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주문·계산기 들여놓자 60대 단골은 발길을 끊었다
기차 못 타고 야구장 암표 사고
앱 위주 공공서비스에도 취약
"국가가 복지 차원 디지털 교육을"
젊은 층 '공기'처럼 편한 IT
노인들에겐 '그림의 떡' 불과
"사회가 우리 무시" 불만 가질 수도
기차표 예약 등 노인 쿼터 도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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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사회 고령화 그늘
디지털 소외 현상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스마트폰·PC 등 IT기기를 활용하면 5분이면 되는 일을 김씨 같은 노인 세대는 1시간 발품을 팔아야 한다. 역에 가서 표를 사면 역 방향이나 문가 자리만 남을 때가 적지 않다. 명절엔 삽시간에 온라인 예매가 끝나 기차를 탈 수도 없다.
한국의 각종 서비스가 IT기법을 도입한다. 공공기관도 고속으로 ‘재래식 접근법’을 없애고 있다. 10년 넘게 테니스 동호회 활동을 해온 장모(69·서울 서초구)씨는 얼마 전 동호회 활동을 그만뒀다. 테니스장 등 서울시 체육시설은 온라인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장씨를 비롯한 노인에겐 문턱이 돼버렸다. 자녀 도움도 한두 번이다. 장씨는 “40~50대 젊은 사람들이 전세낸 듯 이용하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화가 난다”며 “여기저기 부탁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그만뒀다”고 말했다. 기차표뿐 아니라 시민(구민)회관 등의 운동 프로그램, 자연휴양림, 문화재 관람 예약 등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도 스마트폰 앱이나 웹 위주로 정보를 제공한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4.3%다. 2025년엔 20%로 뛴다. 특히 70, 80대 이상 초고령 노인이 빠른 속도로 는다. 이들의 디지털 소외는 점점 심해질 게 뻔하다. 세대 간의 디지털 격차도 더 벌어진다.
“무인 주문기 무서워 단골 카페 발길 끊었다”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원년 팬인 이모(60)씨는 지난달 한화-넥센 준플레이오프 1차전 때 암표를 사서 경기를 관람했다. 원래 가격의 3배가 넘었다. 온라인 사이트 예매일을 기다렸다가 예매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티켓은 몇 분 만에 매진됐다. 이씨는 “나름대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익숙해서 예매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젊은 친구들도 못하는 거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경기 당일 현장에서 티켓을 팔 거라 생각해 몇 시간 전에 갔는데, 아예 현장 판매분이 없었다. KBO 관계자는 “포스트시즌은 전량 온라인 예매만 진행하고 당일 취소나 남은 표가 있을 경우에만 현장 판매한다. 이번 준플레이오프는 네 경기 모두 예매로 매진됐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암표를 사면 안 되는 건 아는데 11년 만에 가을야구를 꼭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경기장에 줄을 서서 살 수 있다면 몇 시간이라도 그리할 텐데 한 장도 팔지 않는다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최근 식당이나 카페 등에 무인 주문·계산기(키오스크)가 늘어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이현숙(63·경기도 안양시)씨는 “좋아하는 카페가 있었는데 무인 주문기가 들어온 뒤로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문을 시도했다가) 잠시 메뉴를 고민하는 새 첫 화면으로 돌아가고, 뭘 잘못 눌러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뒤에 줄 선 사람들이 눈치를 줘 포기했다”고 말했다.
은행도 창구를 없애고 모바일 앱으로 대신한다.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씨티은행 서교동점에 들어갔더니 창구가 없고 대형 패널로 막혀 있었다. 패널에 ‘현금·통장·종이가 없는 디지털 점포입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노인 세대 내에서도 노인끼리만 사는 1인 가구, 부부 가구의 디지털 활용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며 “이런 격차가 삶의 질 차이로 이어질 수 있어 노인 디지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1955~64년생)가 노인이 되면 디지털 소외 문제가 상당 부분 완화될 것”이라며 “현재 노인에게 디지털 교육을 제공하고, 기차표 예약 등 공공서비스에 ‘노인 쿼터(할당제)’를 두고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스더·김태호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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