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러 부작용에도 '배 째라'? 의사가 봐도 이건 아니다
[오마이뉴스 글:이정혁, 편집:김예지]

그로부터 4개월 후, 이마가 다시 부풀어 오르고, 붓기가 코 쪽으로 내려오며 통증을 느꼈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지연형 알레르기 반응이라며 용해제를 주사했다. 필러의 주성분인 히알루론산은 용해제로 쉽게 제거 가능하다.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보름쯤 지나서 시술 부위가 다시 부어올랐다. 용해제 주사를 또 맞았다.
그 후로 8개월간 이 과정을 여섯 번 반복했다. 용해제 시술을 받고 온 날은 눈 아래까지 부어서 근무조차 할 수 없었다. 의원 측에 항의했다.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거라는 답변뿐이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히알루론산 필러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흡수되는 속성을 지녔으므로. 답답함에 다른 성형외과를 찾았다. 필러뿐만 아니라 필러 용해제에도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난다고, 그런 것도 확인 안 하고 여섯 번씩이나 용해제를 맞았냐고 의아해했다.
황당한 마음에 용해제 알레르기 확인서를 들고 시술했던 의원을 찾았다. 여기서 사태가 수습이 돼야 했다. 용해제 알레르기 설명 부족에 대해 깨끗이 사과하고 지인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경청했어야 했다. 하지만 시술한 원장의 반응은 이러했다. 이 내용을 믿을 수 없으니 공신력 있는 상급 의료기관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하고 결과를 받아 오라. 지인은 화가 났다. 그 길로 인근 대학병원을 예약하고 한 달 후에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같았다.

누군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아래 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를 하고 조정신청서를 작성했다. 일말의 기대를 품고 기다린 결과는 각하통지였다. 각하 사유는 피신청인의 조정 불응 의사 확인. 쉽게 말하면 시술 측 의원에서 조정을 거부한다는 말이었다. 안 한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중재원의 분쟁조정은 강제성이 없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지인의 억울한 사연이다.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던 필자도 어이가 없었다. 첫 번째는 시술 의원 측의 반응이었고, 두 번째는 중재원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었다. 시술 의원의 원장은 버티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 필러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흡수될 것이니 크게 문제 될 것이 없고, 경제력이 약한 환자는 소송 비용이 부담스러워 선뜻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파악하고 있던 것이다.
부작용에 따른 직·간접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으로 남았다. 억울함을 호소할 길 없는 일반인들에게 중재원은 어떤 힘도 되지 못했다. 그저 인터넷상으로 넋두리를 들어주고 사연을 피신청인 측에 전달해주는 역할이 전부다. 물론, 신청인이 의료인인 경우도 있고, 환자 측에서 터무니없는 배상액을 요구해서 분쟁 조정을 받아들이는 의료기관도 존재할 것이다. 존재 자체가 회의적인 것은 아니다.

전국 수만 개의 의료기관에서 진행되는 분쟁들을 일일이 관리한다는 것이 인력이니 시간 측면에서 역부족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쟁조정 신청에 대한 피신청인 측의 답변서 제출에 강제성을 부여한다면 객관적인 해명을 통해 어느 쪽에 문제가 있는지 정도는 파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중재원을 통해 양측의 의견이 문서상으로 정리된다면 이후 소송에 있어서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인은 그 후 소송을 위해 변호사와 상담을 했다. 지인이 요구한 배상액은 초기 진료비와 검사비, 휴업손해비용 등을 포함하여 300만 원이었다. 변호사의 말로는 완전 승소한다 해도 변호사 수임료와 각종 서류 비용을 제외하면 지인에게 배상될 돈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일부 승소 시에는 오히려 보상액보다 수임료가 많이 나온다. 피신청인 측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잘 알기에 조정에 불응했을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민사소송의 특성상 소송기간은 6개월에서 1년쯤 걸린다. 원고가 승소한다 해도 피고가 항소하면 추가적인 기간과 수임료가 발생한다. 내용상 승소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비용 부담면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니 어지간하면 소송은 피하라는 것이 법률가의 조언이었다. 이것이 소액 의료 분쟁의 현실이다.
본인의 억울함을 인터넷상에 올리면 명예훼손으로 역고소 당하므로 피해자인 지인은 사실상 손쓸 방법이 없다. 그저 돈 없는 자신을 탓하며 물러서는 것이다. 필자는 의료인이다. 의료인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이건 환자에게 불리한 여건이다. 부작용의 증거가 확실하고 치료 과정 중에 오진이 명확한 상황에서도 소송으로 넘어가면 위축되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들에 대한 대안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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