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火요일에 읽는 전쟁사]크리스마스와 하누카, '마카베오 전쟁'으로 연결된 두 명절

이현우 2018. 12.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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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위키피디아)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중세시대부터 서구권에서는 12월25일 전후 연말까지 보통 '크리스마스' 연휴였다. 크리스트교에서 가장 중요한 명절인 성탄절을 기념하고, 연말연시까지 함께 기념하는 이 주간은 보통 2주 정도 축제가 이어진다. 이와 별개로 이스라엘에서는 '하누카'라 불리는 축제가 있다.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이 축제는 기원전 2세기, 그리스 셀레우코스 왕조의 침략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냥 봐서는 시기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별반 상관없어 보이는 이 두 명절은 사실 유대 독립투쟁사의 연장선상에 함께 놓여있다. 한쪽은 크리스트교의 명절, 한쪽은 유태교의 명절로 쪼개져있지만 사실 하누카를 모른 채 크리스마스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화적 인물이 아닌, 역사 속 예수 크리스트라는 인물의 탄생과 업적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 생존 시기 이스라엘의 정치, 사회, 문화 모든 것을 형성시킨 '하누카'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만 되기 때문이다.


하누카는 사실 이스라엘의 기나긴 독립투쟁사 중 가장 치열했던 투쟁기 중 하나인 '마카베오 전쟁' 시기에 벌어진 이야기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 이후 중동 일대에 세워진 셀레우코스 왕조는 유태교를 매우 박해했고, 유태교의 교세를 꺾고자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에서 유태인들이 부정하다 여기는 동물인 돼지를 잡는 등 강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여기에 분개한 유태인들은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키는데, 여기에 선봉으로 선 인물이 마타티아스란 이름의 사제였다. 그는 기원전 166년, 아들 유다 마카베오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군대를 일으켰고, 향후 100여년에 걸쳐 펼쳐질 유대 독립투쟁의 막이 본격적으로 열린다.


마카베오 전쟁에 나선 유다 마카베오를 묘사한 그림(사진=위키피디아)

유다 마카베오는 용맹하고 뛰어난 전략가로 오늘날까지 알려져있다. 그의 활약상은 구약성경의 외경인 마카베오기에 나와있다. 그는 셀레우코스 왕조가 주변 여러나라와의 전쟁으로 혼란한 틈을 타 소수 병력으로 게릴라전을 이어가면서 유대지역 곳곳을 점령했다. 또한 전통적으로 안식일마다 칼을 내려놓는 유태인들에게도 상황의 급박함을 전하며 안식일에도 싸워야한다고 강조했고, 이민족 군대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당시까지 유태인들은 모세 율법에 따라 안식일에는 절대 전투를 하지 않는 율법주의자들이 많았고, 그리스 군대는 이를 악용해 안식일 날에 집요한 공격을 감행, 유대 독립군을 토벌하곤 했다. 유다 마카베오의 활약 속에 기원전 164년, 예루살렘 성전이 탈환됐고, 성전은 다시 여호와의 성전으로 복구됐다. 이로 인해 성전을 복구한 날이라 하여 하누카를 보통 '수전절'이라 번역한다.


한편 유다 마카베오는 당시 지중해의 새로운 패자로 자리잡은 로마와 손을 잡는다. 향후 유태지역의 운명을 쥐고 흔들 가장 강력한 외세, 로마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여기에 자극받은 셀레우코스 왕조가 대군을 이끌고 유대지역을 공략, 마카베오는 전투 와중 숨을 거두고 독립투쟁은 그의 동생인 요나단과 시몬에게로 이어진다. 시몬은 기원전 142년 예루살렘을 재탈환하는데 성공한 후, 자신이 왕과 제사장직을 겸직하는 하스모니안 왕조를 개창하는데 성공한다. 이로서 유태인의 마지막 독립왕조가 설립된다.


헤롯왕의 초상 모습. 흔히 헤롯대왕, 혹은 헤로데1세로 알려진 헤롯왕은 성경 속에서 폭정을 일삼고, 예수 탄생과 얽힌 일화에서는 유아살해 명령으로 유명한 인물이다.(사진=위키피디아)

하스모니안 왕조는 시몬의 아들, 요한 힐카누스가 로마와 셀레우코스 왕조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며 잠시동안 평화를 유지하지만, 셀레우코스 왕조가 옛 페르시아 지역에서 일어난 파르티아 왕조에 의해 궤멸되고 서쪽에서는 로마의 명장, 폼페이우스가 중동 전역을 정복하며 밀고 오면서 또다시 전쟁에 휩싸인다. 이 와중에 폼페이우스는 기원전 63년 예루살렘을 점령, 수만명의 예루살렘 시민을 학살하면서 사실상 로마의 지배가 시작된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간 내전으로 로마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다시 하스모니안 왕조는 독립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유대지역의 운명은 이제 로마제국에 의해 좌우되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완전 유태인 출신도 아닌, 혼혈이며 집안 자체도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커진 한 보잘것없는 사내가 등장한다. 로마 정계의 움직임에 따라 안토니우스에게 붙었다가 안토니우스가 실각하자 옥타비아누스로 재빨리 줄을 갈아탄 이 사내는 로마군의 호위를 받으며 유대의 왕으로 임명된다. 기원전 37년, 로마에서는 옥타비아누스가 사실상 초대 황제로 등극한 해에 예루살렘으로 들어온 이 사내의 이름은 헤롯이었다. 신약성경 속 인구조사 명령으로 예수가 말 구유에서 크리스마스를 맞게 한 주인공이자 유아살해 명령으로 예수 일가의 피난을 이끈 그 헤롯왕이다. 로마군을 앞세우긴 했지만, 어쨌든 현지인이 통치하는 마지막 왕조인 헤롯 왕조가 세워진다. 하누카에서 시작한 유태인들의 대 그리스 독립투쟁은 이렇게 크리스마스와 연결되며 첫번째 막을 내리지만, 이는 곧 2000년 넘게 이어질 새로운 독립투쟁 역사의 시작과 맞물리게 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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