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탑길·안반데기, 평창올림픽이 남긴 가을 비경
알록달록 낙엽 깔린 계곡 끝
어머니가 쌓은 돌탑 3000개
해발 1000m 산 위의 배추밭
텅 빈 평원 발치에 구름바다


길은 좋았다. 강원도 구석구석을 헤집는 길이어서 강원도의 자연은 물론이고 역사와 문화도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길은 이내 잊혔다. 올림픽이 끝나자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33억원이나 들인 올림픽 유산이었으나, 중앙 정부나 자치단체나 서로 자기 길이 아니라고 밀어냈다.

꿈속 같은 세상 - 모정탑길

올림픽 아리바우길이 지역 명소만 이어 붙인 것은 아니다. 모정탑길이 있어서다. 노추산(1322m) 북쪽 자락에 들어선 모정탑길은 올림픽 아리바우길이 찾아낸 비경 중의 비경이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3코스 끄트머리에 있다.



스물두 살 나이에 서울에서 강릉으로 시집을 온 어머니는 슬하에 4남매를 두었다. 그러나 남편은 병에 걸렸고, 자녀가 둘이나 먼저 세상을 떠났다. 시름이 깊었던 시절, 어머니는 꿈을 꿨다. 깊은 산에 들어가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집안의 우환이 사라질 것이라는 계시였다. 이튿날부터 어머니는 꿈에서 봤던 산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자리가 여기, 노추산 자락의 깊은 골이었다.
어머니는 계곡에 움막을 짓고 혼자 살았다. 그리고 하나씩 돌을 날라 탑을 쌓았다. 1986년이었으니 마흔세 살 때다. 세월이 흘러 2011년. 어머니는 계곡에서 돌아갔다. 다짐했던 돌탑 3000개는 진즉에 완성한 뒤였다. 안내판에는 돌탑 3000개라고 적혀 있으나, 계곡 곳곳의 돌탑은 못해도 4000개가 넘어 보인다. 어머니가 계곡에 들어와서 산 세월은 26년에 이른다.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여자 혼자 이 깊은 계곡에서 26년을 살았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고, 여자의 힘으로 이 많은 돌을 옮겼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는다. 돌탑은 대부분 어른 키만 하며, 어머니가 쌓았다는 돌 중에는 장정도 버거워 보이는 바위가 허다하다.
강릉에 산다는 자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신 대기리 마을회 오과현 사무국장과 강릉시 최규선 주무관에게 사연을 확인했다.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까지 이따금 들렀고, 마을 주민도 가끔 먹을 것을 챙겨줬다는 일화 정도만 더해졌을 뿐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돌탑들은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
계곡 단풍은 유난히 색깔이 짙다. 물기를 머금어서다. 여기 모정탑길의 단풍도 채도가 높다. 햇빛이 잘 안 들어오는 모정탑길에 들면,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와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산사의 독경 소리처럼 은은히 울려 퍼진다. 꿈속 세상 같다. 아니 어머니의 꿈에서 비롯된 세상이니 꿈속 세상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긴 꿈을 꾸는 중일 수도.
빈 것으로 꽉 차다 - 안반데기

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이 송천이다. 송천이 골지천을 만나 조양강이 되고, 조양강이 동대천을 받아들여 동강을 이루고, 동강은 서강과 합쳐져 남한강이라 불리며, 남한강이 북한강과 섞여 마침내 한강을 완성한다. 그러니까 송천은 한강의 고조할아버지뻘인 물길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이 물길을 따라 강원도 소나무가 서울로 올라갔다. 옛날 떼꾼이 뗏목을 띄웠던 제일 북쪽의 나루터가 배나드리 마을이다.


안반데기는 65년부터 배추밭으로 조성되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강원도 산자락에 흩어져 살던 화전민들을 안반데기로 올려보냈다. 땅을 직접 가꾸면 가꾼 사람에게 주겠다는 나라의 제안은 땅 한 평이 없어 이 산 저 산을 떠돌던 화전민에게 구원 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자갈투성이 비탈을 일구는 건 쉽지 않았다. 식량은커녕 식수도 구하기 어려운 오지에서 화전민은 땅을 파고 자갈을 캐고 배추를 심었다. 그렇게 1.95㎢ 면적의 배추밭이 꼭대기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니었다. 막상 올라가 보니 뜻밖의 장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 안반데기에 오르니 발아래로 구름바다가 펼쳐졌다. 지저분할 것 같았던 배추밭도 곡선의 밭고랑이 기하학적 장면을 빚어냈다. 아무것도 없지만, 꽉 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아쉬워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이 계절과 꽤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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