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나간다고 축하 현수막까지, 일본 학교는 왜?

김경년 2019. 2. 1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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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옥탑방 일기 15화] '부카츠'를 아시나요

[오마이뉴스 김경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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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에노의 한 고등학교 건물에 걸려있는 현수막. 대부분이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축하하는 내용이다.
ⓒ 김경년
 
필자가 사는 곳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인 우에노역 부근은 도쿄 동북부 지역 교통과 상업, 관광의 중심지다. 근처에 공원, 시장, 박물관 등 볼 것도 많고 해서 다리운동도 할 겸 교통비도 아낄 겸 시내 외출 땐 일부러 우에노역까지 걸어간다.
 
그런 우에노역 바로 옆 한 고등학교 건물 빼곡히 언제부턴가 현수막이 주렁주렁 매달리기 시작했다.
 
'축, 전국고교체육대회 육상 출전 - 육상경기부'
'축, NHK배 전국고교방송 콘테스트 참가 - 방송부'
'축, 취주악 콩쿠르 도대회 금상 수상 - 취주악부'
'축, 일본고교유도팀 한국파견선수단 선출 - 스즈무라 OOO군'
'축, 간토(關東)대회 출전 - 유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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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볼 땐 그저 '학교 자랑 되게 떠들썩하게 하네'라고 생각하고 지나쳤다. 근데, 현수막의 글씨를 자세히 읽다 보니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금상을 수상했다든지, 한국에 파견할 선수단에 뽑혔다든지 정도는 이해하겠는데 그저 대회에 출전했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자랑거리가 되나.
 
허나 일본의 중고등학교에 '부카츠(部活)'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해가 됐다. 부카츠란 굳이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특활' 정도 되겠다. 내가 학교 다닐 때를 회상해 보면, 일주일에 한 시간씩 공부 외에 운동이나 취미, 종교 활동을 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시간이 다였다. 그 이상은 '학업에 열중해야 하기에' 허락되지 않았다. 아마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듯 싶다.
 
부카츠나 특활이나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축구, 야구, 농구, 탁구, 배구, 수영 등을 하고, 다른 취미생활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밴드, 미술, 서예, 외국어, 다도 같은 걸 선택하는 것까지는 똑같다. 재학생 대부분은 이 중 하나를 거의 필수적으로 가입하게 된다.
 
에이스 선수도 시험봐서 대학가는 일본
 
그러나 다음부터는 차원이 달라진다. 수업이 끝나면 매일 운동장이나 체육관, 연습실에 모여 녹초가 되도록 연습을 하고 집에 간다. 일본의 중고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야간자습을 하거나 학원에 가는 게 아니라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다.
 
부카츠 활동은 학교 내에서 끝나지 않고 외부 대회로도 이어진다. 매년 치러지는 현(縣)대회나 전국대회에 출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학교와 예선 경기를 치러야 한다. 도쿄의 경우 시대회에서 우승하면 도(都)대회에 나가고 거기서 잘 하면 다시 전국대회에 출전하게 되는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커져서, 대회에 나가기 위해 주말에도 학교에 나가 연습하는 부작용도 있지만 학교 수업을 빼먹는 일은 없다.
 
예선 없이 어느 팀이나 참가할 수 있는 한국의 봉황대기 고교야구에 참가하는 팀이 기껏해야 60~70개 정도인 데 비해, '고시엔(甲子園)'이라고 불리는 일본고교야구선수권대회 참가팀이 4천여개나 되는 것은 부카츠 때문이다.
 
그러다가 중3이 되면 특출한 재능이 있는 아이는 해당팀이 있는 고교에서 스카웃해 가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부카츠 활동을 그만둔다. 진학시험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교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공부보다 부카츠 활동에 더 소질이 있다면 대학팀이나 프로팀에 가지만, 대부분은 시험을 봐서 진학을 하게 된다.
 
우리는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못 내면 대학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사생결단식으로 대회에서 성적을 내려 한다. 그러나, 일본 아이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평소에 부카츠 활동과 함께 학교 수업을 착실히 받아 왔기 때문이다. 고시엔에서 우승한 팀의 에이스 선수들도 경기가 끝나자마자 진학시험 준비를 해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그러니까 도대회라든가 전국대회에 출전한다는 건 성적을 떠나서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다. 수많은 이웃 학교들과의 경쟁을 거친 결과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플래카드를 걸어줄 만한 일 아닌가.
 
 학교를 늦게 마치고 귀가하고 있는 일본의 여고생들.
ⓒ 김경년
 
사회적응 못하는 낙오자 만드는 '엘리트체육'
 
쑥스럽지만, 필자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탁구부에 들어간 적이 있다. 역시 비슷한 이유로 '징발된' 친구들과 함께 교실을 개조해 만든 연습장에서 탁구를 쳤다. 당시 학교는 어떤 이유에선지 갑자기 탁구부를 급조해 단기간 내 성적을 내야 할 처지였었나 보다.
 
운동에 별 소질도 없으면서도 무서운 표정의 코치 선생님이 시키는 일이니 어쩔 수 없이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연습을 하게 됐다. 원산폭격같이 군대에서나 받는 다양한 얼차려를 그곳에서 일찌감치 배웠다.
 
문제는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 연습을 하더니, 경기가 가까워지면 아예 하루종일 수업을 제꼈다. 그런데 1년 반 쯤 지나 지역예선전에서 탈락해 이듬해 소년체전에 나갈 수 없게 되자 팀이 해체됐다. 실력이 뛰어났던 부원 몇 명은 체전에 나가는 학교로 스카우트돼 가기도 했지만 다행히(!) 별로 눈에 띄지 못했던 나는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못 배운 공부를 다시 따라가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남들이 손을 들길래 같이 들었다가 선생님에게 지목됐지만 대답을 못해 쩔쩔맸던 기억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만약 그때 팀이 해체되지 않고 계속 했더라면 나는 지금 뭐가 되어 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세월이 40년이나 지난 2019년도 대한민국의 학교 스포츠는 뭐가 변했나. 소수의 선수들을 뽑아서 공부는 내팽개치고 죽어라 운동만 하는 기계로 키우다가, 그 중에서도 일부만 진학하고 운 없는 아이들은 아무런 안전망도 없이 내버려지는 시스템이 온존하고 있다. 아니, 예전에 없던 성폭력 사건까지 고구마줄기처럼 나오고 있다. 예전에 없던 게 아니라 분위기 탓에 터져나오지 못했던 것뿐이겠지.
 
엘리트체육? 누가 말도 잘 지었다. 10%만 엘리트로 만들고 나머지 90%는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낙오자로 만드는 게 어떻게 엘리트체육인가, 낙오자체육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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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도쿄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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