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고향의 관습이나 명절을 잊고 살 때가 많다. 지난 3월 8일 평창 올림픽과 패럴림팩에 참가하기 위해 평창에 와 있는 이탈리아인들과 같이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모든 남자가 작은 꽃이나 선물을 들고 와 여성 선수와 스태프, 기자들에게 나눠 주며 ‘여성의 날’을 축하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빈손으로 온 데다 심지어 어떤 날인이지도 몰랐던 나를 보고 같이 있던 여자들이 “한국에 사니까 우리를 위해 꽃보다 훨씬 큰 이벤트를 준비한 거 아니냐”며 놀렸다. 그제야 나는 이탈리아에서는 크게 기념하는 3월 8일 여성의 날을 지난 10년간 한 번도 지킨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정상의 눈 3/15
이탈리아에서는 여성의 날이 1970년대부터 공휴일이 되었지만 그 전에는 여성주의자들만의 기념일이었다. 지금은 매년 3월 8일이 되면 모든 여성에게 미모사 꽃과 선물을 주고, 온 국민이 여성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중요한 날이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이날이 되면 학교 여자 친구들에게 줄 미모사 꽃다발 여러 개를 엄마가 준비해 주시던 게 기억난다. 15살 때 엄마에게 “여성의 날을 축하한다”며 선물을 드렸더니 엄마도 나에게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셨다. 이탈리아 작가인 라라 카르델라의 『나는 바지를 입고 싶었다』라는 소설이었다. 엄마는 이 책을 보면 여성의 날이 뭔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이 소설은 80년대 말 시칠리아 지역에서 남성중심주의 사회와 여성에 대한 선입견에 대항하는 어린 여성의 이야기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에서 여성들의 기본적인 권리가 지켜진 지 불과 몇십년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며칠 전 평창에서 미모사 꽃은 아니지만 작은 꽃을 사서 주변에 있던 이탈리아와 한국 여성 몇 명에게 주며 앞으로 여성의 날을 꼭 기념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우리들의 어머니, 할머니, 누나, 여동생, 배우자, 여자 친구와 그 외 여성들에 대한 존중과 중요성을 기억하기 위해 ‘여성의 날’이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만큼 아직도 여성 인권과 권리가 위협받고 있는 곳이 많다. 모든 이들이 하루하루를 3월 8일처럼 지켰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