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기자의 Activity] '매사냥 기초훈련' 받아보니 날카로운 부리·발톱 후덜덜..눈맞춤 짜릿

나건웅 2019. 1. 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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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예로부터 고난의 계절이었다. 살을 에는 추위는 기본. 식량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굶주림에 두 번 울었다. 그 시절 ‘겨울의 사냥꾼’은 그야말로 영웅이었다. 특히 어깨에 매 한 마리 떡하니 올린 채, 눈발을 뚫고 나서는 ‘매사냥꾼(응사)’이야 말할 것도 없다. 추수가 끝나고 시야가 탁 트인 겨울이야말로 매사냥의 적기였다. 꿩 한 마리라도 잡는 날이면 잔칫상이 펼쳐졌다. 한국 전통 방식의 매사냥은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재에 선정됐다.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한국민속촌’은 사냥꾼의 계절인 겨울을 맞아 최근 특별한 축제를 준비했다. 이름하여 ‘설원의 사냥꾼’. 선조의 겨울철 수렵생활을 직접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이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역시 ‘매사냥’. 그래서 직접 해봤다.

한국민속촌에서 매사냥 기초 훈련인 ‘줄밥 부르기’에 도전했다. 20번이 넘는 호출 끝에 2살짜리 참매 ‘대봉이’가 기자 손 위에 날아와 앉은 모습.
▶TPO는 기본, 천리길도 옷차림부터

▷장군·포졸·기생까지 ‘코스프레 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던 한옥과 초가집이 눈앞에 펼쳐지자 마음이 들뜬다. 민속촌과는 어울리지 않는 외래어 하나가 떠올랐다. ‘티피오(TPO, 시간·장소·상황)에 맞는 복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체험에 앞서 복장부터 제대로 갖추기로 했다.

민속촌 주변에는 조선시대 전통 복장을 대여해주는 매장이 여럿 있다. 찾는 것은 물론 사냥꾼 의상. 북슬북슬한 털모자와 팔 토시, 두툼한 가죽조끼를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아쉽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직원에게 “일일 사냥꾼 체험을 해보려고 하는데 어떤 옷이 좋을까요?” 물었다. 그가 잠시 고민하더니 옷장 구석에서 화려한 황금색 의상 하나를 꺼내 든다. 이른바 ‘놀부 옷’이라 불리는 한복이다. “사냥 체험은 처음이라 서툴 것이다. 차라리 부자 코스프레를 하고 다니는 게 덜 부끄러울 수 있다”는 그의 설명이 꽤 그럴싸하다.

누런 두루마기로 한층 멋을 부리고 다시 거리를 나섰다. 전통 복장을 차려입은 다른 방문객들이 그제야 눈에 띈다. 장군용 갑주를 입은 사람을 비롯해 포졸, 마당쇠, 선비도 보인다. 새색시나 기생 옷차림을 한 ‘형님’들도 여럿 있다. 저마다 민속촌이 주는 정취를 제대로 즐기고 있는 듯.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50년 매사냥 외길인생 ‘박용순 응사’

우렁찬 기합 소리로 매 사로잡아야

기합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사냥꾼 체험 장소에 가까워진 모양이다. 탁 트인 마당에 솟대가 솟아 있다. 그 위로 크기와 생김새가 각기 다른 매 4마리가 위풍당당 앉아 있다. 그 속에 기합 소리 진원지인 ‘박용순 응사’가 있다. 전국에 딱 2명뿐인 ‘매사냥 기능 보유자’ 중 한 명으로 대전 무형문화재 8호다. 50년 가까이 매사냥 외길만을 걸어온 ‘달인’이라나. 사냥꾼용 털모자를 눌러 쓴 밑으로, 덥수룩 자라난 콧수염과 턱수염 덕에 그 인상이 한층 더 강렬하다.

박 응사는 ‘설원의 사냥꾼’ 축제가 열리는 1월부터 3월까지 주말마다 ‘매사냥 시연’을 선보인다. 매를 훈련하는 기초 과정을 소개하고 관객들이 이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가 데려온 매 중 최고 ‘인기매’는 ‘대봉이’다.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에서 배우 현빈의 특수 아이템으로 출연한다는데, 드라마를 안 봐서 ‘몰라뵀다’. 대봉이는 예로부터 매사냥에 쓰여온 대표적인 사냥매인 ‘참매’다. 어린아이에게 인기가 높은 매는 제일 작은 ‘쪼롱이’. 크기는 성인 얼굴만 하다. 황조롱이는 작은 맹금류라 초보자와 여성이 주로 활용했다.

시연에 앞서 박 응사가 매사냥에 대한 개념과 훈련 과정을 간단히 설명했다. “야생매를 잡아 사냥매로 길들이는 과정을 ‘순치’라고 합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훈련 2가지를 알려드릴게요. ‘줄밥 부르기’와 ‘공중 잡이’라는 것입니다.”

줄밥 부르기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밥 줄 테니까 오라고 부르기’다. 사냥감을 찾아 날아갔던 매를 되돌아오게 하는 훈련이다. 매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손에 미끼를 들고 유혹한다. 미끼는 매가 좋아하는 꿩고기와 닭고기를 섞은 고깃덩이다. 닭다리 잡듯 손에 쥔 채 ‘따봉’을 날리는 것처럼 휙 들어 올리며 기합 소리 “헛!”을 내면 된다. 한눈팔던 매가 미끼를 쳐다보고 손 위로 날아오게 만들면 성공. 훈련은 매와 응사 사이 거리를 조금씩 벌려가면서 계속된다. 하루라도 훈련을 빼먹으면 안 된다. 매의 야생성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전국에 딱 2명뿐인 매사냥 기능 보유자 박용순 응사가 ‘공중 잡이’ 시범을 보였다.

▶우아한 자태, 코앞서 보니 ‘공포’

▷올 때까지 불러야…끈기의 싸움

박 응사의 시연이 시작됐다. 그가 대봉이 발목에 묶여 있던 줄을 풀어 던진다. 비장한 말투로 “이대로 매를 날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더니 이윽고 “남자는 배짱!”을 외치며 매를 날려 보낸다. ‘오오’ 하는 군중의 감탄사를 뒤로한 채 대봉이가 20m 거리에 있는 솟대를 향해 날아올랐다. 날갯짓 한번 없는 우아한 비행. 박 응사가 “헛!” 기합 소리를 서너 번 내자 대봉이는 제자리에 돌아오듯 박 응사 품으로 다시 날아왔다. 박수갈채, 짝짝짝.

이번에는 기자 차례. 생초보인 만큼 대봉이와 2m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훈련을 진행했다. 10번 넘게 “헛! 헛!”거렸지만 헛수고. 대봉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기합 소리 문제일까. “얍!”과 “호우!”도 간간이 섞었지만 역시 묵묵부답이다. 박 응사는 “매사냥은 끈기의 싸움입니다. 어지간한 노력 없이는 되돌아오지 않아요. 옹고집이라는 표현 역시 ‘응고집’에서 유래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20번 넘는 시도 끝에 드디어 대봉이의 시선이 미끼에 와 닿는다. 기자 팔뚝 위로 푸드덕하고 착륙한 녀석. 마침내 대봉이를 마주한 순간이다.

잠깐만. 무섭다. 멀리서 볼 때는 그렇게 늠름하고 우아하기만 한 녀석이었지만 코앞에서 대면하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손 보호용 가죽장갑 ‘버렁’을 착용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발톱은 가죽을 뚫을 듯 예리했고 아귀힘은 무척 셌다.

박 응사가 “매와 교감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 콘택트(눈 맞춤)! 아이 콘택트!”를 외쳤다. 용기를 내어 대봉이를 바라봤지만 금방이라도 부리로 눈을 쫄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박 응사는 “훈련된 매는 절대 사람을 해치지 않으니 안심하라”고 했다. 긴장이 풀리고 나중에는 대봉이 가슴팍을 쓰다듬을 정도까지 발전했다. 녀석도 기분이 좋은지 가만히 손길을 즐기는 모습. 하지만 돌발 행동은 위험할 수도 있다. 매는 실제 사냥용 매다. 훈련 중인 매를 갑자기 만지면 물릴 수 있다. 또 뾰족한 물건이나 긴 막대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셀카봉 촬영은 삼가야 한다.

두 번째 훈련은 ‘공중 잡이’다. ‘줄밥 부르기’가 매를 불러들이는 훈련이었다면, 공중 잡이는 정말 사냥을 위해 필요한 훈련이다. 줄에 매단 모형 꿩을 쥐불놀이하듯 뱅뱅 돌리다 하늘 높이 던지면 매가 날아와 낚아챈다. 최대한 똑같이 따라 해봤지만 결과는 달랐다. 있는 힘껏 돌리다 하늘 높이 내던졌지만 툭, 맥없이 바닥에 떨어지는 모형 꿩. 응사 님도 침묵, 대봉이도 침묵. 겨울바람이 ‘매섭게’ 얼굴을 스친다.

한국민속촌에서는 모형으로 진행하지만 실제 꿩으로 시연하기도 한다. 사냥 방식도 비슷하다. 들짐승이나 날짐승을 포착하면 쏜살같이 날아가 두 발로 움켜쥐고 부리로 숨을 끊는다. 응사는 매에 달아놓은 방울 소리를 듣고 매를 찾아가 사냥물을 거둬들인다. 박 응사는 “실제 야생매를 길들이고 매사냥에 나서기 위해서는 3년 정도 전수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덜 무서운 ‘빙어사냥’도 가능

▷겨울철 가족 나들이로 제격

고난도 매사냥은 초보 사냥꾼에게 다소 가혹했다. 하지만 다행이다. 한국민속촌에는 매사냥 외에도 진정한 사냥꾼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 행사가 마련돼 있으니. 민첩성을 높이기 위한 ‘얼음썰매’, 근력을 키워주는 ‘장작패기’, 감각을 끌어올리는 ‘연날리기’ 등 여러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설원의 사냥꾼’ 콘셉트에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은 있지만 어떤가. 한겨울 가족 나들이로 재미있는 추억을 쌓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빙어 낚시’도 즐길 수 있다. 꽝꽝 얼어붙은 개천에 구멍을 내 낚싯대로 건져 올린다. 잡은 빙어는 그 자리에서 바로 튀겨 먹을 수도 있다. 한국민속촌 관계자는 “겨울철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형 놀이를 구상하던 중 ‘설원의 사냥꾼’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 사진 : 최영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3호 (2019.01.23~2019.01.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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