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영화 감독, 아시아 6개국 귀신 어벤져스 발탁된 사연
나원정 2018. 5. 6. 00:00
HBO 아시아 공포 시리즈에서
한국편 '몽달' 맡은 이상우 감독
총각 귀신 소재 모성애 공포물
아시아의 ‘귀신 어벤져스’가 전 세계 호러 팬을 만난다. 미국 최대 유료 케이블 채널 HBO가 아시아 6개국 토종 괴담을 토대로 공포 시리즈 ‘토속(Folklore)’을 내놓는다. 한국‧싱가포르‧일본‧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각국 영화감독이 각자 한 편씩 연출하는 다국적 프로젝트다. HBO 아시아 지부 25주년 기념으로 제작, 내년에 아시아를 시작으로 미국‧유럽에도 방영 예정이다. 한국편 귀신으론 장가 못 들고 죽은 총각 귀신 몽달이 나섰다. ‘몽달(Bachelor Ghost)’의 연출을 맡은 이상우(47) 감독을 촬영 전에 미리 만났다. 촬영은 올해 4월 서울과 강원도에서 진행됐다.
“진짜 각국 에이스 감독만 뽑혔어요. 저만 빼고요.” 이 감독의 말대로다. ‘토속’ 시리즈 총괄 프로듀서와 연출을 겸한 에릭 쿠 감독은 싱가포르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거장. 인도네시아편은 지난해 ‘사탄 슬레이브’로 현지 공포물 최고 흥행을 기록한 조코 안와르 감독이, 일본편은 배우로 더 유명한 사이토 타쿠미가 메가폰을 잡는다. 반면 이상우 감독은 독립·실험영화 ‘엄마는 창녀다’(2011) ‘나는 쓰레기다’(2016) 등으로 대중보단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매춘, 인신매매, 근친상간 등을 소재로 가족과 사랑이란 테마를 극단까지 파헤쳐 ‘이단아’로 불렸다. 전에 공포물을 연출한 적도 없다.
“VOD 부가판권 수입도 줄어들고, 영화제에서도 예전엔 먹혔던 센 영화들이 힘을 잃고 있어요. 사람들이 식상해하는구나. 그래서 부드럽게도 바꿔보기도 했죠. 어쨌든 소통하려고 영화를 찍는 거니까요.” 올 초에 선보인 청춘 성장영화 ‘스타박’스 다방’이 한 예다. ‘몽달’ 역시 대중에 다가가려는 목마름의 연장선이다. “워낙 영화 찍는 걸 좋아해 제 스타일의 독립영화도 계속 할 거예요. 하지만 작품을 찍고 관객을 만나 서로 통하는 순간이 너무너무 감격적이에요. 지금은 사람들이 ‘몽달’을 무섭게 봐주기만 빌고 있습니다.”
‘토속’ 시리즈는 같은 아시아라도 잘 몰랐던 귀신이 여럿 등장한다. 인도네시아 편은 아이 없이 죽은 여자 귀신이 아이들을 홀려 실종시킨다는 미신을, 말레이시아 편은 아이 귀신을 만드는 무당의 마술을 다룬다. 귀신 보는 고교생, 10대 흡혈녀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있다. 한국에는 HBO 채널이 진출하지 않았지만 영화제 등을 통해 전체 시리즈를 한꺼번에 선보이는 방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한국편 '몽달' 맡은 이상우 감독
총각 귀신 소재 모성애 공포물
“진짜 각국 에이스 감독만 뽑혔어요. 저만 빼고요.” 이 감독의 말대로다. ‘토속’ 시리즈 총괄 프로듀서와 연출을 겸한 에릭 쿠 감독은 싱가포르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거장. 인도네시아편은 지난해 ‘사탄 슬레이브’로 현지 공포물 최고 흥행을 기록한 조코 안와르 감독이, 일본편은 배우로 더 유명한 사이토 타쿠미가 메가폰을 잡는다. 반면 이상우 감독은 독립·실험영화 ‘엄마는 창녀다’(2011) ‘나는 쓰레기다’(2016) 등으로 대중보단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매춘, 인신매매, 근친상간 등을 소재로 가족과 사랑이란 테마를 극단까지 파헤쳐 ‘이단아’로 불렸다. 전에 공포물을 연출한 적도 없다.
Q : 어떻게 연출 의뢰를 받았나.
A : “에릭 쿠 감독을 통해서다. 지난해, 지지난해 싱가포르영화제에서 만나 완전 친해졌다. 쿠 감독님 부인이 한국분이고, 감독님도 워낙 한국통이다. 영화제에 초청받은 제 영화 ‘더티 로맨스’를 마음에 들어 해서 주변에 추천도 해주셨다. HBO에 이번 시리즈를 먼저 제안한 게 감독님이다. 다들 쟁쟁한 감독이라, 처음에 저보고 같이 하자고 했을 땐 진짜 장난인 줄 알았다.”
Q : 왜 하필 몽달귀신인가.
A : “처음 시나리오엔 처녀귀신, 레즈비언 귀신도 나오고 그랬다. HBO에 다 까였다. TV 드라마여서 전체관람가여야 한다더라. 동성애·장애·종교 등의 비하도 안 돼고. 이때까지 제 영화에 다룬 모든 게 안 됐다. 무조건 세게 가면 되는 줄 알았다가 시나리오 수정만 60번을 했다. 오랫동안 영화를 혼자 찍다 보니, 그런 간섭이 오히려 달가웠다. 어떡하면 순하게 찍을까, 고민하다 지난해 10월에야 몽달귀신 설정을 내밀었다. HBO도 특이하다며 무척 좋아했다.”
이 감독에 따르면 ‘몽달’은 처절한 모성애를 그리는 공포물이다. 10대 아들을 사고로 잃은 엄마 옥빈은 아들을 짝사랑하던 소녀와 영혼결혼식을 시켜 넋을 달려주려 한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사태가 꼬이고, 옥빈은 아들과 소녀의 귀신에 동시에 시달리게 된다. 대사는 모두 한국어. 가수 겸 배우 채연이 주인공 옥빈 역을 맡았다.
A : “처음 시나리오엔 처녀귀신, 레즈비언 귀신도 나오고 그랬다. HBO에 다 까였다. TV 드라마여서 전체관람가여야 한다더라. 동성애·장애·종교 등의 비하도 안 돼고. 이때까지 제 영화에 다룬 모든 게 안 됐다. 무조건 세게 가면 되는 줄 알았다가 시나리오 수정만 60번을 했다. 오랫동안 영화를 혼자 찍다 보니, 그런 간섭이 오히려 달가웠다. 어떡하면 순하게 찍을까, 고민하다 지난해 10월에야 몽달귀신 설정을 내밀었다. HBO도 특이하다며 무척 좋아했다.”
이 감독에 따르면 ‘몽달’은 처절한 모성애를 그리는 공포물이다. 10대 아들을 사고로 잃은 엄마 옥빈은 아들을 짝사랑하던 소녀와 영혼결혼식을 시켜 넋을 달려주려 한다. 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사태가 꼬이고, 옥빈은 아들과 소녀의 귀신에 동시에 시달리게 된다. 대사는 모두 한국어. 가수 겸 배우 채연이 주인공 옥빈 역을 맡았다.
Q : 초저예산 독립영화를 주로 해왔는데 이번엔 제작 방식이 어떻게 달랐나.
A : “넉넉히 찍었다. ‘몽달’ 제작비는 정확히 밝힐 수 없지만, 현장인원이 엑스트라까지 한 60~70명 됐다. 원래 제 영화는 보통 두세 명이서, 1000만원 미만으로도 찍는다. HBO에선 시나리오 이후론 제작방식에 큰 터치가 없었다. 후반작업의 편집·사운드까진 국내에서 하고, 색보정은 인도네시아에서 하기로 한 정도다.”
그의 영화 인생은 곡절이 많다. 미국 UC버클리주립대 영화과를 나와 한국에서 상업영화를 준비했지만 번번이 불발됐다. 2008년 첫 장편 ‘트로피컬 마닐라’는 사채 빚을 얻어 찍었다. 해외 영화제 마켓에 자신의 영화를 단돈 1만원에라도 팔겠다고 나선 적도 있다. 이렇게 해서 ‘엄마는 창녀다’는 40만원에 대만에 수출됐다.
극단적 가족얘기를 다루며 직접 주연까지 하다 보니 오해를 많이 받지만 실제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한다. 영화제 초청에 부지런히 응한 덕에 관객들과 치열한 토론, 차기작으로 이어지는 좋은 인연도 많이 경험했다. 하지만 “정작 본게임(극장 개봉)에선 최종 관객이 스무 명도 안 드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졌다”고 했다.
그의 영화 인생은 곡절이 많다. 미국 UC버클리주립대 영화과를 나와 한국에서 상업영화를 준비했지만 번번이 불발됐다. 2008년 첫 장편 ‘트로피컬 마닐라’는 사채 빚을 얻어 찍었다. 해외 영화제 마켓에 자신의 영화를 단돈 1만원에라도 팔겠다고 나선 적도 있다. 이렇게 해서 ‘엄마는 창녀다’는 40만원에 대만에 수출됐다.
극단적 가족얘기를 다루며 직접 주연까지 하다 보니 오해를 많이 받지만 실제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한다. 영화제 초청에 부지런히 응한 덕에 관객들과 치열한 토론, 차기작으로 이어지는 좋은 인연도 많이 경험했다. 하지만 “정작 본게임(극장 개봉)에선 최종 관객이 스무 명도 안 드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졌다”고 했다.
‘토속’ 시리즈는 같은 아시아라도 잘 몰랐던 귀신이 여럿 등장한다. 인도네시아 편은 아이 없이 죽은 여자 귀신이 아이들을 홀려 실종시킨다는 미신을, 말레이시아 편은 아이 귀신을 만드는 무당의 마술을 다룬다. 귀신 보는 고교생, 10대 흡혈녀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있다. 한국에는 HBO 채널이 진출하지 않았지만 영화제 등을 통해 전체 시리즈를 한꺼번에 선보이는 방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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