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머리의 사이코패스.. 이 영화가 말하는 인생론
[오마이뉴스 김선호 기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요상한 제목의 영화가 있다. 코엔 형제 감독이 만들었고 2008년 개봉했는데 여전히 인기가 많으며 지난 9일 재개봉됐다.
이 영화에서 하비에르 바르뎀의 바가지 머리는 그다지 웃기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가 워낙 긴장감이 넘치기에 하비에르 바르뎀에게서 미적 불일치를 느낄 여유가 없는 탓이다. 사실, 영화를 보다 보면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안톤 쉬거의 바가지 머리를 들여다보고픈 충동마저 든다. 저 바가지를 들어내면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연쇄 살인마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분)의 머리는 무엇으로 차 있을까?
|
|
| ▲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 장면 |
| ⓒ CJ 엔터테인먼트 |
|
|
| ▲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 장면 |
| ⓒ CJ 엔터테인먼트 |
말하자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모스가 아니라 쉬거였던 셈이다. 혹은 모스에서 쉬거로 주인공의 자리가 넘어가는 게 영화의 본 목표일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살해 목표가 사라진 쉬거는 잠깐 방황하는데, 이내 죽은 모스의 아내에게 달려가게 된다. 어딘가로 향하던 쉬거는 갑작스레 자동차에 치이게 된다. 이때 영화를 보던 우리는 다시 한 번 기분이 묘해진다. 세상 무적처럼 보이던 쉬거가 깽깽이 발로 아파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관객은 작중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쉬거를 '재앙' 혹은 '불행'과 같은 무언가로 설정했을 것이고, 작중 인물들의 말처럼 쉬거는 행동에 아무런 이유가 없고,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 게다가 쉬거는 동전 던지기를 통해 삶은 확률에 불과하다고 친절하게 말해주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모스는 불행을 잘못 건드렸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 사람처럼 보인다. 관객이 당황하는 이 두 가지 순간은 영화의 주제의식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범인을 잡는 것도 아니고 범인에게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추리나 인과응보 쪽의 쾌감을 얻기는 힘들다. 다만 관객에게는, 갑작스러운 곳에서 서로가 이어지는 우연성과 막연하게 다가오는 총성의 공포만이 남는다. 말하자면 그것은 카메라 화면 밖에서 소리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안톤 쉬거처럼 '인지 밖의 무언가'다. 그리고 이 인지 밖의 무언가는 이제 곧 닥쳐올 것이 확실한데 당장 대비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을 띤다.
작품 내내 안톤 쉬거의 등장은 '예고' 된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든 혹은 전혀 다른 공간에서 서로를 쫓든 간에 안톤 쉬거의 압박감이 상존한다. 그리고 이런 긴장감은 영화가 끝나고도 관객의 머릿속에 남아 안톤 쉬거의 불확실성을 각인시킨다. 말하자면 관객은 스스로 재앙이라 여기던 안톤 쉬거를 줄곧 상기해 보게 된다. 결국 안톤 쉬거가 관객에게 선사하는 경험은 불확실함에 대한 자아 성찰이다.
|
|
| ▲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 장면 |
| ⓒ CJ 엔터테인먼트 |
이를테면 모스와 쉬거, 두 사람을 조사하는 경관 에트 톰 벨(토미 리 존스 분) 또한 중년 이상의 나이이다. 갱단이 고용한 청부살인업자 카슨 웰스(우디 해럴스 분)도 청춘은 아니다. 결국 작품에서 청춘으로 부를 만한 건 마지막에 쉬거에게 셔츠를 팔아넘기는 아이들뿐이다. 영화는 마지막에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것을 확정 짓게 된다. 그들의 미래는 그저 카메라 밖으로 사라진다. 아이들이 떠나감과 함께 쉬거도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막연하게 절대 악으로 규정되던 쉬거 조차도 결국에는 자동차에 치인다는 점에서, 생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발버둥 치던 노인들은 '모두' 변화를 거스르지 못한다. 말하자면 이것은, 모든 사람은 늙을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
| ▲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 장면 |
| ⓒ CJ 엔터테인먼트 |
심지어 모스가 사망한 장면에서 누가 모스를 죽였는지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는데, 그 죽음은 모스 자신이 초래한 것이므로 사실상 누구한테 죽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만이 있고, 그 죽음으로 아내 또한 연달아 죽는다는 결론이 남는다. 그래서 이들의 죽음은, 과정이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우연이고 결과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인과다.
우연과 인과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불확실함을 보여주는 키워드다. 안톤 쉬거가 어느 가게에서 동전 던지기를 하는 장면이 그것을 말해준다. 쉬거는 가게 주인에게 동전의 짝을 맞추면 살려주겠다며 선택을 강요하는데, 가게 주인이 답을 맞추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연은 없고 당신이 선택한 것이라고 말이다. 말하자면 그 동전의 앞 뒷면은 손바닥으로 가려져 있을 때부터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동전이 던져지는 순간은 우연이지만 바닥에 내려앉은 순간은 명백하게 인과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생존하려는 영화다. 노인들은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명확하고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든 행동한다. 이 영화의 박진감은 근본적으로 생존의 공포에 기인한다. 이 영화가 명작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영화 상영중 경찰 출동.. 이건 완전 '사건'이었다
- 맘마미아! 10년 만에 떠오른 첫사랑의 추억
- 속내를 감춘 인물들, 진짜 '공작'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 개 250마리 촬영장에 풀었던 감독, 또 무거운 질문 던지다
- 인간의 위선 까발리는 풍자 영상, 세계가 주목할 만했다
- '남아공서 백인 농민 조직적 살해'? 우리가 마주할 의외의 진실
- 한동훈이 "비판적 칼럼"이라고 한 가족 게시글 보니...
- 12.7 탄핵 불참 "후회합니다, 반성합니다, 죄송합니다"
- 집안을 뒤덮은 희귀한 비린내, 화를 가라앉힌 결정적 이유
- '1억 관객 시대' 재편된 한국영화... '보릿고개' 넘어설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