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옆엔 묻히고 싶지않다는 할머니의 유언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29)
부부 사이라면 한 번 이상은 꼭 들어봤음 직한 진부한 질문 하나가 있죠.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아내(남편)와 결혼하시겠습니까?”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 2013년 전국 남녀 9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남편의 경우 45% 아내의 경우는 19.4%가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절대로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여성 18.9%, 남성은 7.5%였습니다. 남편의 50.8%, 부인 중 52%, 즉 각각 절반 정도는 “생각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다시 태어나도 지금 사는 그 사람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얼마 전 친구의 할머니께서 하늘로 떠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본인은 절대 남편 옆에는 묻히지 않겠다는 것이 유언이었다 합니다. 생전에 함께였을 때 너무 많이 참고 사신 거죠. 할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사별한 남편 옆으로 죽어서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겁니다. 그래야 한다 아니다 말이 많았지만 결국 할머니는 선산에 묻힌 할아버지의 비워둔 옆자리 대신 원하시던 납골당에 모셔졌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아주 낯설지 않습니다. 최근에만 두어 번은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아내(남편)와 결혼하겠냐는 질문에 대한 이분들의 답은 명백한 “아니오”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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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부부 사이에도 말하지 않으면 진심 몰라
최근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아는 와이프’를 즐겨보고 있습니다. 매일 저녁 피곤함 가득한 얼굴로 마주하는 빡빡한 현실에서 문득 드는 생각. ‘그때 만약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만나면 잔소리 늘어놓기 바쁜 아내가 아닌 그때 그녀를 선택했더라면 하는 생각에서 드라마는 출발합니다. 그리고 판타지적 설정과 함께 과거로 돌아간 남편은 지금의 아내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하게 되죠.
이 드라마와 함께 회자되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2017년 방송되었던 드라마 ‘고백부부’가 그 주인공입니다. 결혼을 후회하는 부부의 전쟁 같은 인생과 과거로 돌아가는 경험을 그린 이 드라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많은 사람에게 잘 만든 드라마로 거론됐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을 검색하면 공감하며 함께했다는 후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장나라가 연기했던 주인공 마진주는 ‘독박육아’에 지쳐 자존감마저 떨어진 30대 후반의 아내, 손호준이 맡았던 남편 최반도는 눈치코치 하나로 가정을 먹여 살리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그냥 별 볼 일 없는 가장으로 등장합니다. 결혼생활에 지쳐 갈등하다 결국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동갑내기 부부가 지금의 기억을 그대로 가진 채 처음 만난 18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는 설정입니다.
과거로 돌아간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진심을 이제야 말합니다. 나름대로 기울였던 노력이 서로가 아닌 나만의 기준에서였음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그들은 대화해야 할 때 대화하지 않았고 표현해야 할 때 표현하지 못했죠. 어찌 보면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뻔한 스토리에도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나를 돌아보았다 얘기합니다.
부부 사이 언제부턴가 익숙함에 가려져 당연시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의 호의도, 주어진 행복도 모두 원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어느 순간 당연함으로 살아갑니다. 드라마 속 장나라는 남편의 복숭아 알레르기 때문에 좋아하는 복숭아에 대한 취향을 완전히 버립니다. 하지만 이런 배려는 어느 순간 너무 일상화되어 더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남편은 바람을 피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믿는 순간 아내는 모든 것을 기정사실로 해버리고 남편의 말에는 귀를 닫아 버립니다.
살다 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상황으로 인해 마음이 엉켜버릴 때가 있죠. 이런 때 대부분의 사람은 상황을 들여다보기 전 탓하고 원망할 대상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아내나 남편인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편하다는 이유, 이해해 줄 거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때로는 왠지 지금의 이 상황이 바로 옆에 있는 사람 때문으로 여겨져 내 감정의 찌꺼기를 마구 쏟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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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결혼생활, 배우자 바뀐다고 달라질까
“어이구 인간아,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과거로 돌아간 드라마 고백부부 속 남편은 울먹이며 말합니다. “난 왜 이렇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냐? 진심이 아닌 적도 없는데.” 우리 모두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을 텐데 왜 그렇게 자꾸 어긋났을까요? 진심이라는 단어 아래 우린 관심과 간섭을 혼동하고 있지 않을까요?
결혼 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과 생활습관의 차이가 결혼 후에 하나씩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변했어!’ 정확히 말하면 연애 기간 변했던 상대가 원래대로 돌아온 셈이죠.
세세한 것까지 챙김을 원하는 아내와 부담스러운 남편, 혹은 어린애 다루듯 지적하는 남편과 불편한 아내의 사연을 심심찮게 만납니다. 이들 부부의 경우 나의 관심과 표현이 상대에게 닿는 순간 지적과 통제가 됩니다. 상대방에게는 무시와 비난으로 느껴지는 거죠.
내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배우자가 바뀐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나와의 차이점을 부족함, 결점으로 여긴다면 그 누구와 살아도 마찬가지죠. 세상 누구도 나와 같을 수 없습니다. 배우자가 문제가 아니라 나와의 차이를 문제로 바라보는 내 시각이 문제인 겁니다. 다시 결혼해서 만난 배우자도 나와의 차이는 있을 테고 나는 또 트집을 잡겠죠. 결혼을 두 번, 세 번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네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는 겁니다.
죽어서도 함께 있고 싶지 않은 부부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함께 있는 시간에 자식 이야기 말고 우리 이야기하기! 언제부턴가 익숙함에 가려져 당연시했던 상대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인 말과 행동으로 표현해 보기! 차근차근 하나씩 다시 해보는 겁니다.
박혜은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voivod70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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