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21C 대한민국과 단테의 신곡'-인간의 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은 '의도성'
단테의 ‘인페르노’ 제9곡은 ‘의도’에 관한 이야기다. 의도는 인간의 죄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지옥의 첫 번째 다섯 환은 ‘상부지옥’이고 나머지 네 환은 ‘하부지옥’이다. 제9곡은 상부지옥과 하부지옥을 구분하는 경계의 지형적인 특징과 철학적이며 신학적인 원칙을 다룬다.
상부지옥은 색욕, 식탐, 인색과 욕심 혹은 분노, 우울과 같은 죄를 다룬다. 이 죄들은 하부지옥에 등장하는 죄와 비교했을 때 경범죄이고 자신의 분수를 몰라 생겨나는 것이다. 분수를 수련한 적 없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상태인 ‘무절제’에서 비롯된다. 무절제는 자신의 욕망에 허물어져 저지르는 죄다. 하부지옥에서는 상부지옥보다 심한 죄가 등장한다. 이단, 폭력, 사기, 그리고 반역이다. 이 죄들의 특징은 ‘의도적’이라는 것이다. ‘무절제’의 죄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 저지르는 수동적인 죄라면, ‘의도적인 죄’는 자신의 행위가 악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행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능동적인 죄다. 무절제의 죄와 의도적인 죄를 가르는 또 다른 기준은 그 죄가 끼치는 해악의 범위다. 무절제의 죄는 개인의 죄로, 그 해악이 한 사람에게 국한된다. 그러나 의도적인 죄는 그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 내 가족, 연인, 스승, 공동체 혹은 불특정 다수다.

의도성을 가진 개념이자 건축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디스(Dis)’라는 도시다. 디스는 고대 그리스 지하의 신인 플루토의 명칭이며 그가 거주하는 장소다. 디스의 성벽은 타락한 천사인 악마들이 지킨다. 의도적인 죄를 저지른 자들은 디스 안에 감금돼 형벌을 받는다. 단테에게 ‘도시’는 인간이 신의 섭리에 의도적으로 반항하며 도전하는 상징이다. 구약성서 ‘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신에 대해 한 의도적인 반역에 대한 스토리다. 인간의 말과 언어가 아직 구분되지 않은 최초의 시간에 사람들은 평원에서 거주했다. 그러자 그들에게 ‘의도’가 생겼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의견을 모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도시와 성탑을 건설하고 그 끝을 하늘에 닿게 만들자! 그로써 우리의 명성을 높이고, 땅 위에서 흩어지지 말자.” (창세기 11장 4절)
하부지옥은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안에는 신을 의도적으로 배신한 이단자와 그들을 추종한 자들이 감금돼 있다. 단테는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신앙이 부족한 자들과 신앙을 거부한 자들을 위해 특별한 공간을 지옥에 마련했다.
그 첫 번째 부류인 그리스도교 신앙을 알지 못했던 의로운 이방인을, 무절제를 범한 죄인들이 형벌을 받는 상부지옥의 입구인 ‘림보’에 배치했다. 그리스·로마 철학자와 시인들, 특히 베르길리우스도 이 장소에 거주했다. 두 번째 부류인 그리스도교 신앙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거절한 영혼들은, 의도적인 죄를 범한 죄인들과 같이 하부지옥 입구에 감금됐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사탄의 보루인 높다란 성벽으로 둘러싸인 디스라는 도시 안으로 진입하려 했다. 그들은 무시무시한 사탄의 도시로 들어가려 분투한다. 이들의 두려움은 첫 구절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베르길리우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봤다. 그 순간 비겁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자 베르길리우스는 나의 두려움을 알고 얼굴색을 바꿨다.” (1~3행)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심리적으로 갈등한다. 베르길리우스가 디스 성문 앞에서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단테는 공손하게 베르길리우스에게 묻는다.
“누군가 이 첫 번째 둘레로부터 이렇게 멀리 온 적이 있습니까?” (17행)
이 문장에서 첫 번째 둘레는 베르길리우스의 고향인 림보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가 몰라서 묻고 있다고 생각한다. 베르길리우스는 내려와본 적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렇다. 내가 이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다. 에리크토가 나를 인도했다.”

디스 성문 위에 있던 악마가 등장한다. 이들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를 보자 공격하려 한다. 이들은 세 명의 분노의 여신이다.
“왼편에 메가이라, 오른편에 울고 있는 자가 알렉토, 그리고 그 가운데 티시포네가 있다.” (45~48행)
세 명의 분노의 여신은 베르길리우스의 시에서 ‘에리니에스’ 혹은 ‘에우메니데스’로 등장한다. 그들은 주로 친족에 대한 범죄자를 벌주는 자들이다. 그리스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의 3부작 ‘오레스테스’에서 그들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를 끝까지 쫓아온다. 단테는 아이스킬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분노의 여신들’을 더욱더 악의적인 존재로 표현한다.
이들은 성문 위에서 메두사를 불러 단테를 돌로 만들라고 소리친다. 제3막의 절정은 메두사를 부르는 장면이다.
“메두사가 오게 하십시오. 우리가 그를 돌로 만들겠습니다.”
그러자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보호하기 위해 그의 눈을 가린다. 왜 분노의 여신들은 메두사를 불렀는가? 메두사는 ‘완고’의 상징이다. ‘의도적인 무신앙자’들은 신의 명령을 거부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불타는 관에 누워 나오지 않을 정도로 완고하다. 이들은 마치 메두사의 얼굴을 본 사람처럼 온몸과 정신이 고정됐다.
단테는 독자들에게 메두사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시를 알레고리로 해석하라고 당부한다.
“오, 건강한 지성을 지닌 당신들이여! 이곳에 감춰진 가르침을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구절이란 덮개 아래서 너무 난해합니다.” (61~63행)
단테는 그 교리가 무엇인지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메두사와 고르곤의 이름이 언급된 것으로 볼 때 신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킨 천사들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단테는 신의 도움을 언급한다. 하늘에서 전령(da ciel messo)이 직접 지옥으로 내려왔다. 천사가 스틱스강 위를 걷자 그의 걸음 소리로 스틱스강 둑이 울린다. 한순간에 악마들이 사라진다.
천사가 디스 성문 앞에 다가와 손을 대니 문이 스르르 열린다. 그는 반란한 천사들이 하늘에 반대한 어리석음을 꾸짖고 빠르게 침묵을 지키며 두 순례자와 걷는다. 단테는 비로소 지옥의 공포와 추함을 목격한다. 이 천사의 개입은 단테로 하여금 죄를 깊이 인식하게 만든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주위를 봤다. 사방에 거대한 평원을 봤다. 그곳은 애통하고 잔악한 고통의 장소다.”
그곳에 있는 무덤들이 울퉁불퉁하게 지형을 바꿔놨다. 불길이 무덤 사이에 번져 뜨겁다. 관 뚜껑이 열려 그 안에서 괴로워하는 영들의 고통이 들린다. 단테는 이들이 누구인가를 묻는다. 베르길리우스는 대답한다.
“이단자의 대장들이다. 그리고 모든 종파에서 온 그들을 따르는 자들이다. 그들의 무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붐빈다.” (127~129행)
둘레로부터 불이 활활 타오르는 곳에서 고통받는 이단자들의 죄는 훨씬 의도적이며 고집스럽다. 이들은 메두사의 얼굴을 쳐다보고 마음이 돌처럼 굳은 자들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91호 (2019.01.09~2019.01.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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