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연구팀, 고려 서북쪽 국경선 새학설 제기 중국 요녕성 요하지역이라는 학술연구 결과 나와

인천=정창교 기자 2017. 11. 1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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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서북쪽 국경선이 중국 요녕성의 요하지역이라는 학술연구서가 고조선연구소(소장 김연성) 연구 총서가 ‘압록(鴨淥)과 고려의 북계’라는 이름으로 최근 발간됐다.

 이 총서의 내용은 기존의 정설인 압록강과 원산만을 잇는 선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역사지리학계의 최대 논쟁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그동안 한국학계나 동북아시아 학계에서 한국 중세의 고려 국경선은 서로는 현재 압록강(鴨綠江)하구에서 시작하여 동으로는 원산만으로 이어지는 선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런 인식은 조선시대도 약간의 논쟁은 있었지만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일본이 ‘조선사’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쓰다 소우키치의 견해가 반영되면서부터다.

조선총독부 관변학자 쓰다 소우키치가 설정한 고려 국경. 국경이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인하대 제공

그 후 약 100년 가까운 세월동안 변함없이 이 견해는 한국사의 가장 중요한 틀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사는 서술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조선사’ 연구팀은 기존의 견해에 반대를 하면서 조선시대 편찬된 ‘고려사’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여러 기록들을 검증하고 기존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제시했다.

연구팀은 쓰다가 주장한 고려의 북계는 고려를 폄하하기 위해 조작하여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쓰다는 “고려 사람들은 거짓말을 잘한다. 그 중에 대표가 서희이다”라면서 서희가 요나라와 담판을 할 때 “고려가 고려의 후손이고, 이게 원래 고구려의 영토이니 지금도 우리 영토다”라고 주장을 하였는데 이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쓰다는 이 거짓말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려의 북계(북쪽 국경)를 비정하였는데 그것이 오늘날 압록강 하구에서 시작하여 동으로는 원산만으로 비정했다는 것이다. 

즉 쓰다는 고려 사람들이 거짓말쟁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고려 사람들을 깎아 내렸던 것이다.

연구팀은 쓰다의 주장은 일본이 식민사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첫 번째 고려했던 반도사관을 만드는 근거를 만든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이번 연구는 고려시대 토지제도사를 연구한 한국 중세사학회 회원인 고조선연구소 윤한택 연구교수가 주도해 진행됐다.

‘압록(鴨淥)과 고려의 북계’에 실린 논문들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윤한택은 ‘고려 서북 국경에 대하여 – 요·금 시기의 압록(鴨淥)과 압록(鴨綠)을 중심으로’라는 글에서 고려시대 압록강(鴨淥江)인 현재의 요하였고 여기가 고려의 서북계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압록강을 표기할 때 두 개의 압록강이 존재하는데 삼수변의 압록강(鴨淥江)과 실사변의 압록강(鴨綠江)을 구분하지 못하여 고려시대 국경선이 큰 혼란이 왔다는 것이다. 

그는 ‘고려사’, ‘요사’, ‘금사’ 등의 교차 검토를 통해 고려시대 압록강(鴨淥江)을 확인한 결과 현재 중국의 요하가 고려전기의 압록강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고려의 천리장성의 위치를 현재 중국 요녕성 중부지역에 남북으로 평균 60리 거리에서 관방형태로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이인철 교수는 ‘고려 윤관이 개척한 동북9성의 위치 연구’에서 기존 주장을 검토하고, 문헌기록을 꼼꼼히 검토하고 현지답사를 통해 윤관의 동북9성의 위치는 현재 두만강 이북에 위치했음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윤관 9성의 거점이었던 공험진은 조선초기에도 명과의 국경선이었다는 것을 기록으로 확인하였다. 그는 앞으로 더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하여 동북9성이 두만강 이북 700리에 실재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남주성 교수는 ‘서희 개척 8주의 위치에 대한 재고찰’에서 기존 학계의 통설인 ‘강동 6주’를 군사 이동 상황과 평안도 지명과 지리를 비교하여 서로 부합되지 않음을 제시하고, 오히려 이들 지명은 요녕성 요하 상류의 남쪽 개원시 일대와 요양시 이북 일대의 지명과 상당 부분 부합돼 그 위치를 이곳으로 추정할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박시현 교수는 ‘고려도경’, ‘허항종행정록’, ‘금사’에 기록된 고려의 서북계에 대한 시론에서 이 세 편의 당대 글을 참고로 하여 고려 서북계를 비정해 본 결과 고려의 서변은 현재 중국 요하 유역이었음을 확인하고, 북계는 현재 중국 흑룡강성 동남지역이나 현재 길림성 서북부 지역까지 이른 것으로 추측하였다.

복기대 교수는 과거에 발표한 ‘중국학계의 거란 東쪽 국경인식에 對하여’라는 논문을 일부 수정을 하여 실으면서 ‘요사’, ‘고려사’ 등의 문헌자료와 송나라의 지도인 ‘추리도’, 고고학 자료에 근거하여 거란의 동쪽 국경을 오늘날 중국 요녕성 중동부 지역이었다는 주장을 다시 한 번 제기했다.

윤은숙 교수는 ‘13~14세기 고려(高麗)의 요동(遼東) 인식 – 요(遼)·심(瀋) 지역을 중심으로’에서 홍복원의 고려군민만호라는 벼슬을 제수 받은 점, 충선왕이 원나라의 심양로를 분봉지로 받은 것을 비롯하여 요동 일대로 옮겨간 고려인에 대한 끊임없는 추쇄 요청, 그리고 1370년의 요동 정벌 등은 이 지역이 한반도 역사주체들의 역대 거주지이며 고려의 주권이 미치는 지역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고 파악했다.

마지막으로 남의현 교수는 ‘명대 한·중 국경선은 어디였는가’에서 명의 만주에서의 영향력은 요동도사 지역에 한정되었고, 흑룡강· 백두산·두만강 등의 지역을 그들의 판도로 만들 수 없어 그 힘이 미치지 않는 ‘版圖外’의 지역일 수밖에 없었다고 파악했다. 

따라서 명대 한국과 중국의 국경선은 기존의 압록강 대신 요양과 압록강 사이의 동팔참 지역에서 찾아야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번 연구논문들은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낸 결론이 아니라 각자가 별도의 지역에서 연구한 결과들인데, 고려의 북계는 지금까지 인식되고 있는 압록강 하구에서 원산만이 아니라는 주장은 동일하게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려사>> <지리지>에 실려 있는 기록대로 북으로는 두만강 넘어 선춘령이 맞고, 서로는 고구려 땅을 모두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그 중간 지역으로 추정되는 현재 중국의 요하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획기적인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이 연구는 더 세밀한 연구를 해야지만 인하대 고조선연구소의 조선총독부 ‘조선사’ 정밀해제 팀의 연구 성과가 더 진전이 된다면 서희의 강동 6주, 강감찬의 귀주대첩을 비롯한 한국의 역사지리는 빅뱅을 가져 올 수밖에 없게 되고 이에 따라 전체 한국사도 흔들리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연구를 주도한 윤한택 교수는 “이 새로운 주장들은 분명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학계에서 많은 논란이 일어날 것”이라며 “그렇지만 많은 학자들이 참여해 새로운 연구 성과들을 낸 만큼 연구자 입장에서 검증과 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복기대 교수는 “쓰다의 서희에 대한 생각을 시작으로 일본학자들이 한국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철저히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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