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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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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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계천의 유적 돌다리. |
| ⓒ 김종성 |
청계천엔 건너갈 수 있는 도보용 다리가 22개나 된다. 이 가운데 광통교와 수표교 등 옛 돌다리가 있는가 하면 버들다리처럼 정겨운 이름의 다리와 한때 콘크리트로 하천을 덮고 세웠던 고가다리의 흔적도 남아있어 눈길을 끈다. 서울의 변화 과정을 추억하고 상상하다 보면 청계천은 훌륭한 유적지구나 싶다.
조선 초 만든 광통교와 수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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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통교. |
| ⓒ 김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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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계의 부인 강씨의 무덤에서 가져온 돌로 만든 광통교. |
| ⓒ 김종성 |
청계천이란 현재의 이름은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창지개명(創地改名)'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지명을 새로 지을 때 생겨난 이름이다. 이때 서울의 당시 이름인 '한성'을 없애고 '경성부(京城府)'로 고치는 등 우리의 산·강·지명을 일본식 이름으로 바꿨다.
작은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광화문 청계천 상류에서 하류 방향으로 가다 만나는 광통교(종로구 서린동)엔 멋진 문양을 한 네모난 돌들이 박혀있어 눈길을 끈다. 광통교 돌들엔 역사 속 이야기가 숨어있다. 돌들의 원래 자리는 태조 이성계의 계비, 강씨 무덤으로, 아들 태종 이방원이 강씨 무덤에서 가져왔다.
이성계가 왕위를 강씨 소생이자 세자인 방석에게 넘겨주려고 하자, 전처 소생인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이방원은 이후 정권을 장악하고 나니 강씨가 미웠나보다. 강씨가 죽고 난 뒤에 묘지석을 파가지고 광통교를 만들었다. 한양 사람들이 이 돌들을 밟고 다니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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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양새만 갖춘 수표교. |
| ⓒ 김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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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세종 때 청계천의 수위를 재기 위해 만든 수표. |
| ⓒ 김종성 |
조선 세종 2년인 1420년에 세워진 수표교는 임금의 어가 행렬이 지나가던 다리로 청계천의 상징이었다. 세종 23년(1441)에 다리 옆에 돌로 만든 수표(水標, 보물 838호)를 세워 청계천의 물높이를 재, 수표교로 이름 지어졌다. 천변에 자리한 청계천 박물관(성동구 마장동)에 가면 정문 앞에 서있는 수표를 볼 수 있다.
전태일 동상이 서있는 버들다리
하천을 건너가는 여러 개의 다리 가운덴 천변에 버드나무가 많아 이름 지은 '버들다리'(종로구 종로5가)가 있다. 오토바이와 사람들이 부지런히 오가는 다리 위에 전태일(1948~1970) 동상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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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대문 평화시장이 바라다 보이는 전태일 동상. |
| ⓒ 김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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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태일과 동료들. |
| ⓒ 청계천박물관내 사진촬영 |
근로기준법에 8시간만 노동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우리는 여태껏 그것을 몰랐으니 바보가 아니었느냐?'라는 깊은 각오가 전태일로 하여금 그런 역설적인 이름을 짓게 했다고 한다.
물길을 콘크리트로 덮고 세운 고가도로
하천 위에 있었던 높다란 고가도로 일부가 서있다. 청계천을 복개(하천이 흐르는 위를 콘크리트로 덮는 것)하고 만든 청계로(淸溪路)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청계천에 고가도로 일부를 남겨둔 거다. 1959년 청계천은 대대적인 복개작업에 들어갔다. 수백 년을 흐르던 청계천은 너무나 간단히 콘크리트로 덮여졌다.
당시 '불도저'로 불렸던 김현옥 서울시장은 오랜 기간 사람들의 곁에서 흐르던 청계천을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차가운 돌로 덮었다. 11km에 달하는 청계천이 사라지고 도로와 고가도로가 생겨났다. 복개공사는 물길을 덮는 공사일 뿐만 아니라 천변의 판잣집들을 허무는 공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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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년대 하천 복개공사 후 세워진 고가도로. |
| ⓒ 김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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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다운 징검다리가 이어진 청계천 하류. |
| ⓒ 김종성 |
1990년대 사귀던 여자 친구와 데이트 후 그녀의 집에 바래다주기 위해 오가던 길은 늘 청계고가(혹은 삼일고가)였다. 늦은 밤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막히지 않는 도로 위 서울의 풍경은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심야의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그런 모습이 서울이라고 착각했었다.
그렇게 자주 지나다니면서도 발아래에 개울물이 흐른다는 상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철새보호구역이자 희끗희끗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하류로 들어서자 청계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징검다리가 비로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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