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최고 기대작으로 꼽힌 영화 '마약왕(우민호 감독)'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19일 공식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언론시사회 후 '마약왕'에 대한 평가는 '역시' 호불호가 갈린다. 마약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낯선 소재를 차용한 만큼 다소 강렬하고 파격적인 이야기와 비주얼이 담길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예상된 결과다. 또 '마약왕'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은 사실상 한 명. 마약왕이다. 숱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결국 한 인간의 일대기를 그려내는 방식에서 누군가는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건 '마약왕'은 청소년관람불가 즉 19금 등급을 달고 '자극을 위한 자극'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다는데 있다. "그래봤자 자극적인 영화"라는, 아주 단순하고 가벼운 사전 프레임을 씌우기엔 '마약왕'이 담아낸 메시지와 시대상은 꽤 묵직하고 무겁다.
'마약왕'은 마약도 수출하면 애국이 되던 1970 년대, 근본없는 밀수꾼이 전설의 마약왕이 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대한민국에서 실제 발생한 마약 밀매 사건들을 모티브로 당시의 '사회상'까지 담아내는데 주력했다. 마약왕 이두삼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 영화처럼 보이지만, 마약청정구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마약이 만들어지고 수출될 수 있었는지, 또 어떤 움직임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고발 영화이기도 하다. 개인적 욕망은 든든한 뒷배를 필요로 하고, 든든한 뒷배는 결코 아무 조건없이 적선을 해주지 않는다. 수출과 반일 앞에 "그게 바로 애국 아닌가!"를 외치게 만들었던 시대. '마약왕'은 이두삼 개인의 욕망과 파멸을 다루지만 단 한 사람이 일궈낼 수 있었던 과정과 결과가 아님을 여러 번 강조한다.
이를 다룬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 특유의 연출색은 '마약왕'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다. 고발 의식과 이를 블랙코미디로 소화해내는 방식이 기발하다. '내부자들'이 내부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마약왕'은 '마약왕' 자체를 70~80년대를 고발하는 내부자들로 만들었다. 등장인물 구도는 기본 삼각편대가 완벽했던 '내부자들'에 비해 촘촘하지 못하지만, 실제 역사적 사건과 영화적 스토리의 엮임은 빈틈없이 깔끔하다. 고유의 색을 죽이지 않은 것 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이다.
우민호 감독이 장 외에서 작품 전반을 진두지휘 했다면, 송강호는 장 내에서 전체 흐름을 지배한다. 139분이라는 러닝타임내내 쉴틈없이 변주하고 또 변주한다. 송강호가 아닌 다른 배우가 마약왕을 연기할 수는 있었겠지만, 송강호의 분위기는 오로지 송강호만이 완성할 수 있다. 속 된 말로 약을 빨지 않은 채 신들린 '약 빤 연기'를 해냈다. '이 이상 완벽한 연기는 없다'고 감히 평가해 볼 정도로 송강호는 국내에선 아직 누구도 제대로 걸어보지 않았던 마약왕의 표본을 그려냈다. '송강호의 힘'은 소시민의 옷을 벗은 '마약왕'에서도 빛을 발한다.
물론 '마약왕'은 기대만큼 씁쓸함이 큰 영화인 것도 맞다. 기본적으로 공감대를 끌어 올리기 힘든 소재와 이야기다. 관객을 스크린 안으로 함께 초대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그래, 너희들의 이야기'라는 마음으로 관망하게 되는 작품이 있다. '마약왕'은 돈과 야망에 꽂힌 사업가들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일반 관객들에게 후자로 다가 올 전망이다. 마약왕 이두삼을 0순위로 챙기다 보니 수 없이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은 캐릭터의 성격과 설정을 떠나 결국 이두삼을 위해 존재하는 인물들로 스쳐 지나가는 듯 보인다. 분량과 상관없이 단 한 컷의 등장에도 존재감은 다 살아있어 더 아쉬운 대목이다. 유일한 영화적 자극이라 느껴진 외국 언니들의 봉춤은 '그만'을 외치게 만들지만, 19금 딱지를 달고 쓸데없는 정사신을 넣지 않았다는 것은 후한 점수를 주게 만든다.
보는 이들의 성향이 다르 듯 만드는 이들의 성향도 다르다. 100% 호, 100% 불호는 존재하기 힘들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은 그만큼 이야기 할 거리가 많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아무리 아니라고 외쳐도 관객들이 그렇다고 받아들이면 그게 영화의 정답이 된다. 관객들은 '마약왕'의 본질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꺼내놓을지 주목된다.
최종 평가는 관객의 몫이지만 현 시점 영화를 가장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건 감독과 배우다. 송강호는 '마약왕'에 대해 "소재는 마약이지만, 한 사람의 비뚤어진 욕망과 집착, 파멸이라는 굴곡진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한다. 마약 세계를 해부하는 영화가 아니다. 접할 수 없고 접해도 안 되는 세계지만, 그리고 그 세계를 소재로 차용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이두삼을 내세워 끝없이 욕망하고 결국 파멸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는 영화다"며 "배우로서 신나게 연기했고, 20여 년만에 소시민에서 변화를 꾀한 모습을 관객 분들도 반가워 해 주실거라 생각한다"고 진심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