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혁신'에 대한 세 가지 오해
최근 혁신성장에 관한 논의를 보면 혁신에 관한 몇 가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혁신은 특별히 '현란한'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기술적 혁신 그 자체가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거나 그 사회의 생산성 증가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환경 친화적이라는 이유로 미래 자동차 모델로 꼽히는 전기차는 1884년 영국의 발명가 토마스 파커의 작품이다. 전기차의 성능은 20세기 초반에 가솔린이나 증기자동차를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2차산업혁명의 주력인 자동차 혁명의 주인공은 영국의 전기차가 아닌 미국의 가솔린 자동차였다. 가솔린 자동차 또한 독일 사람 카를 벤츠의 1879년 작품이다. 하지만 자동차를 대중화시켜 미국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만든 것은 헨리 포드였다. 그는 생산라인에 컨베이어벨트를 도입하고, 공장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단축시켰으며(일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최저임금을 획기적으로 인상(하루 2.35달러에서 5달러로)했다. 생산방식을 변화시켜 자동차 가격을 하락시켰으며 근로조건 개선을 통해 근로자(소비자)의 생산성과 구매력을 끌어 올렸던 것이다. 이를 통해 자동차는 미국 전역의 가정으로 퍼져갈 수 있었으며, 도시와 도시가 고속도로로 연결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라는 추가적 발명을 이끌었다. 교외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됐고, 교외에 대형 양판점이 들어서면서 유통산업이 발전하는 등 전 사회적인 생산성의 증가를 유도했다.
획기적인 기술개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산을 둘러싼 근로방식의 변화와 임금 상승을 포함한 근로조건과 구매력의 변화가 오히려 더욱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혁신과 관련해 흔히 접하는 두번째 오해는 4차산업혁명이 과거 3차례 산업혁명처럼 우리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미 노스웨스턴 대학의 로버트 고든 교수와 같은 기술비관론자들은 4차산업혁명의 핵심영역으로 꼽히는 의학과 약학의 진보, 소형 로봇과 3D 프린팅의 발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발전, 그리고 무인자동자 등이 기대만큼의 생산성 증가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의학 및 약학을 보면 이미 1940~80년 사이 항생제, 천연두 백신, 관상심장질환(심근경생증과 협심증, 부정맥, 심부전증 등) 치료법, 암 치료의 기본 장비 등 현대 의학의 근간을 이루는 기기들이 개발되었다. 새로운 약제가 개발되어도 현재의 의료보험 체제로는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소형 로봇은 사람을 대체하기 보다는 사람과 함께 작업할 것으로 보이고 이점에서 다수의 직업이 로봇으로 대체되는 전면적인 노동 양식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3D 프린팅은 창업과 시제품 개발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대량생산이나 소비재생산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렵고, 빅데이터는 마케팅 분야에 한정되어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폰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총요소생산성의 증가율은 하락하고 있다.
무인자동차가 개발되어도 출퇴근이나 쇼핑을 위해 자동차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화물자동차 운전사들은 물건을 손수레에 실어 상점 선반에 일일이 손으로 올려놓아야 하기 때문에 무인 화물차로 인해 절약되는 노동은 없을 것이다. 또한 구글 자동차는 수신호로 교통을 정리하는 건널목에서 기능하기 어렵고 다차선 고속도로에서 언제 차선변경을 할지 판단하지 못하며, 악천후나 복잡한 교통환경에서 그 복잡성을 처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혁신에 관한 세번째 오해는 R&D 투자 만능론이다. 특히 새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사람들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이름의 분배정책을 펴지 말고, 그 예산으로 대대적인 기업지원 프로젝트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IMF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R&D 투자비중은 지난 2003년에 미국을 넘어섰고, 2009년 전후 일본을 넘어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총요소생산성은 미국의 60%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다. 혁신성장을 위한 예산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전에, 과연 R&D 예산이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는지, 엄청난 R&D 투자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증가가 정체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되돌아 보는 일이 우선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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