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도 외면하는 한인회, 패 갈려 싸우고 툭하면 소송전

주호석 입력 2018. 7. 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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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주호석의 이민스토리(19)

캐나다 밴쿠버 한인회 주최로 열린 투자설명회. 한인회는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단체이다. [중앙포토]

이민사회에는 이런저런 단체가 많습니다. 그런 단체들 가운데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단체가 한인회(Korean Society)입니다.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한다는 것은 특정 친목 단체나 종교단체와 달리 해당 지역 한인 이민자 모두를 위한 공식 단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한인회가 공식적인 단체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캐나다 사회단체법(Societies Act)에 따라 주 정부에 등록해야 합니다. 한인회처럼 이 법에 따라 설립된 단체는 공익사업을 추진할 경우 캐나다 정부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매년 결산보고서라 할 수 있는 연례보고서(애뉴얼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의무도 이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인회는 또 한국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있습니다. 회관을 짓거나 한인 동포를 위해 문화예술 또는 교육 등의 분야에서 공익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재외동포재단을 통해 일정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한인회는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한인 이민사회가 형성돼 있는 곳에는 거의 예외 없이 구성돼 있어 한인 이민자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인사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어느 나라 출신이든 이민자들이 모이면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공익단체(Society)를 만들어 운영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밴쿠버 한인회, 회원들끼리 몸싸움 벌이다 경찰 출동
그런데 캐나다와 미국, 즉 북미지역의 주요 도시에 있는 한인회의 경우 한인 이민사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운영이 엉망이고 이민자들로 원성이 자자한 곳이 적지 않습니다. 회장 자리를 놓고 내부 분란이 끊이질 않고 공금 유용 등으로 회장단 또는 임원들 사이에 소송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한인회는 한인이민사회를 대표하는 공익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소수회장단이나 임원진들의 싸움터 역할만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밴쿠버한인회는 몇 년째 공식 회장단도 구성하지 못한 채 한인회에 관여하는 몇몇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실정입니다. 가끔 몸싸움을 벌이다가 캐나다 경찰이 출동하는 창피한 일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인 이민사회를 위한 단체이기는커녕 한인 사회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한인들의 손가락질이나 받는 그런 모습이 한인회의 현주소입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다 보니 정작 한인회의 주인으로서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한인은 한인회 자체에 관해 관심을 두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한인회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한인 회관이 있지만 단 한 번이라도 찾아 가본 한인이 거의 없습니다. 한인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다는 증거지요.

상황은 미국의 뉴욕과 LA 등 대도시 한인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인회는 하나인데 회장은 두 명이 존재하는가 하면, 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한인끼리 패가 갈려 싸우거나 심지어 소송전까지 벌어지는 볼썽사나운 광경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또 한인회 재산을 놓고 회장이나 임원들이 다투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추한 모습은 다른 소수민족 단체에서는 보기 드뭅니다.

그럼 한인회는 왜 한인 이민사회를 대표하는 공익단체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허구한 날 소수 회장단이나 임원진들의 갈등으로 바람 잘 날 없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부 한인회 회장이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문제가 있는 한인회의 경우 한인사회 전체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한인회장이라는 감투를 이용해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이득만 챙기려고 합니다. 한인회장 자리가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악용되고 있고 그러다 보니 분란이 끊이질 않는 것입니다.

공(公)과 (私)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한인회장이 적지 않습니다. 한인회 공금과 관련해 비리가 발생하고 회관 건물 등 한인회 자산문제를 둘러싸고 말이 많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한인회를 입신양명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사람들
또 한인회장을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입신양명(立身揚名)하는 발판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본국 정부로부터 무슨 표창이라도 받아보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본국 정치권에 줄이라도 댈 기회를 찾으려고 하지요.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두는 격이지요.

한인회장을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로 여기지 않고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목적으로 악용하고 있다. [일러스트 김회룡]

해외 한인회의 암담한 현실을 고려할 때 본국 정부가 재외동포에게 수여하는 훈포상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매년 세계 한인의 날을 정해놓고 재외동포 가운데 유공자를 선발해 포상하는데, 대부분 숫자 채우는 것을 우선시하다 보니 현지 동포사회에서 지탄받는 인사가 훈포상을 받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따라서 행사에 맞춘 형식적 포상보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로사례가 나타날 때 철저한 검증을 거쳐 수시로 포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본국 정부가 주는 훈포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는 한인회장이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한인회장이 오로지 현지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재외동포에 대한 참정권 확대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해외동포의 본국 정치참여가 한인 이민사회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일부 한인회장이 본분을 잊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해외에 사는 재외동포라면 본국 정치 참여보다는 현지 정착에 충실해 한인 이민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게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자기가 사는 현지의 정치 및 사회에 관심을 두지 않고 떠나온 본국에서 일어나는 일에나 참여하려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겠지요.

주호석 밴쿠버 중앙일보 편집위원 genman2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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