도 그녀의 무한 그물과 점 패턴은 뉴욕, 런던 등 실제 매장의 디스플레이까지 점령하면서 지금까지도 패션과 아트의 협업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프로젝트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녀를 뒤늦게 알아차린 미안함을 표현이라도 하려는 듯 지금도 전 세계는 쿠사마의 작품과 사랑에 빠져 있다. ‘영원히 사랑하라(Love Forever)’는 그녀의 주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

[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9호 (2019.03.13~2019.03.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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