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제는 하필이면 '신민회'를 탄압하려 했을까
[오마이뉴스 정만진 기자]

왜 일본 총독부는 총독 암살 사건을 조작하여 신민회를 탄압했을까? 당시 신민회가 전국 최대의 항일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신민회는 1901년 양기탁, 안창호, 이동휘, 신채호, 김구, 이동녕, 박은식, 이희영, 이시영, 이상재, 윤치호 등 독립협회 청년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비밀 결사단체이다.
일제가 신민회를 특히 탄압한 이유
신민회는 입헌군주국을 지향한 독립협회와 달리 공화정 체제를 추구했다. 회원끼리도 서로 알 수 없게 점조직으로 꾸려졌음에도 1910년 들자 주요 애국계몽운동가의 거의 대부분이 가입했고, 군 단위까지 지부를 두었다. 평양 대성학교 등 국내에 많은 학교를 세웠고, 국외에 독립운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서 독립군을 양성했다. 신흥(新興)무관학교의 신흥은 '신(新)민회가 나라를 부흥(興)시킨다'는 의미였다. 일제 총독부로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막강한 항일 단체가 바로 신민회였던 것이다.

어려서 한학을 배웠던 구찬회는 15세였던 1906년 3월 신학문을 학습하기 위해 배재학당에 입학했다가 다시 융희학교로 전학했다. 그는 16세 되던 1907년 신민회에 가입했다.
1909년 신민회는 비밀간부회의를 통해 독립군 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만주로 망명할 것을 결의한다. 이 방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만주로 향했다. 안동의 이상룡(1858∼1932)도 조상 대대로 살아온 임청각(보물 182호)을 팔아 마련한 독립운동 자금을 들고 1911년 1월 5일 안동을 떠난다.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53세였다.
일주일 내내 걸어서 추풍령에 도착하는 이상룡 가족
이상룡 가족은 일주일 동안 계속 걸은 끝에 1월 12일 추풍령에 닿고, 거기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간다. 이상룡은 "머리는 자를 수 있어도 무릎을 꿇고 종이 될 수는 없다"라고 다짐한다. 안동을 떠나고 한 달 뒤인 2월 7일, 이상룡 가족은 먼저 만주로 망명한 처남 김대락의 거주지 횡도촌에 당도한다. 그 날 이후 이상룡은 1925년 임시정부의 국무령으로 활약하는 등 1932년 병사할 때까지 줄곧 항일 투쟁에 매진했다
| 이상룡 소개 이유 |
본래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통령제였고, 초대 대통령이 이승만이었다. 그런데 이승만이 미국의 조선 위임 통치를 주장하자 임시정부 의정원은 이승만을 탄핵했고, 2대 대통령으로 박은식이 취임했다. 그 후 임시정부의 대통령제는 국무령제로 바뀌었고, 이때 이상룡이 취임했다. 이 글에서 신민회 주요 인사 중 이상룡을 특별히 소개하는 것은 그를 기려 세워진 '이상룡 구국 기념비'가 대구 달성공원 안에 있기 때문이다. |
그의 나이가 겨우 19세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일제는 '배후 인물을 실토하라는 잔혹한 고문'을 했다. 그러나 지사는 '굴하지 아니하고 악형을 받았다. (결국) 1910년 5월 13일 가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감옥에서 순국하였다.(권대웅 <달성의 독립운동가 열전>)'
정부는 그에게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조국과 겨레를 위해 외세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스무 살 젊은 청춘, 그의 생가터에서 답사자는 그저 애잔할 뿐이다. 무엇으로 그의 혼백을 위로할 수 있으랴! 땀을 쏟고 피를 흘리고 마침내 스무 살 새파란 생명까지 바쳐 얻은 독립인데, 오늘날 두 동강 난 유일한 나라로 지구상에 남아 있으니….

조상은 왕조를 뒤엎은 세력도 거부했는데, 어찌 바다를 건너온 일본 세력에게 무릎을 꿇을 것인가. 비록 이상룡이 "머리는 자를 수 있어도 무릎을 꿇고 종이 될 수는 없다"라고 다짐한 때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지 여덟 달 뒤의 일이지만, 구찬회는 진작 그 말을 듣고 또 가슴에 새겼으리라.
"머리는 내놓아도 무릎은 꿇을 수 없다"
구찬회 생가와 표절사 사이를 흐르는 동화천은 대구에 남은 유일한 자연 하천이다. 아래로 동화천을 굽어보며, 구찬회 지사와 같은 선열들의 뜨겁고 올곧은 정신이 이 땅에, 우리들의 마음에 굳건히, 영원히 남아 있기를 소망해 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권대웅 <달성군의 독립운동가 열전> 참조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불온한 조선인' 9명 배출한 기와집, '반토막' 났다
- "머리는 자를 수 있지만 무릎을 꿇을 수는 없다"
-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 책임 안 느끼나? 명태균 대답은...
- 이혜훈 청문회에서 봐야 할 단 한 가지
- 왜 전두환보다 엄한 형벌 내려야 할까... '윤석열 사형 구형'의 핵심
- 요리괴물 이긴 '조림인간 최강록'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
- "한밤 중 쿠데타" 반발에도 장동혁, '한동훈 제명' 밀어붙인다
- 기부는 어렵다? 축제 같은 기부 알려드립니다
- 요즘 유행하는 '경찰과 도둑', 내가 결코 안 하는 이유
- 한동훈 "당 지킨 나를 제명? 이건 또 다른 계엄 선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