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 현주소①] 경리단에서 해방촌으로, 다음엔?..계속 떠밀리는 상권

원나래 기자 2018. 11. 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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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 원나래 기자]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지주계급 또는 신사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용어다. 현재는 낙후된 구도심지역이 활성화돼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을 말한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낯설던 이 단어가 이제는 익숙하다. 최근 임대료 문제로 야기된 끔찍한 폭행사건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더욱 이슈화 시켰다. 서촌 궁중족발 망치사건. 가해자는 족발집 사장이었고, 피해자는 그 건물의 소유주로 임대기간 만료에 따라 건물주가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면서 폭행사건으로 이어진 것이다. 서촌 궁중족발 망치사건은 임대료를 올려달라는 건물주 과욕 탓일까? 임대료 대신 망치를 들어 올린 세입자의 잘못일까? 국내 주요 상권에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불과 3년 만에 경리단길 곳곳에 임대문의·공실…해방촌도 마찬가지
“상권 부정적으로 확장…임대료 저렴한 곳 찾아 밀려나는 형국”

3~4년 전 이태원역 주위로 임대료가 급등하자 상인들이 경리단길까지 흘러들어갔다. 이태원역 주변 모습.ⓒ데일리안 원나래기자

“얼마 전 여기 방송에도 나왔잖아요. 임대료가 높아서 상인들이 (장사하기) 힘들어 떠난다고. 상권이 어떤지 물어보면 뭐해요. 예전 경리단길 분위기 생각하면 안돼요. 상가 매매 거래는 커녕 문의도 없어요. 부동산 찾는 사람이 아예 없다고 보면 됩니다.”(용산구 이태원동 C공인중개업소)

지난 21일 찾은 이태원 경리단길은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이 찌뿌듯한 날씨만큼이나 거리 곳곳에 활기가 없었다.

경리단길은 5년 전만해도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한 수퍼마켓과 세탁소, 분식집 등이 모여 있는 동네 골목 상권에 불과했다. 조그마한 동네 점포들과 이국적인 분위기의 몇몇 아기자기한식당 등이 어우러져 조용하지만 꾸준히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런 경리단길이 갑작스레 유명세를 타게 된 건 불과 3~4년 전. 이태원역 주위 임대료가 급등하자 상인들이 경리단길까지 흘러들어오면서 젊은 상인들의 감각 있는 인테리어와 이색적인 마케팅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방송 프로그램에도 자주 소개되면서 서울 뿐만 아니라 지방 관광객들까지 찾아가는 이태원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하지만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던 경리단길의 유명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지금은 곳곳에 임대문의가 붙은 상점들이 눈에 띄고, 주말에도 유동인구가 절반 이상 줄었다는게 상인들의 말이다.

그 원인에는 턱없이 높아진 임대료가 있다. 구름때 처럼 사람들이 모이자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올렸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 음식값까지 올렸는데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이 급격히 줄었다. 장사가 예전 같지 않으니 경리단길의 주인공이었던 기존 상인들 중 상당수가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떠났다. 떠난 자리에는 특색없는 상점들이 난립하면서 사람들은 그 거리에 매력을 못느낀다. 갑작스럽게 상권이 형성된 곳 대부분 이런 악순환을 거듭하며 빛을 잃어 간다.

경리단길 메인도로 1층에 임대문의가 붙은 상점이 눈에 띈다.ⓒ데일리안 원나래기자

한국감정원 집계에 따르면 경리단길의 최근 3년간(2015~2017년) 임대료 상승률은 10.16%로 서울 지역 평균 1.73%의 6배에 달했다.

최근 기존 임차인들이 빠져 나가며 임대료 상승폭이 조금 주춤한 모습이지만, 유동인구 마저 줄어들면서 이에 비하면 임대료는 여전히 높다는 게 주변 상인들의 이야기다. 최근 1층 메인 거리 상가 임대료는 전용면적 3.3㎡당 보증금 3000만~4000만원에 월세 200만~25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인중개업소 옆 건물에도 임대문의를 알리는 광고판이 붙어 있다.ⓒ데일리안 원나래기자

경리단길에 한 음식점 주인은 “원래 이태원 지역 특성상 외국인들도 많이 모이고 평소 접하기 어려운 이국 음식과 함께 브런치(brunch·아침 겸 점심)를 즐기는 내국인 손님들도 많았다”면서 “주말 브런치 손님도 급격히 줄은 데다 평일에는 아예 인적이 드물기 때문에 오후 늦게 돼서야 문을 여는 음식점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저쪽 옆 가게 사장은 2년 전에 새롭게 창업을 해보려고 들어왔다가 일 년도 못버티고 나가면서 보증금도 못찾은 것으로 안다”며 “작은 평수에 주인이 여러 번 바뀌는 곳도 있지만, 몇 달째 무권리인데도 비워있는 곳도 있다”고 주변 분위기를 전했다.

건너편 해방촌도 분위기는 다를 바 없었다.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에서 내려 국군재정관리단(옛 육군중앙경리단) 앞 교차로까지 오면 이 교차로를 사이에 두고 두 길이 마주보고 있다.

경리단길이 대성교회, 새마을금고를 지나 필리핀대사관까지 가는 언덕길을 말한다면, 해방촌은 입구 왼쪽에 일렬로 벽을 이룬 항아리들이 전시된 가게를 지나 남산타워를 바라보고 올라가는 언덕길을 말한다.

해방촌도 경리단길과 마찬가지로 언덕길 양 옆으로는 몇 평 안 되는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한 문닫힌 공인중개업소 앞에서 한 남성이 매매표지판을 살펴보고 있다.ⓒ데일리안 원나래기자

해방촌에서 까페를 운영 중인 김모씨는 “이태원 보다는 경리단길, 경리단길 보다는 해방촌이 그나마 상가 임대료가 저렴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하지만 이곳도 임대료에 비해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여서 TV에 소개된 맛 집을 빼고는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임차인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에는 임대료가 싼 지역을 찾아 주변으로 옮겨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태원의 경우도 역 주변으로 임대료가 많이 오르니까 경리단길로 상권이 옮겨가고, 경리단길에서 또 인근 지역인 해방촌이나 후암동 쪽으로 상권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강남 가로수길도 세로수길 쪽으로 상권이 옮겨가는 등 상권 자체는 확장되는 개념이긴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면서 “임대료가 너무 오르다 보니 더 저렴한 곳을 찾아 옮겨가는 것으로 결국 밀려나는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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