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옥의 백 투 더 클래식] 문지영 | 동양인 최초 부조니 콩쿠르 우승자
이탈리아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페루치오 부조니(F. Busoni, 1866~1924년)를 기리기 위해 1949년 시작된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우승 기준이 높기로 유명하다. 지난 59회 대회를 통해 겨우 27명만이 우승했다. 심지어 1회부터 3회까지는 줄곧 ‘1위 없는 2위’만 배출됐다. 2001년 격년제로 바뀐 뒤에는 단 3명에게만 1위 자리를 허락했다. 까다로운 기준 속에서 ‘베토벤 피아노 최고의 해설자’ 알프레드 브렌델과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배출됐고, 한국인 음악가로는 1969년 백건우, 1980년 서혜경과 1997년 이윤수가 ‘1위 없는 2위’를 수상한 적이 있다.
콩쿠르가 60회째던 2015년엔 우승자를 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는데, 주인공이 문지영이었다. 최종 결선에서 쇼팽의 ‘피아노 콘체르토 제2번 F단조’를 연주한 문지영은 일약 ‘세계 음악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부조니 이전에도 문지영은 주목받고 있던 라이징 스타였다. 7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그녀는 14살이던 2009년 폴란드 루빈스타인 청소년 국제 콩쿠르에서 공동 1위를 했다. 17살이던 2012년 제13회 독일 에틀링겐 국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에서 “음악적 상상력이 17세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랍다”는 평과 함께 우승하면서 일찌감치 남다른 재능을 인정받았다.
제노바와 부조니의 연이은 우승 덕분에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뒤를 잇고 있다는 평까지 들으며 세계 무대에 오르고 있는 문지영의 활약이 특히 돋보이는 것은 그녀의 남다른 음악 수업 때문이다.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문지영은 대개의 음악가와 다르게 어려운 환경에서 피아노 수업을 받았다. 장애 2·3급이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부모님과 한 달에 80만원씩 정부 지원을 받는 가정환경에서 동네 교회와 학원을 돌며 혼자 연습을 하며 자라난 피아니스트다.
자칫 ‘가능성 있는 음악 영재’ 정도에서 멈출 뻔했던 그녀가 음악적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본 이들의 도움 때문이다.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예술 교육의 기회를 마련해주자는 취지로 한국메세나협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개최한 ‘아트 드림 콩쿠르’에서 중등부 대상을 받은 그녀를 피아니스트 김대진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가 지도해줬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여수를 떠나기 어려웠던 문지영은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고속철도(KTX) 대신 무궁화호를 타고 5~6시간씩 걸려 서울에 와 수업을 받고 내려가는 일을 반복했다. 연주회가 있는 날은 전날 올라와 찜질방이나 고시원에 묵으면서도 꿈을 버리지 않았다. “처음 건반을 두드린 이후 한 번도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하는 생각을 버린 적 없다”고 얘기하는 문지영. 사실 연주자가 인기를 얻기 위해선 타고난 재능과 노력 외에도 어쩔 수 없이 따르는 행운도 무시할 수 없다. 피아니스트 문지영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완성해 세계적인 연주자로 거듭나길 바란다.
▶감상을 원한다면…
▷CD
슈만 : 피아노 소나타 1번, 환상곡 Op.17 외, DG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4호 (2018.1.31~2018.2.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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