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한국] 1965년 자동차 생산 북한 4400대 vs. 남한 100대, 지금은?
정원엽 2018. 4. 24. 16:18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대한민국은 해방의 기쁨도 잠시, 곧 동서 냉전의 축소판이 됐다. 북한은 소련에 의해 사회주의 노선을, 남한은 미군정과 함께 강력한 반공 노선을 추구했다. 그렇게 ‘하나의 한국’은 1948년 두 개로 갈라졌다.
분단 70년을 맞은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달라진 남·북의 모습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분단 70년, 통계로 보는 남북 ①정치, 경제, 산업
분단 70년, 통계로 보는 남북 ②군사(핵), 사회간접자본(SOC),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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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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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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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경제체제의 차이는 산업 발전의 차이로 이어졌다. 남한은 '한강의 기적'이란 찬사를 받으며 1996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섰다. 소위 '선진국 모임'이라고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이 때 북한은 역대 최악의 기근을 겪으며 소위 '고난의 행군'을 했다. 남한은 동아시아금융위기가 닥친 1997년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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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체제의 차이는 산업 발전의 차이로 이어졌다. 남한은 '한강의 기적'이란 찬사를 받으며 1996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섰다. 소위 '선진국 모임'이라고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이 때 북한은 역대 최악의 기근을 겪으며 소위 '고난의 행군'을 했다. 남한은 동아시아금융위기가 닥친 1997년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어려움을 겪었다.

분단 직후에는 북한이 산업화에서 앞서 갔다. 중공업 등 기존 산업시설이 북한 지역에 몰려있었고, 남한에는 산업 기반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6년 남한의 산업구조는 서비스업(55.9%)·광공업(27.2%)·제조업(26.8%) 등 2·3차산업 위주로 재편된 반면, 북한은 농림어업(29%)·광공업(28%) 등 1·2차 산업 위주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현재 북한은 정부(22.4%)·농림어업(21.7%)·광업(12.6%) 등의 순으로 남한과 전혀 다른 형태의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산업화의 상징 중 하나인 자동차 생산량과 자동차 등록 대수를 봐도 남·북의 산업적 차이는 명백하다. 1965년 당시 북한은 4400대의 차량을 생산한 반면 남한은 불과 100대를 생각했다. 하지만 2016년을 보면 한국은 422만 8500대의 차량을 생산한 반면, 북한은 3800대 생산에 그쳤다. 등록된 차량을 보면 남한은 총 2180만대로 국민 2.5인당 1대 꼴이다. 이에 비해 북한은 28만 5000대 차량만 등록돼 90명당 1명꼴에 불과하다.

하나의 뿌리, 두 개의 한국 - 분단 70년, 통계로 보는 남북 ② 편에서는 군사, 핵무기, 사회간접자본, 생활 등을 다룹니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디자인=임해든, 최민희·최한울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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