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시작된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마침내 분수령을 넘었다. 지리산에 풀어준 것과 거기서 새로 태어난 곰을 합쳐 이번 봄 50마리를 넘길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50마리는 곰 무리가 스스로 번식하고 존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숫자로 간주됐고, 곰 복원사업의 1차 목표였다. 이제 그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이제 곰 복원사업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돼야 할까.
━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한 곰
충남 공주의 옛 이름 웅진(熊津), 즉 고마나루에는 애틋한 전설이 서려 있다. 오랜 옛날 짝을 찾던 암컷 곰이 잘 생긴 청년을 발견하고, 동굴로 데려왔다. 곰은 사냥을 나갈 때 동굴을 바위로 막아 청년이 달아나지 못하게 했다. 마침내 곰은 청년과의 사이에서 새끼를 얻었고, 마음을 놓은 곰은 바위로 굴을 막지 않고 사냥을 나갔다. 그 사이 청년은 멀리 달아났고, 청년을 그리워하던 곰은 결국 새끼와 함께 강에 몸을 던졌다.
이 전설과는 달리 단군신화의 곰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곰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桓雄)에게서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받아 동굴에서 삼칠일(三七日·스무하루)을 지낸 뒤 여자가 됐다. 사람으로 일시 변신한 환웅과 혼인해 단군왕검을 낳았다.
이처럼 곰은 단군신화와 전설에 등장할 만큼 한민족에게는 친숙한 존재다. 한반도 곳곳에는 곰과 관련된 지명도 많다. 예로부터 조상들은 곰의 쓸개인 웅담은 약재로, 곰 발바닥은 요리 재료로 사용했다. 과거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온, 한반도 토종 곰은 반달가슴곰(Asiatic Black Bear)과 불곰 두 종류가 있다. 남한에서 불곰은 멸종된 지 오래고, 반달가슴곰도 멸종 위기에 처했다.
반달가슴곰은 몸 전체가 검은색 털로 덮여 있고, 가슴에는 반달 모양으로 흰색 털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반달곰이란 이름보다는 반달가슴곰이 정확한 이름이다. 원래 우리 조상들은 그냥 ‘곰’이라 불렀고, ‘반달가슴곰’은 일본 이름을 번역한 것이다.
반달가슴곰은 한반도 전체에 폭넓게 분포했으나 한국전쟁과 남획으로 숫자가 크게 줄었다. 1983년 설악산에서 총을 맞은 채 발견된 것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1990년 후반 지리산에서 여러 차례 야생 곰의 서식 흔적이 확인됐다. 본지는 2000년 3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작성한 ‘지리산국립공원 야생동물 생태계 정밀조사’라는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지리산에는 반달가슴곰이 분명히 생존하고 있다”며 “개체 수는 절대 많지 않으나 5마리 내외일 것으로 확신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2000년 11월에는 진주 MBC가 설치한 무인 카메라에도 곰 모습이 찍히면서 야생 반달가슴곰 서식 사실이 확인됐다. 환경부는 2002년 열 감지 센서가 부착된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지리산에 야생 반달가슴곰이 5마리 이상 사는 것을 확인했다. 강원도 오대산·점봉산에서도 반달가슴곰의 서식 흔적이 최근에도 보고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329호이며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 2001년 시작된 지리산 곰 복원 사업
사라졌던 반달가슴곰이 지리산에서 발견되면서 반달가슴곰 복원사업도 시작됐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시범사업으로 2001년 8월 국내에서 사육하던 새끼 곰 네 마리를 골라 방사했다. 당시에도 방사장을 마련, 사람과의 접촉을 차단한 상태에서 적응 훈련을 거쳤다. 수컷 두 마리, 암컷 두 마리는 2001년 9월 8일 방사됐다.
이 가운데 암컷인 ‘막내’는 사람을 따라 다니는 바람에 그해 11월 거둬들였다. 다른 암컷인 ‘반순’이는 그해 12월에 숲속에서 먹이를 찾지 못한 채 헤매다 죽음을 맞았다. ‘반돌’이와 ‘장군’이란 이름을 가진 수컷 두 마리는 농가 벌통을 뒤져 꿀을 훔쳐 먹고 염소를 공격하는 등 소동을 벌인 탓에 2004년 5월 야생 생활을 접고 다시 우리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2004년 러시아를 시작으로 중국과 북한 등에서 들여온 반달가슴곰을 지리산에 방사하면서 복원사업을 본격화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문가들은 반달가슴곰이 자체적으로 번식하고 숫자를 유지하려면 50마리 이상은 돼야 한다고 판단하고, 일차적으로 50마리까지 개체 수를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2004년 10월에는 러시아에서 들여온 천왕·제석·만복·달궁·칠선·화엄 여섯 마리가 방사됐다. 북한에서 들여온 반달가슴곰은 장강·낭림·덕성·송원 같은 이름이 붙었다.
2007년부터는 이런 이름 대신 ‘관리번호’로 부른다. 복원사업 초기에는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친근한 이름을 붙였지만, 시민들이 야생동물인 곰을 애완동물처럼 여기면서 “폐사한 곰은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요구하는 등 부작용도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방사된 반달가슴곰은 올무(올가미)에 걸려 희생되기도 하고, 절벽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기도 했다. 발신기 교체를 위해 포획하는 과정에서 트랩에 갇혀 죽기도 하고, 또 마취하는 과정에서 죽는 일도 있었다. 대피소 침낭을 물어뜯고 달아났다가 붙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방사를 계속하고, 자연에서 출산이 이어짐에 따라 지리산에서 서식하는 곰의 숫자는 계속 늘었다. 지리산에 방사된 곰이 자연에서 처음 출산한 것은 2009년 초였다. 동면 중이던 반달가슴곰 암컷 두 마리가 새끼 한 마리씩 출산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방사한 곰이 야생에서 낳은 새끼가 자라서 다시 새끼를 낳는 ‘3세대 출산’도 확인됐다. 2017년 말 동면에 들어가기 전에는 모두 48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사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종 확인은 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사례에 비춰 지난 겨울에도 최소한 두 마리 이상의 새끼가 태어났을 것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은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의 1차 목표인 50마리에 도달하게 되는 셈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는 "과거에는 동면 중인 어미 곰을 직접 조사해 출산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녹음기나 카메라를 설치한 뒤 곰이 잠을 깨 떠난 뒤 사후에 조사한다"며 "올봄 수컷들은 이미 잠을 깨 활동을 시작했고, 암컷들은 아직 활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2012년 1월 지리산에서 태어난 새끼 반달가슴곰 네 마리 중 한 마리의 ‘아버지’가 토종 곰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방사한 곰들의 유전자와 비교한 결과, 새끼 곰 한 마리는 방사한 곰 중에서는 부계 혈통을 확인할 수 없었다. 복원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야생에 살던 곰이 방사한 암컷 곰과 짝짓기를 했다는 게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센터의 결론이다.
━ 동면 중에 새끼 낳고 젖 먹여
반달가슴곰은 곤충이나 물고기도 먹는 잡식성이지만 먹이의 대부분이 식물성이다. 봄에는 산나물을, 여름에는 산딸기·머루·다래·버찌·오디 같은 열매를, 가을에는 도토리를 주로 먹는다. 히말라야 동부, 동남아시아, 중국, 러시아 연해주 남부, 한반도, 일본에 분포한다. 몸길이는 1.4~2m 정도. 지리산에서의 주된 서식 장소는 해발 700~1000m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곰 복원사업이 진행된 초기에는 연말이면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겨울잠에 들었는지, 아직 잠들지 않았으면 언제쯤 잠이 들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곰들이 겨울잠에 드는 시기는 기온이 얼마나 떨어졌느냐, 눈이 얼마나 쌓였느냐에 따라 해마다 차이가 있다. 지리산 곰을 돌보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발표를 보면 보통은 12월 하순부터 1월 중순 사이에 잠이 들기 시작해 2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 깨어난다. 동면은 보통 100일 정도, 동면 장소는 바위틈이나 동굴, 나무구멍, 토굴 등이었고, 탱이(산죽을 엮어 등을 기대 쉴 수 있게 한 둥지)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어미 곰은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도 바쁘다. 임신하고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수컷과는 6~7월 여름에 교미하지만, 수정란이 자궁 속에 자리를 잡는 것은 6~7개월 뒤다. 암컷이 수정란을 몸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동면에 들어가기 전에 임신(수정란 착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미의 영양 상태가 나쁘면 임신이 돼도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임신 기간은 60일, 갓 태어난 새끼의 몸무게는 300g 정도다.
지구온난화로 기후가 변하면서 지리산 곰들이 겨울잠에 드는 시기도 들쭉날쭉해지고 있다. 곰들도 봄까지 잠을 충분히 자야 하지만 이른 봄 고로쇠 수액 채취에 나선 사람들이 시끄럽게 굴면 잠을 설친다. 실제로 2009년 봄에는 물이 차오른 잠자리를 벗어난 어미 곰이 탈진해 죽고, 새끼 곰까지 굶어 죽은 사건도 있었다.
━ 80㎞ 떨어진 김천 수도산에서 발견되다
곰 복원사업이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시민들 관심도 식고, 언론 보도도 크게 줄었는데 지난해 6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사건이 터졌다.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새끼 반달가슴곰이 붙잡혔고, 지리산에 살던 세 살 된 수컷 KM-53으로 확인됐다. 지리산에서 80㎞나 떨어진 곳까지 이동한 셈이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동했는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붙잡아 와서 전파발신기를 부착해 지리산에 풀어놓았더니 다시 수도산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정확한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곰은 다시 지리산으로 붙잡혀 왔고, 다시 수도산으로 이동하려다가 되돌아와 현재는 지리산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KM-53으로 인해 곰 복원사업에 대한 새로운 논란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불어난 곰이 지리산을 벗어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지리산에서 곰이 몇 마리나 살 수 있는가, 즉 적정 개체 수는 얼마인가 하는 것도 관심거리였다. 이 문제는 복원사업 초기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던 문제였다.
2002년 나온 국립공원관리공단 보고서에서는 “도토리 등 지리산의 먹이 자원을 고려하면 최소 241마리, 최대 401마리까지 서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환경부도 100마리는 서식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국립공원 중에서도 면적이 가장 넓다는 지리산(전체 면적 483.022㎢, 서울시 면적은 605㎢)도 지난해 녹색연합의 분석 결과, 횡단도로나 탐방로 등으로 152개 조각으로 나뉘면서 조각 한 개의 면적이 평균 3.18㎢에 그쳤다. 녹색연합 배제선 자연생태팀장은 "서식지 파편화는 야생동물이 기피하는 가장자리 지역을 증가시켜 서식지를 많이 감소시키는 영향을 가져온다"며 "복원 중인 지리산 반달가슴곰과 탐방객 충돌도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곰들은 먹이가 풍부하면 멀리 이동하지는 않지만, 보통은 행동범위가 100㎢ 안팎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생후 3~4년 때인 ‘사춘기’ 때는 곰도 호기심이 많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경향이 있다.
KM-53 외에 다른 곰도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곰들이 울타리도 없는 국립공원 경계 안에만 머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지리산 산줄기가 이어진 경남 산청군 웅석봉이나 하동군 형제봉은 말할 것도 없고, 가뭄으로 마른 섬진강을 건너 전남 광양 백운산과 곡성까지 다녀온다는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는 “곰들이 다닌 지역은 과거 한국전쟁을 전후한 지리산 빨치산들이 이동했던 경로 그대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립환경과학원도 2009년 곰이 이동할 수 있도록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이동로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또 자연환경국민신탁에서도 2014년 지리산 사치재 부근 농지 6000여㎡를 매입하고 사용하지 않는 도로를 폐쇄하는 등 곰이 덕유산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 완전 복원 위해 광역 보호구역 설정 필요
전남대 생명과학기술학부 박춘구 교수는 지리산 곰 12마리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러시아산 수컷이 암컷들을 독점한 탓에 근친교배로 인한 유전병 등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유전적 다양성 확보를 위해 곰을 더 투입하거나, 숫자를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리산의 반달가슴곰 수용 한계다. 지난해 11월 야생동물 복원 심포지엄에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장이권 교수는 지리산의 경우 반달가슴곰 적정 개체 수가 64마리(56~78마리)라는 수치를 제시했다. 당초 100마리 정도로 보았던 것보다는 줄어든 수치다. 계속 숫자가 불어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지리산국립공원을 확대하거나 일부 개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상황이다. 또 KM-53처럼 일부 개체가 자발적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도록 허용할 필요도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측에서는 “앞으로 곰이 지리산 국립공원을 벗어나더라도 포획을 하지 않기로 환경부가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자연스럽게 퍼져 나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서식지 확대를 위해서는 국립공원 지역뿐만 아니라 공원 외 지역까지도 포함하는 ‘광역 보호구역’을 설정할 필요도 있다. 강원대 산림과학부 박영철 교수는 “지리산과 덕유산, 가야산 등 국립공원 간의 백두대간 생태 축을 연결하고 사람과 곰의 충돌을 막는 완충 지역과 전이 지역을 서식지 주변에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은 지리산 외에 설악산이나 오대산 등에서도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설악산·오대산 등 북부권에도 175마리 정도의 반달가슴곰 수용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는 것이다. 북부권에 곰을 복원할 경우 먼저 설악산과 오대산에 방사한 뒤 자연스럽게 방태산까지 확산·이동하도록 하는 전략이 유력하다.
하지만 곰 서식범위가 확대되면 주민들이나 탐방객들과의 충돌이 우려된다. 야생 곰의 공격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곰이 출몰하는 곳, 곰을 만났을 때 대처하는 요령 등을 홍보하고 있다. 종이나 호루라기 등 곰 피해 방지용 물품을 나눠주기도 한다.
곰과 마주쳤을 때는 등을 보이며 도망가지 말고 시선을 응시하면서 뒷걸음질 치며 멀어지는 것이 좋다. 혹시 곰이 공격해오는 경우는 막대나 지팡이 등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최대한 사용해서 저항하고,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급소를 보호하는 자세를 취하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제도 보완도 필요하다. 곰이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이 없도록 감시·출동 체계를 갖추는 건 기본이고 사람이 다칠 경우 충분히 보상해 줘야 한다. 국립공원 밖에서도 곰이 밀렵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보호구역 확대가 필요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에서는 전국 어디에서든 곰의 공격으로 사망하는 피해가 발생하면 5억 원까지 보상할 수 있도록 보험을 들어둔 상태다.
결국, 곰 복원 추가 사업이 탄력을 받으려면 환경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곰이 두 번씩이나 찾아온 김천시에서 ‘곰 사는 청정지역, 반달곰아 오너라’ 플래카드까지 내걸었다는 점은 곰 복원사업이 희망적임을 말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