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내 안의 몬스터
이영희 2017. 9. 18. 02:25

열두 살 소년 코너(루이스 맥두걸)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다. 땅이 흔들려 집이 무너지고, 사랑하는 엄마가 구덩이로 떨어지는 꿈이다. 코너는 엄마를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꿈속 마주 잡은 손은 자꾸 미끄러진다. 현실 속의 엄마(펠리시티 존스)는 낫기 힘든 병에 걸렸고, 아빠는 곁을 떠난 지 오래다. 엄격한 할머니(시고니 위버)와 다투고, 학교에선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지옥 같은 일상. 어느 밤, 집 앞 언덕 위 나무가 몸을 비틀더니 거대한 ‘나무 괴물’이 코너의 앞에 나타난다.

얼마 전 한 모임에 다녀와 침울해진 적이 있다. 그날 대화 주제가 된 누군가에 대해 과할 정도로 험담을 늘어놓던 내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였다. 다른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악착같이 찾아내 걸렸다 싶으면 잔혹하게 두드려 패기를 반복하는 사람들. 나무 괴물은 말한다. 진짜 나를 파괴하는 것이 무엇인지 끈질기게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피하고 싶던 내 안의 몬스터와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거라고.
이영희 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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