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南人流] "적어도 괴물은 그리지 말아야"

유지연 2018. 4. 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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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세밀화 작가 신혜우
신혜우 작가는 ‘그림 그리는 연구자’라는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오른쪽 그림은 시드니 왕립 식물원 마가렛 플록턴 어워즈에서 수상한 작품. Cissus erecta, 2015, pen drawing, 297x420㎝
지난 3월 15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 갤러리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식물 세밀화가이자 식물 분류학자인 신혜우(33)와 미술가 이소요의 합동 전시 ‘식물학자의 그림, 그 시작과 끝’ 전시였다.

갤러리에 들어서면 벽에는 겉씨식물, 기생식물, 백록고사리 등 이름도 낯선 다양한 식물 그림이 걸려있다. 채집과 표본, 정밀한 관찰을 거쳐야만 그릴 수 있는 식물 세밀화다. 옆에는 실제 식물의 표본과 이를 연구한 논문·자료 등이 빼곡하다.
식물 세밀화는 한국에서 생소한 분야지만 외국에선 ‘보태니컬 아트’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 특히 영국 등 유럽에선 15~16세기에 번성했던 고전 장르이기도 하다. 식물도감이나 연구자의 논문에 쓰이는 과학에 기반을 둔 식물 그림으로 이해하면 쉽다.

보안여관에서 만난 신혜우씨는 우리나라 식물 세밀화 분야에서 손꼽히는 작가다. 식물 분류학자면서 동시에 그림을 그리는 몇 안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식물 연구가인 동시에 보태니컬 아티스트인 경우는 드물다.
보태니컬 아트 12년 경력의 신 작가는 현재 이화여대 에코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에서 박사 과정 중이다. 사실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 식물 계통 분류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시간이 더 많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논문에 사용할 도감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연구 틈틈이 식물 그림을 그리고 환경부와 산림청, 국립수목원 등과 함께 도해 작업을 한다. 최근 2년간 아모레퍼시픽 등의 기업과도 작업했다.

“경상남도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동네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유명했는데, 개인적으론 지천에 핀 식물에 관심이 많았죠. 여섯 살 때 김태정 선생님의 식물도감을 보면서 식물 연구를 꿈꿨죠.”

신 작가의 주요 연구 테마는 기생식물이다. 연구를 하는 동시에 그림도 그린다. 베스트셀러인 여성 과학자 호프 자런의 책 『랩걸』표지에도 실렸다. 영국왕립원예협회(RHS)에서 기생식물 시리즈(2014년 작품)로 금메달과 최고 전시상도 수상했다. RHS 보태니컬 아트쇼는 이 분야 최고 권위의 전시회다. 신 작가는 드물게 젊은 나이로 2013·2014년 연속 금메달과 최고 전시상을 받았다. “과학에 기반을 둔 정확한 그림이면서 동시에 예술성까지 겸비했다”는 평을 받았다. 신 작가는 “식물 세밀화는 단지 예쁜 그림이 아니라 해당 식물이 가진 특징과 중요한 정보를 확실하게 표현하고, 사진보다 더 세부적이고 분명하게 식물의 형태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예쁘게 그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신 작가는 “적어도 비율이나 구조면에서 괴물 같은 식물 그림을 그리면 안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정확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림이야말로 자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틈틈이 식물 세밀화 레슨도 한다. 생물 분야 세밀화를 그릴 수 있는 인력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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