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 제로' 꼼수 .. 부채 빼놓고 "빚 없다" 포장한 지자체들

임명수.김민욱.위성욱 2018. 5. 8.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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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상 채무·부채 기준 모호해
용인·시흥 등 채무 없지만 부채 많아
예산 돌려막고 채무 상환 재원 숨겨
선거 앞 지자체장 치적 쌓기로 전락

“파산 위기 몰렸던 우리 시가 ‘채무 제로’를 달성했습니다.”

지난해 1월 17일 경기도 용인시가 낸 보도자료 제목이다. 시가 2년 반 만에 8211억원에 이르는 빚을 모두 갚았다는 내용이다. 경기 시흥시 역시 2016년 4월 29일 보도자료를 내고 2021년까지 갚아야 할 3672억원의 채무를 앞당겨 모두 갚았다고 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너도나도 채무 제로를 선언하고 나섰다. 시민들에게 ‘재정 건전 도시’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하지만 채무 제로가 곧 빚이 한 푼도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방재정에서 빚은 ‘채무’와 ‘부채’ 두가지로 나뉜다. ‘채무’는 날짜와 금액이 정해져 있는 빚이다. 지방채가 대표적이다. 반면 매년 금액이 정해져 있지 않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돈은 부채다. 지자체들이 이렇게 회계상 기준이 모호한 점을 이용, ‘우리는 빚이 없다’는 식으로 단체장 치적용으로 사용하고 있어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7일 행정안전부의 정보공개시스템인 지방재정 365에 따르면 채무 제로를 선언한 지자체는 전국 226곳 중 90곳(39.8%)이다. 이 중 2016년도 재정결산 공고 기준으로 용인과 시흥 등 20곳의 지자체가 새롭게 채무 제로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들 지자체엔 여전히 ‘부채’가 남아 있다. 용인시는 채무가 없지만 임대형 민자사업(BTL) 등에 따른 부채는 4900억원 대에 달한다. 시흥시는 채무를 갚는 동안 부채가 오히려 늘었다. 2015년 1조3766억원이던 부채가 1년 새 1조9046억원이 됐다. 경남 진주시도 1277억원의 채무를 갚았지만, 부채는 4152억원이 남았다. 지자체는 “부채 중에는 선수금 등이 포함돼 있어 문제될 것 없다”고 주장한다.

다른 지자체도 비슷하다. 경기 평택시는 6740억원, 충남 계룡시 569억원의 부채가 있다. 문제는 지자체 상당수가 채무를 어떤 돈으로 갚았는지, 부채는 어떤 것들이 남아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세입 규모가 빤한 지자체가 2~3년 새 최대 수천억 원에 이르는 채무를 갚는 게 가능하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실제 용인시는 ‘채무 제로’ 선언 직후 교육분야 지원금을 전년 대비 56% 늘어난 479억원을 편성했다. 전문가들은 “시가 빚을 우선적으로 갚으려 교육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용인시는 이에 대해 “지방재정법 제2조5호에 명시된 채무를 다 갚은 것이며 법 규정에 따라 이를 이행한 것이기 때문에 전혀 꼼수가 아니다”라며 “2년 반 동안 8211억원을 갚아 하루 1억700만원에 달했던 은행이자를 안내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어 “하수관거와 같은 임대형 민자사업은 시민들로부터 사용료를 받아 갚아나가는 것으로 지방재정법상 공식채무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며 “민자사업으로 추진된 경전철 부채도 행정자치부에서 우발부채로 규정해 공식 부채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채무 제로’ 생색내기는 광역 지자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인천시는 지난해 3조7461억원의 빚을 갚았다. 하지만 최근 3년간 정부로부터 보통교부세(수입액이 부족할 때 정부가 메워 주는 재원)를 매년 4500억원 이상 끌어와 썼다. 국고보조금도 4년 연속 2조4000억원 이상 받아냈다. 국비로 지자체의 빚을 갚은 셈이다. 시는 ‘부자 도시’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인천시에 남아 있는 부채는 10조1000억원이다.

경남도는 2016년 6월 광역단체 중 전국에서 처음으로 ‘채무 제로’를 선언했다. 하지만 도는 채무(1조3488억원)를 갚으려 중소기업육성기금·환경보전기금 등 12개 기금 1377억원을 없앴다.

전문가들은 지자체들이 채무 제로를 선언할 때 부채 규모를 정확히 알려 재정상태를 명확히 알려야 한다고 당부한다.

창원대 송광태 행정학과 교수는 “무엇을 줄여 빚을 갚을지 옥석을 가리는 작업은 단순히 현재뿐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고려한 객관적 기준을 마련해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채무’와 ‘부채’

「 지방재정에서 빚은 채무와 부채로 나뉜다. 채무는 지방채증권, 차입금과 같이 날짜와 금액이 정해져 있다. 부채는 채무를 포함하며 미지급금, 퇴직급여충당금 등 금액이 정해져있지 않거나 예측이 어려운 비용이다.

용인·시흥·창원=임명수·김민욱·위성욱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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