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장하성의 늦은 고백 "난 이상주의자였다"
소주성 성과 묻자 "내가 오늘 할 얘기 아니다"
"저는 이상주의자입니다."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의 '선봉장'에 섰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65)이 자기 고백을 했다. 불과 석 달 전까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진두지휘했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소주성이 자신의 이상주의적 관념에서 나왔다는 비판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소주성은 최악의 소득격차, 고용대란 등 경제를 파탄 위기로 몰아간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는 "정치는 제 관심사가 아닌 것 같다"며 정계 진출에는 선을 그었다.
지난해 11월 청와대에서 하차한 후 두문불출하던 장 전 실장이 26일 자신의 모교인 고려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은 장 전 실장이 고려대 교수로서 29년간의 세월을 마무리하는 정년퇴임식이 열렸다. 그는 퇴임사에서 자신을 "이상주의자"라고 소개했다. 이어 "물론 나름대로 현실에 뿌리를 내린 이상주의자이고 싶었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공직과 교단을 떠나 완전한 자연인 신분이 된 장 전 실장은 그동안 마음 속에 담고 있던 소회를 마음껏 털어놓았다. 그는 "젊었을 땐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미래, 무지개가 있다고 믿고 무지개를 좇아다녔다. 이제 세월이 흐르고 경험도 생기고 하다 보니 무지개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도 "그러나 나는 감히 계속해서 철없이 무지개를 좇는 소년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소주성 1년6개월 만에 우리 경제는 위기에 직면했다. 고용, 소득분배 지표는 역대 최악을 기록하고 있고 정부는 이를 메우기 위해 복지ㆍ일자리 정책에 수십조 원의 세금을 퍼붓고 있다. 그렇지만 장 전 실장의 신념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는 "이 사회를 보다 낫게 만들겠다는 제 개인적인 열정은 지속될 것"이라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 않는 사회는 죽은 사회"라고 강조했다. 퇴임 이후 정치에 몸담을 생각은 없다는 뜻은 분명히 했다. "현실 정치에 정치인으로서 참여하는 건 과거에도 관심이 없고, 지금도 없다"며 "학교를 그만두지만 앞으로도 저의 관심사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장 전 실장은 경영대학 교수들에게 "경영학은 현실밀착적인 미시적 학문"이라며 의미심장한 조언도 건넸다. 그는 "개인의 합리적인 최선의 선택이 우리 조직, 공동체, 사회, 국가에 합리적인 최선의 선택이 되지 않는 '구성의 오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개인의 소득증대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 등 소주성 정책을 폈지만 기업의 비용 부담이 늘어 결국 국가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그는 "우리가 속한 시대와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경영학자로서의 역할에 좀 더 충실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장 전 실장은 얼마 전 재산 증식 문제로도 입방아에 올랐다. 민생경제는 무너지고 있는데 그의 재산은 청와대 재임 당시 11억원 늘어 100억원을 훌쩍 넘기자 민심은 들끓었다. 이에 대해 장 전 실장은 아시아경제와 만나 "재산 공개 다 한 거다. 새삼스럽게 나한테 물을 일은 아니잖나"라고 반문했다. 소주성의 공과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내가 오늘 할 이야기도 아니고, 할 자리도 아니다"는 대답만 거듭했다.
이날 퇴임식은 조용하면서도 단출했다. 경영대학 외 타 단과대학 교수들에게는 초청장도 전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취재 경계는 삼엄했다. 학교는 행사장 출입을 막고 장 전 실장 주변 접근조차 차단했다. 교직원과 학생들까지 동원해 행사장 문 앞을 지켰다. 학교 관계자는 "정년퇴직을 축하하는 자리인데 방해하시면 곤란하다"고 취재진을 막았다. 그러나 학문에 평생을 몸 바친 교수의 퇴임을 축하하는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자리라기보다는 몇몇 소수만이 참여하는 비공개 행사처럼 비쳤다.
취재 후일담 하나. 퇴임행사 1시간 전, 건물 앞에 형형색색의 학사모와 학위가운을 입은 경영대학 교수 40여명이 등장해 장관을 이뤘다. 장 전 실장 퇴임 기념 단체사진 촬영을 위해 특별히 복장을 갖췄다고 한다. 장 전 실장이 맨 앞자리 중앙에 앉았고, 교수들이 그를 에워싸듯 둘러섰다. 사진기사가 촬영 전 "파이팅을 외쳐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한 참석자가 "파이팅 말고 장하성을 외치자!"고 큰 목소리로 제안했지만, 주변의 호응이 없어 무위에 그쳤다. 장 전 실장은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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