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고독을 그린 화가, 에드워드 호퍼
[더,오래] 송민의 탈출, 미술 왕초보 (16)
한국 사회의 1인 가구 비율이 약 30%라는 뉴스를 듣고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브루클린의 방’이 떠올랐다. 이 그림은 아파트 창가에 홀로 앉아 있는 누군가를 그린 그림이다. 왠지 고요하고 쓸쓸하다.
호퍼의 작품에선 고독한 시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이 태어난 뉴욕이 대도시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본 그는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도시생활을 주제로 그렸다. 이 시기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웠다. 왜 그는 이런 풍요로움과는 동떨어진 고독한 사람을 담게 되었을까. 풍요로운 미국 사회 이면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약 100년 전으로 거슬러 가보자.
‘풍요의 사회’ 미국 도시인의 고독감 표현
호퍼는 1932년 대공황 시기에 ‘뉴욕의 방’을 그렸다. 뉴욕의 깊어가는 밤을 배경으로 두 사람이 저택의 거실에 있다. 남편은 신문에 몰두한 채 옆에 있는 아내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아내의 몸은 반은 남편에게, 반은 섭섭함을 달래려는 듯 피아노를 향해 있다. 남성은 정리 해고 대상이 되는 운명을 앞두었거나, 사업이 도산할 위기에 놓였는지도 모른다.
유럽은 1930년대 대공황과 2차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큰 혼란에 휩싸였다. 반면 대서양 건너 미국은 대공황을 극복하고 경제 성장으로 중산층이 확대됐다. 1950년대의 미국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해 초강대국이 됐고, ‘풍요한 사회’로 불렸다.
미국은 고속도로와 기차같은 대중교통수단으로 전국을 연결했다. 철도 근처에 19세기 빅토리아풍의 집이 들어섰다. ‘이층의 햇빛’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정지된 모습으로 먼 곳을 응시하고, 햇빛은 그들 위에서 반짝거린다. 호퍼는 전국을 여행하는 시민들의 여가 생활을 주제로 삼았다. 기차를 타고 호텔에 머무는 모습을 담아낸다.
대도시는 회사원들로 넘쳐났다. 호퍼의 ‘밤의 사무실’은 멀리서 영화를 찍 듯이 그렸다. 사람들은 사진의 발달로 회화는 죽었다고 절망하며, 사실적인 그림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새로운 회화형태인 입체파와 추상표현주의가 등장했다.
하지만 로버트 헨리는 미국의 도시를 사실적으로 그렸고, 제자인 호퍼는 그 영향을 받았다. 또한 호퍼는 자아를 탐구한 렘브란트의 영향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호퍼는 번화한 뉴욕거리의 활기찬 모습이나 빈곤한 도시의 뒷골목 등을 그리지 않았다. 줄곧 고독한 모습을 그린 이유를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의 사회과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1950년 대에 발표한 저서 『고독한 군중』을 보면 그 비밀이 조금씩 풀리는 듯하다. 리스먼은 미국인은 소속된 집단에서 소외될까 불안해 늘 타인의 생각과 행동에 신경을 쓰는 타인지향적인 특징을 보인다고 했다. 이에 내면으로는 고립감과 갈등을 느껴 고독한 군중이 된다고 말했다. 또 1940년대 말부터 보급된 TV는 대공황 등 혼란을 경험한 세대의 타인지향적인 성향을 더욱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20세기를 관통했던 현대 대중사회 특징을 잘 담아내고 있다. 이를 정리해보면, 호퍼는 풍요로운 대도시의 특징을 보색 대비의 뛰어난 색감으로 묘사했다. 대량 공급된 주택, 아파트, 기차, 카페, 극장, 사무실, 가구 등이 그것이다.
또 호퍼는 도시의 특징인 익명성을 독특한 방법으로 표현했다. 멀리서 관찰해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화법이다. 그림 속 인물과 화가(감상자)는 낯선 관계, 바로 익명성을 갖게 된다. 대부분의 인물은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시선은 공간 속을 비껴간다. 이러한 시선의 거리까지 더해져 고독한 군중에 대한 묘사는 효과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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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의 고독을 부각시키는 빛
호퍼는 도시인의 고독감을 표현하기 위해 인물의 동작을 모두 정지시켰다. 굳은 표정과 더불어 몸짓도 딱딱하게 멈춘상태다. 인물의 고독을 강조하기 위해 빛을 이용했다. 고독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어두운 내면과 빛이 대비된다. 따뜻한 인간관계를 바라는 도시인의 욕망은 빛으로 더욱 강조된다. 그리하여 호퍼만의 빛은 탄생된 것이다.
호퍼의 그림을 보는 이들은 주인공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쉼을 얻기도 한다. 또 혼자만의 외로움은 아니라는 잔잔한 위로와 감동을 받기도 한다. 에드워드 호퍼는 현대사회의 고독한 군중을 그린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21세기 세계인들에게도 공감을 얻고 있다.
송민 미술연구소 BRUNCH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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