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간디 아닌 파텔이었나..'182m 동상' 뒤 모디의 반격

강혜란 2018. 11. 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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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 총리가 182m짜리 파텔 동상을 밀어붙인 이유


[알쓸신세]
지난 10월 31일 인도 구자라트 주(州)에서 흥미로운 뉴스가 하나 전해졌습니다. 높이 182m(받침대 포함 240m)에 이르는 세계 최대 높이 동상의 제막식이 열린 겁니다. 동상의 주인공은 인도 초대 부총리를 지낸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1875~1950). 1875년 구자라트 주에서 태어난 파텔은 간디, 네루와 함께 영국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한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명으로 꼽힙니다. 1947년 독립 후에는 네루 총리 아래에서 부총리 겸 내무장관으로 재직했습니다.

인도가 존경해야 할 인물은 맞지만 세계 최대 동상이라니,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나요. 파텔 동상 이전까지 세계 1위 높이는 중국 허난(河南)성 핑딩(平頂)산 중원대불(中原大佛·128m)이었습니다. 석가모니가 아닌 비로자나불을 조각한 석상으로 2008년 완공됐습니다. 간디도 네루도 아닌, 파텔이라는 생소한 인물이 부처를 뛰어넘어 세계 최대 동상으로 세워지게 된 사연이 무엇일까요. [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알쓸신세]가 세계 최대 동상을 둘러싼 인도식 ‘역사 바로 세우기’와 동상의 정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인도 구자라트 주에 세워진 세계 최대 높이(182m)의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1875~1950) 인도 초대 부총리 동상. 2018년 10월31일 제막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AP=연합뉴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18년 11월 현재 세계적으로 30m 이상의 동상은 139개로 집계됩니다.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중국으로 35개이고, 인도(25)·일본(20)·대만(10) 등이 뒤를 잇습니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불교 영향력을 꼽을 수 있는데요, 실제로 대형 동상 상당수가 석가모니나 관음보살 등입니다. 물론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93m)이나 세네갈의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비(52m)처럼 추상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한 대형 동상들도 있긴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도가 실존했던 독립 영웅을 세계 최대 높이 동상으로 세운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데요. 특히 이를 추진한 인물이 인도의 현직 총리 나렌드라 모디라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파텔 동상 세우기 작업은 모디 총리가 구자라트 주지사(주 장관)로 있을 때인 2010년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모디는 취임 10주년을 맞아 인도의 ‘철인’(Iron Man·파텔의 별명)을 기리는 동상 계획을 발표하면서 “세계가 사르다르 사브(파텔)의 헌신을 알아야 한다. 182m짜리 동상은 높이뿐 아니라 역사적·학술적·민족적·영적 가치를 대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돈 낭비”라는 일각의 비난 속에서도 모디는 계획을 밀어붙였습니다. 2013년 10월 착공식을 연 데 이어 2014년 총선 승리로 총리가 된 후론 연방정부 차원에서 ‘로하(철)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아이언 맨’을 위해 농기구를 기증하자는 캠페인이었습니다. 인도 마을 70만 곳에서 농기구 등 총 135t이 모였고 이를 녹여 동상에 보탰습니다.(투입된 동은 총 1850t에 이릅니다)

인도 구자라트 주에 세워진 세계 최대 높이(182m)의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1875~1950) 인도 초대 부총리 동상.
동상 위치는 구자라트 등 4개의 주에 인접한 나르마다 강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 근처입니다. 이 댐은 1961년 네루 총리 하에서 추진돼 무려 56년 만인 2017년 9월 완공됐습니다. 규모로는 세계 두번째(1위는 미국 그랜드쿨리 댐)를 자랑하는 댐의 완공식에 모디 총리가 직접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을 포함한 나르마다 계곡 개발 프로젝트로 인해 수만 가구가 강제이주 당하는 등 엄청난 갈등이 있었는데요, 이번에 완공된 파텔의 동상은 이 댐을 내려다보는 형태입니다. 동상에 '통합의 상’(Statue of Unity)이라는 별칭이 붙은 배경이겠지요.

게다가 파텔은 초대 내각에서 인도 연방 정부를 구성하는 국민국가 건설(nation-building)을 책임졌던 인물입니다. 독립 당시 지역 토호국과 정파로 갈라져 싸우던 여러 세력을 아우르면서, 특히 힌두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인도 연방 정체성 확립에 앞장 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현재 인도 국민 약 13억 명 중 힌두교도가 80%인 반면 무슬림은 15% 정도입니다. 강력한 전국 정당을 갖지 못한 무슬림들은 힌두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우파 성향의 집권여당 인도국민당(BJP)보다는 종교간 화합을 내세우는 인도국민회의(INC)파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국민회의에 속했던 파텔을 추켜세우는 것은 모디에게 '포용과 통합'의 이미지를 더해주기도 좋지요.

그런데 일각에선 모디의 이런 작업이 ‘파텔 재조명’을 넘어서 사실상 ‘간디-네루 깎아내리기’로 이어진다고 의심합니다. 간디와 네루가 현 제1야당인 국민회의의 상징적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국민회의는 인도의 가장 오래된 정당으로서 1947년 독립 이후 오랫동안 강력한 집권 여당으로 인도를 지배했습니다. 초대 총리 네루에 이어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도 총리직을 지냈습니다. 인디라 간디의 손자, 즉 네루의 증손자인 라훌 간디가 이끄는 국민회의를 상대로, 모디가 이끄는 BJP는 2014년 총선 돌풍을 일으키며 정권 교체를 이뤄냈습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AP=연합뉴스]

BJP는 네루 가문이 주도해온 국민회의가 파텔 등 일부 독립 영웅들의 업적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뤘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불만의 근거가 되는 또 다른 인물이 인도국민군(India National Army) 총사령관을 지낸 수바스 찬드라 보스(1897~1945), 일명 네타지 보스입니다. 네타지 보스는 간디의 비폭력투쟁에 반기를 들고 무장봉기를 지지했으며 해외 망명 중 INA를 조직하고 싱가포르에 자유인도 임시정부를 수립하기도 했습니다. 인도 독립을 불과 2년 앞둔 1945년 8월 19일 대만에서 러시아로 향하는 비행기 폭발사고 때 숨졌다고 알려집니다.
그런데 2016년 1월 모디 총리는 네타지 보스와 관련된 기밀문서 100점을 공개했는데요. 이 가운데 인도 식민시절 영국 총리를 지낸 클레멘트 애틀리의 발언이 놀라움을 줬습니다. 애틀리 총리에 따르면 영국이 인도를 포기한 이유가 국민회의와 마하트마 간디 때문이 아니라 네타지 보스가 조직한 인도국민군(INA)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네타지 보스의 활약이나 그의 미스터리한 사망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는 게 모디 총리 측 주장입니다. 모디는 “한 가문을 추켜세우기 위해 보스의 유산을 폄하했다”고 노골적으로 국민회의와 네루 가문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 이제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에 들어선 세계 최대 대형 동상의 주인공이 간디나 네루가 아니라 파텔인 이유를 아시겠지요. 결국 모디와 BJP가 벌이는 인도식 ‘역사 바로 세우기’라 하겠습니다. 모디는 이를 선거 전략으로도 적극 활용해 왔습니다. 그가 구자라트 주지사로서 2013년 파텔 동상 건립에 착수한 것은 이듬해 총선을 앞두고 이슈몰이 성격이 짙었습니다.

지난 10월 31일 제막식도 내년 재선을 겨냥한 캠페인의 시작으로 보입니다. 이번 대형 동상은 가슴께인 지상 157m에 전망대가 설치돼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의 위용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됩니다. 인근에 3성급 호텔과 박물관, 연구소 등도 들어섭니다. 지난 5년간 총 공사비만 4억 3000만달러(약 4900억원)가 들인 결과이지요. 인도 정부는 연간 250만명이 이 동상을 보러 방문할 것이라고 추산합니다.

그런데 한쪽에서 이렇게 잊혀진 영웅들이 재조명되는 동안 다른 쪽에선 기존 영웅들의 동상이 공격당하고 훼손되는 ‘반달리즘’이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3월 힌두스탄타임스에 따르면 직전의 주의회 선거 이후 간디와 레닌 등 유명 정치지도자들의 동상이 최소 6개 피습당했다고 합니다.

시작은 마르크스공산당의 지지세가 강했던 북동부 트리푸라 주에서 BJP가 25년 만에 대승을 거두면서인데요, 승리에 들뜬 BJP 당원 일부가 중장비를 동원해 지역 내 레닌 동상을 파괴한 겁니다. 이어 달리트(불가촉천민) 인권 운동의 대부로 추앙받았던 B R 암베드카르 전 법무부장관과 인도의 ‘국부’ 간디의 동상도 시위대 공격을 받았습니다. 모두 과격 힌두민족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대한 반격으로 우파 지도자 동상이 공격받기도 했습니다.

2003년 4월6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남쪽 110㎞ 거리에 위치한 카르발라 시민들이 미군들의 도움을 받아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동상을 철거하고 있다. [카르발라 로이터=뉴시스]

이렇듯 우상화 및 업적 과시용 동상 건립은 지배자들의 욕구에서 비롯되지만 혁명과 전쟁 시에 가장 먼저 공격 대상이 됩니다. 구 소련권 붕괴 때 마르크스·레닌 동상이 각 공산권 국가에서 줄줄이 파괴된 게 대표적이지요. 지난 2003년 미국이 이라크 바그다드를 점령했을 때 바그다드 시민들이 미군의 도움을 받아 거대한 후세인 동상을 끌어내리는 장면도 전 세계로 방영된 바 있습니다. 중국에선 2016년 허난(河南)성 통쉬(通許)현에 높이 36m짜리 황금빛 마오쩌둥(毛澤東) 동상이 들어섰다가 비난 여론 속에 이틀 만에 철거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참, 파텔 동상은 오는 2021년 또 다른 인도 내 대형동상으로 인해 세계 2위로 밀려나게 됩니다. 뭄바이 시에 무려 212m 높이로 들어서게 될 동상의 주인공은 17세기 말 북인도에 힌두교도의 나라인 마라타 왕국을 세운 차트라파티 시바지(1630~1680) 왕. 또 다른 힌두민족주의 부흥 아이콘이라 하겠지요. 약 3년 간 세계 최대 높이로 기록될 파텔의 동상은 과연 역사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 될까요.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 동상 수출로 재미 본 북한, 유엔 제재로 울상

2012년 4월 김일성 생일 100주년을 맞아 만수대언덕에 원래 있던 김일성 동상 옆에 김정일 동상(사진 오른쪽)이 세워졌다. 김정일 동상은 2013년 2월 코트 차림에서 점퍼 차림으로 바꿨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은 곳곳에 김일성 동상만 4만 여개가 보급돼 있는 ‘동상의 나라’입니다. 대표적인 게 김일성 60회 생일인 1972년 4월 평양 만수대언덕의 조선혁명박물관 앞에 세워진 23m짜리 전신 동상입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졌지만 금불상처럼 금을 입혔습니다. 사용된 금이 37㎏에 이른다고 합니다. 김정일 사망(2011년 12월) 후 2012년 4월 김일성 생일 100주년을 맞아 바로 옆에 비슷한 크기의 김정일 동상도 들어섰습니다.

북한은 정교하게 동상을 만드는 기술을 해외에 수출해 왔습니다. 1000여 명의 북한 내 최고 미술가가 소속된 만수대창작사(1959년 설립)가 이 ‘동상 수출’의 선봉에 있습니다. 2010년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 세워진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비’는 높이 52m에 이릅니다. 주로 아프리카 국가들이 소비자로 나미비아·짐바브웨·앙골라·베넹·에티오피아 등도 만수대 측에 조형물을 주문했습니다. 김씨 일가의 우상숭배 등 체제 선전물을 제작해 온 이들의 작품 성향이 아프리카 독재 정권이 원하는 바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이런 식으로 연간 수천만 달러(수백억원)의 외화를 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에 따라 유엔 안보리가 2016년 11월30일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321호는 동상도 수출 금지 품목에 포함시켰습니다. 2017년 8월 유엔 대북제재결의 2371호는 만수대 창작사와 산하 단체인 ‘만수대해외개발회사그룹’까지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습니다. 동상 수출에 따른 쏠쏠한 재미를 다시 맛보기 위해서라도 북한은 대북 제재 해제를 애타게 기다리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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