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뒤흔든 '몽골 혐오' 스모전쟁..시작은 술집 폭행사건
몽골세에 밀린 일본 자존심이 '혐 몽골'로 폭발
몽골세에 맞선 다카노하나는 '스모의 전사'로
'몽골 대륙 문화 vs 日 고립문화 충돌' 분석도
"이건 스모 먼로주의다." 일본 스모계의 사정에 밝은 재계 고위 인사가 이런 말을 툭 던졌다. 지난해 11월이후 3개월 동안 일본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스모 정국’을 언급하면서다. TV만 틀면, 낮이든 밤이든, 연말이든 연시든, 만사를 제쳐놓고 단연 최고의 화제는 스모였다.
후배들의 태도 불량을 지적하는 하쿠호의 설교 때 후배 다카노이와(貴ノ岩)가 휴대전화를 만지작댔고, 이에 격분한 2인자 하루마후지가 다카노이와의 머리와 얼굴을 맨손과 노래방 리모콘으로 때렸다. 다카노이와는 머리가 찢어져 피를 흘렸고, 우여곡절끝에 회식은 끝났다. 다음날 피해자인 다카노이와가 가해자인 하루마후지에게 ‘죄송했다’고 사죄했고, 두 사람은 악수로 화해했다. 이렇게 끝나는가 싶던 폭행 사건이 이후 3개월간 일본을 들었다 놓게 된다.
역시 국민적 스타였던 여배우 미야자와 리에(宮沢りえ ·45)와의 약혼과 파혼 스토리도 유명하다. 미야자와 집안의 반대로 파혼하면서도 "사랑이 식었다"며 책임을 자신이 뒤집어쓴 것도 영웅담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번 폭행사건으로 하루마후지가 은퇴하기전까지 현역 요코즈나 4명 중 3명이 몽골인이었다. 그나마 지난해 19년 만에 배출된 일본인 요코즈나 기세노사토(稀勢の里寛)에 대해선 계급에 맞는 실력을 갖췄는지 논란의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
폭행사건 뒤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시키듯 극성 스모팬들과 보수 언론들은 몽골 출신 선수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특히 최강자 하쿠호에 대해선 "설교가 없었으면 폭행도 없었을 것…원흉은 하쿠호"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하쿠호가 ‘몽골리언 팀(mongolian team)’이란 영문이 쓰여진 운동복을 입은 것도, 그가 과거 다카노하나를 향해 불만을 표출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불에 기름을 부었다. 가는 곳마다 "다카노하나와 싸우지 말라"는 항의가 빗발쳤고, "하쿠호를 꼭 죽이겠다"는 투서까지 등장했다.
하쿠호가 사용하는 ‘하리테(손바닥으로 뺨을 치는 것)’,‘히지우치’(팔꿈치 공격)에 대해서도 "요코즈나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이를 지나치게 의식한 탓인지 하쿠호는 1월 첫 대회에서 실망스러운 경기력으로 중도 포기했다.
심지어 다카노하나가 지난해말 ‘이치몬(一門ㆍ일문)'으로 불리는 '스모 문중'의 망년회에서 불렀다는 노래 '용사들'과, "버리지마라, 남자라면 싸워라, 최후에 이겨야 하지 않겠나”라는 가사 내용까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가 됐다. 그가 두르고 다니는 목도리도, 항상 굳은 표정인 그가 살짝 웃기만 해도 뉴스거리였다.
제자가 폭행당한 사실을 스모협회에 곧바로 보고하지 않았고, 진상 조사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이유로 그는 지난해말 협회 이사직에서 해임됐다. 국민적인 관심을 등에 업은 그가 이사 선출 경선 출마를 결심하면서 일본인들의 이목은 다시 스모계로 집중됐다. 하지만 그는 결국 낙선했다.
이 책의 저자인 역사학자 미야자키 준코(宮脇淳子)는 이번 소동의 본질을 '문화 간 충돌'로 봤다. 과거 유라시아를 호령했던 몽골과 고립되고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온 일본의 문화 차이, 유목 민족 대 농경 민족 간의 가치관 차이가 ‘스모’라는 지점에서 충돌했다는 것이다. 또 ‘힘과 승리가 전부’인 몽골식 신조와 그것이 전부가 아닌 일본 정신 간의 갈등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이런 차이를 배경으로 몽골 출신들의 독주에 잔뜩 기가 죽어 있던 일본 스모팬들의 자존심과 설움이 폭행사건을 계기로 일본 사회 특유의 고립ㆍ배제주의적 양상으로 폭발한 셈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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