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록바'의 꿈은 계속된다.."히딩크 같은 명장 되고파"

조진형 2018. 1. 2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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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만난 신영록 선수가 포즈를 취했다. 우상조 기자
7년 전 24세의 나이로 그라운드를 떠난 비운의 축구선수가 있다. 저돌적인 돌파와 강력한 슈팅을 무기로 그라운드를 누볐던 신영록(31) 선수다. 한국 축구팬들로부터 ‘영록바(신영록과 ‘아프리카 축구영웅’ 드록바의 합성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2003년 데뷔해, 청소년·성인 축구 국가대표를 지냈고, 터키·러시아 등 해외서도 맹활약했던 그는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이던 지난 2011년 대구FC와 경기 중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52일만에 기적적으로 일어나 재활 운동을 이어갔지만 끝내 그라운드에 복귀하진 못했다.

중앙일보는 최근 재활 치료에 한창인 신 선수를 만났다. 그는 신촌 연세세브란스병원에서 매주 2회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매주 월요일엔 인지·물리치료, 목요일엔 수(手)치료를 받는다.

인터뷰에는 신 선수 아버지인 신덕현씨, 어머니 전은수씨도 함께 했다. 원활한 답변이 어려운 신 선수를 거들기 위해서다. 실제로 그는 이날 약 2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몇몇 질문에 한참을 뜸들여 했고, 기억을 떠올리기 버거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씨와 전씨가 “잘 기억해봐, 영록아” “그때 이렇게 말했잖아”라며 기억을 유도하자 조금씩 말문이 트였다. 다음은 인터뷰 문답.

아버지 신덕현씨와 대화를 나누는 신영록 선수. 우상조 기자
-재활 활동은 어떤가. “일상 생활에 무리가 없을 만큼 나아졌다. 그런데 치료에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이 들었다. 이근호 선수가 모금액을 전달해줬지만 치료비가 금세 바닥났다. 일반인처럼 민간 보험을 들지 않은 탓에 회당 수백~수천만 원 상당의 치료비를 고스란히 지불해야 한다. 그마저 대기자가 몰려 몇 개월씩 기다릴 때도 있다.”

-평소 일상은. “매일 집에서 30분~1시간 가량 사이클을 타는 식으로 가볍게 몸을 푼다. 조카들과 만나면 운동장에서 슈팅도 가르쳐준다. 지난해 말엔 가족과 강원 속초에 바람을 쐬러 다녀왔고, 최근엔 아버지와 영화 ‘신과 함께’를 관람했다.”

-기억에 남는 영화 장면은. “극중에서 주인공인 소방관 김자홍(차태현 역)이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병상에서 오래 힘든 시간을 보낸 나로서는 꽤 공감이 가는 장면이었다.”

-2011년 쓰러졌던 일을 기억하나. 50여일 간 의식을 잃었다.(※이 질문은 어머니 전씨가 답변을 대신했다.) “의식을 회복한 영록이의 첫 마디는 ‘엄마, 아빠’였다. 그런데 영록이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한줄 전혀 기억하지 못 하더라. 의사 말로는 ‘심부전 후유증에 따른 뇌병변으로 인해 단기 기억상실증이 걸렸다’고 한다. 의식을 회복했을 때만 해도 1~2년이면 재기할줄 알았다. 이렇게 오래 갈줄 몰랐다.”

지난 2011년 당시 신영록 선수의 투병일지.
-선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난 2004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8강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오버헤드킥으로 골을 넣었다. 관중이 일제히 내 이름을 열창했는데, 그때의 뜨거운 열기가 아직도 느껴진다. 터키 부르사스포르 활동도 기억난다. 터키 선수들은 ‘형제 국가’(한국)에서 왔다며 나를 따뜻하게 대해줬다. 팀 공격수로 많은 골을 기록하며 리그 우승을 견인했는데,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현지인들이 ‘신(신 선수의 성)’이라고 부르며 나를 따라다녔다.(웃음)”
신영록 선수의 싸인. 이름 아래 써 있는 'no.18'은 옛 등번호를 뜻한다.
신 선수는 축구 국가대표(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신이다. 올해 러시아월드컵을 약 5개월 앞둔 만큼 그의 생각과 감회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올해 러시아월드컵에서 독일·멕시코·스웨덴 등 축구 강국과 한 조가 됐다. “한국팀의 잇따른 평가전을 관전하면서 유독 수비가 약하단 생각이 들었다. 수비를 많이 보강했으면 좋겠다. 독일 등 전통 강호를 상대하기 쉽지 않겠지만 좋은 조별 성적을 거두고 16강에 진출했으면 좋겠다.”

-본인이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었다면. “토트넘 홋스퍼 소속의 손흥민 선수와 투톱으로 뛰지 않았을까.(웃음) 손 선수는 골을 잘 넣고, 나는 위치 선점을 잘 하니 서로 잘 맞았을 거다. 나보다 한살 어린 기성룡 선수(스완지시티)가 대표팀의 연장자 축에 속하더라. 내가 출전했더라면 마지막 월드컵이었을 수 있겠다.”

지난 2015년 아버지 신덕현씨의 도움으로 시축하고 있는 신영록 선수. [중앙포토]
-앞으로의 계획은. “차범근 감독께서 오는 5월부터 본인이 운영하는 차범근축구교실 이사직을 내게 제안해주셨다. 선수 생활 재개가 어려운 나를 배려주신 거다. 장기적으로는 축구 감독이 되길 바란다. 거스 히딩크 감독 같은 명장이 되고 싶다. (왜 히딩크인가.) 카리스마로 팀을 이끌어 ‘사상 첫 4강 신화’를 쓰지 않았나. 나 역시 그런 카리스마를 갖추고 싶다.(웃음)”

-끝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한때 큰 사랑을 받은 축구선수로 가장 두려운 것은 대중에 잊혀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나를 먼저 알아봐주셨고, ‘신영록 화이팅’이라고 외쳐주셨다. 나를 기억하는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겠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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