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박친 브랜드..'도깨비' 저승사자 옷 만든 그사람
드라마 '도깨비' 저승사자 옷 만든 그 사람
이탈리아·영국 등 해외 편집숍 50여 곳 입점
유니버셜스튜디오과 협업하기도
한국선 출혈 경쟁과 MD의 매출 압박에 염증
'내 옷 좋아하는 시장' 찾아 해외에 집중
'하고 후회하자' 모토로 바닥부터 다시 시작
━ 한국엔 매장 0 유럽에 50곳…'어둠의 디자이너' 유럽 성공기


![2017년 6월 런던패션위크에서 선보인 디그낙 컬렉션. [사진 디그낙]](https://t1.daumcdn.net/news/201710/24/joongang/20171024114716446iwin.gif)
Q : 국내에서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이유는 뭔가. A : 내 활동 기반은 해외, 정확하게는 유럽이다. 친한 정구호 디자이너가 2015년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이 되면서 한국에서 컬렉션을 다시 했지만, 여전히 비즈니스 주무대는 유럽이다. 국내 온라인몰에서 옷을 파는 건 팬 보답 차원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팬을 자처하며 소셜미디어(SNS)나 이메일을 통해 '한국에서도 판매해달라'는 의견을 보내왔다. 마침 서울패션위크에 서게 되면서 국내용 브랜드를 만들었다.
Q : 유럽을 기반으로 하는 이유는. A : 그 사람들이 내 옷을 좋아한다. 그게 전부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저승사자 역의 이동욱이 입고 나온 디 by 디그낙의 스웨트셔츠. [사진 방송 캡처]](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710/24/joongang/20171024114717021lirc.jpg)
Q : 2008년 서울컬렉션 데뷔 후 인기를 얻어 국내에도 꽤 많은 매장이 있었는데 굳이 활동을 접은 이유는. A : 이름만 알려졌지 사실 굉장히 힘들었다. 내 브랜드를 만든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옷’을 만들기위해서다. 그런데 백화점에 단독 매장이 생기고 여러 편집매장과 온라인몰에 입점하다보니 ‘팔아야 하는 옷’을 만들어야 하더라. 난 그 옷들이 마음에 안 들었고 판매도 생각만큼 안 됐다.
Q : 하고 싶은 옷과 팔아야 하는 옷 사이의 갈등은 모든 브랜드의 고민 아닌가. A : 그렇긴하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목적이 분명했다. ‘내가 좋아하는 옷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남들 눈엔 좋은 기회였을지 몰라도 그걸 못하니 즐겁지가 않았다. 디자이너간 제 살 깎아먹기 경쟁에다 백화점 MD의 매출 압박을 받다보니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라는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됐다.

![2010 봄여름 디그낙 컬렉션 쇼 현장. 비오는 거리를 연출하기 위해 바닥에 물을 채운 런웨이 무대를 선보였다. [사진 디그낙]](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710/24/joongang/20171024114717354iceg.jpg)
Q : 해외에서는 그야말로 바닥부터 시작한 셈인데 두렵진 않았나. A : 내 삶의 모토가 ‘하고 후회하자’다. 무엇을 하든 후회는 남는다. 걱정하고 못하고 후회하느니 차라리 도전해보자란 생각이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두렵지 않다. 오히려 일을 한창 진행 중일 때 두려움이 오더라. 이 방향이 맞는 건지, 잘 하고 있는 건지.
Q : 인지도나 도움없이 해외에 진출했으니 많이 어려웠겠다. A : 말도 못한다. 지금은 젊은 디자이너들도 해외 시장을 주 무대로 많이들 활동하지만 내가 해외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때만해도 상황이 달랐다. 모든 것을 해외 매출에만 거는 디자이너는 없었다. ‘맨 땅에 해딩’이란 말이 딱 맞을 정도로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실패를 경험한 뒤에야 하나씩 방법을 알아갔다. 첫 해외 페어(수주박람회)는 여성복 페어였다. 프랑스 파리의 ‘후즈 넥스트’였는데 전시장에 가서 옷을 다 걸고 보니 내 옷만 남성복이더라. 스태프가 와서 ‘왜 여성복 페어에 왔냐’더라. 누가 알았나. 그가 ‘미국에서 하는 남성복 페어인 캡슐쇼에 나가는 게 좋겠다’고 알려줬다.
![강동준 실장이 스스로 '내가 원하는 옷이 나왔다'고 평하는 2012년 FW 컬렉션. '찰리채플린'을 주제로 한 남성복을 선보였다. [사진 디그낙]](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1710/24/joongang/20171024114717574kjbh.jpg)
Q : 이후 어떻게 해외 시장에 안착했나. A : 페어를 통해서다. 오더를 하나도 못 받은 때도 있었지만 쇼룸 디렉터나 해외 컬렉션 관계자 눈에 드는 기회가 됐다. 런던패션위크 오프쇼(메인행사장 외의 장소에서 진행하는 쇼) 캐스팅디렉터의 제안으로 2010년 런던패션위크 오프쇼도 열였다. 그때 이탈리아 쇼룸 '아비스타'에 들어간 후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었다. 몇년 후 영국 투모로우 쇼룸으로 옮겼다.
Q : 한국 시장으로 돌아올 생각은 안 해봤나. A : 해외에서 패션 비즈니스를 하는 게 좋다. 한국에선 만들고 싶은 옷을 만들지 못했다. 내 생애 첫 컬렉션이었던 2008 서울컬렉션 때 관계자들로부터 ‘블랙 일색이라며 쇼에 서려면 컬러를 넣으라’는 주문을 받고 고민하다 컬러풀한 가방, 머플러 등 액세사리를 만들어 함께 내보냈다. 지금도 그 컬렉션은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마음에 안 든다. 이후에도 그런 상황은 반복됐다. 반면 해외 시장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옷만 만들 수 있다.
Q : 해외에서 그게 가능한 이유가 뭘까, A : 시장의 차이다. 내 옷을 좋아하는 시장이라는 얘기다. 당시 한국은 그런 시장이 아니었던거고. 게다가 유럽은 한국처럼 생산해놓고 나서 파는 방식이 아니라 샘플만 만들어서 주문을 받은 후에 그 양만큼만 생산에 들어가는 '오더 베이스' 방식 아닌가. 큰 사업비 없이도 브랜드를 전개할 수 있어 부담이 없었다. 내 옷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옷을 만드니 점점 신이 나서 옷도 잘 나왔다. 해외 바이어나 매체도 좋은 평가를 해줬다. 투모로우 쇼룸이 왜 나를 캐스팅했는가 봤더니 '독특한 남성복 브랜드'라고 하더라. =
Q : 한국을 떠난 2010년과 2017년의 한국 패션 시장은 어떻게 달라졌나. A : 소비자의 취향이 다양해졌다. 2010년만해도 뭐가 유행이다 싶으면 다들 그것만 입었다. 주류가 아닌 디자인은 아예 팔리지 않았다. '다크웨어'를 표방하는 내 옷은 당시 니즈가 거의 없었다. 지금도 물론 주류는 아니지만 우리만의 색을 좋아하고 찾는 소비자가 꽤 많이 생겼다.
Q : 앞으로의 계획은. A : 국내 비즈니스를 조금씩 확장할 생각이다. 우선 본사 건물 2층에 쇼룸을 갖춰 한국 고객이 직접 디그낙 옷을 볼 수 있게 할 거다. 쇼룸을 통해 반응을 살핀 후 한국 시장에서도 내 옷에 대한 니즈를 확인하면 그때 매장 등을 낼 수도 있다.
Q : 해외 진출을 꿈꾸는 디자이너들에게 조언해준다면. A : 해외 페어나 전시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특히 최근엔 정부가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이를 활용하면 좋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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