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교차로, 영국서 처음 도입 미국,호주 등 확산 교통섬 중심으로 돌고 회전차량에 통행 우선권 파리 개선문 회전교차로는 아슬아슬 곡예운전 영국엔 크고 작은 교차로 뒤섞인 '매직교차로' 국내선 2010년대부터 곳곳 설치..730곳 달해 설치 뒤 교통사고 58%, 사상자수 67% 감소 위치 잘못 선정하면 교통정체만 가중되기도 회전교차로 효과에는 관심과 배려가 큰 근간
요즘 운전을 하다 보면 간혹 '낯선' 교차로를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앙에 둥그런 교통섬이 있고, 차량이 별다른 신호 없이 이 섬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목적하는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방식인데요.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에만 익숙한 운전자로서는 다소 헛갈리기도 합니다.
이곳이 바로 '회전교차로'입니다. 로터리(Rotary)와는 구분되는 개념으로 영어로는 'Roundabout'이라고 표기하는데요. 회전교차로는 1920년대 영국에서 그 개념이 생겼고, 이후 60~70년대 본격 도입됐다는 게 정설입니다. 이처럼 역사가 오래돼서인지 영국에는 '매직 교차로'로 불리는 아주 특이한 회전교차로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현재 회전교차로는 유럽은 물론 미국, 일본, 호주 등 많은 나라에서 활용되고 있는데요.미국에서 개발된 기존의 로터리가 교차로 진입 차량에 통행 우선권을 주는 반면 회전교차로는 회전 중인 차량에 우선권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국내에서는 2010년대 들어서 이면도로를 중심으로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엔 730곳에 설치가 됐는데요. 경기도가 113곳으로 가장 많고, 제주가 94곳으로 두 번째입니다. 반면 서울은 38곳에 설치됐고 대전이 4곳으로 가장 적습니다.
회전교차로는 신호등이 없어 전기요금 등 유지비가 적다는 게 장점입니다. 또 불필요한 신호대기가 없기 때문에 차량 흐름이 원활해지고, 같은 시간에 다른 교차로에 비해 더 많은 교통량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차량 공회전이 감소해 에너지 절약과 대기질 개선효과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하지만 교통량이 많은 곳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자칫 이런 곳에 설치했다가는 교통흐름만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내에선 소형교차로의 경우 1일 전체 통과 교통량이 1만 2000대 미만, 규모가 큰 2차로형은 3만 2000대 미만인 지역에 설치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는데요.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둘러싼 회전교차로가 대표적입니다. 이곳은 수많은 차들이 뒤엉키면서 눈치껏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아슬아슬하기까지 합니다.
회전교차로의 통행 원칙은 간단합니다. 진입 전에 먼저 회전 중인 차량이 있는지 확인한 뒤 들어갑니다. 인근에 회전 중인 차량이 있으면 그 차량에 양보해야 합니다. 또 시계 반대방향으로만 돌아야 합니다. 물론 영국, 일본 등은 반대로 시계방향입니다.
이처럼 신호등도 없이 단순한 원칙이다 보니 일부에서는 다른 교차로보다 사고 위험이 크지 않느냐고 우려하기도 하는데요. 그러나 실제 운영 사례를 살펴보면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국민안전처와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에 설치 완료한 회전교차로 54개소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교통사고는 설치 전인 2013년에 비해 설치 후인 2015년에 58%나 줄었습니다. 또 사상자 수도 설치 전·후를 비교했을 때 67%나 감소해 그 효과가 뚜렷했는데요.
그 이유를 구조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회전교차로는 일반교차로에 비해 자동차 간 상충 횟수가 현저하게 적습니다. 일반교차로는 흐름 상 자동차가 서로 엇갈리는 상충횟수가 32개이지만 회전교차로는 8개에 불과해 그만큼 사고 위험이 줄어든다는 설명입니다. 보행자와 차량의 상충횟수 역시 회전교차로가 훨씬 적습니다.
또 회전교차로는 진입 시 주변을 살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속도가 줄어듭니다. 그리고 한쪽 방향으로만 회전하기 때문에 정면이나 측면 충돌사고가 일어날 가능성 역시 크게 감소한다고 하네요. 외국에선 그 효과가 우리보다 훨씬 앞서서 입증이 됐는데요. 역시 회전교차로 설치 이후 사고가 20~80% 가까이 감소했다는 보고입니다.
물론 회전교차로가 만능은 아닙니다. 설치 위치 등을 잘못 선택할 경우 불편만 가중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울산의 경우 남구 남울산우체국 앞 회전교차로가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불만을 사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집니다. 이런 경우에는 신호등 설치 등 다른 대안을 찾는 게 필요하겠죠.
사실 회전교차로가 효과를 보이는 데는 앞서 소개한 기능적인 측면 외에 관심과 배려라는 두 가지 원칙이 근간에 깔려있습니다. 회전교차로에서는 좋든 싫든 다른 차량의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이고 때론 양보라는 배려도 해야 합니다. 만약 이 근간을 잊어버리고 운전자들이 서로 먼저 가려고 다투다가는 난장판이 되고 말 텐데요.
비단 회전교차로만이 아니라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새해에는 서로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배려했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강갑생 기자 kks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