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반대 교수 417명 '핵 전문가'인가 '핵 마피아'인가

2017. 7. 1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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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보수 언론들 ‘핵 전문가’로 발표… 환경단체는 ‘핵 마피아’로 규정

7월 5일,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비롯한 10명의 교수들이 국회 정론관에 모였다. 이들은 “대통령의 선언 하나로 탈원전 계획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제왕적 조치”라면서 “전문가들의 의견도 경청하라”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교수들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원전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며, 원자력발전은 폐기물 등 사후 처리비용을 감안하더라도 LNG나 신재생에너지 등보다 훨씬 경제적인 발전이라고 말했다. 교수들은 자신들의 선언에 동참한 교수들이 60개 대학 소속 417명이라고 밝혔다.

7월 5일의 성명서는 2차 성명서였다. 6월 1일에도 서울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전국 23개 대학의 교수 230명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비슷한 취지의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참여 숫자만 보면 한 달 사이에 교수사회에 큰 변화가 온 것만 같다.

두 차례의 성명 발표가 있자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전문가 417명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취지의 사설과 칼럼이 실리기 시작했다. 성명에 동참한 교수들이 전부 원자력 전공 교수인 것처럼 제목을 단 언론사도 있었다. 반면 녹색당이나 환경단체들은 417명 교수들을 ‘찬핵 교수’, ‘핵 마피아’로 규정했다.

원자력 관련 교수는 100여 명 정도

두 차례의 성명을 주도한 것은 서울대, 카이스트 등 ‘메이저’로 꼽히는 대학의 원자력공학과들이다. 사실 성명에 참여한 모든 이가 ‘원자력 전문가’라 보긴 어렵다. 환경운동연합에 의하면 1차 성명서에 서명한 230명의 교수 중 원자력 전공 교수는 103명으로 전체의 4분의 1 정도다. 2차 성명서에는 이보다 조금 늘어난 108명이 이름을 올렸다. 자원, 에너지, 방사선 등 원자력과 약간이라도 관련성이 있는 분야의 전공 교수를 합쳐도 162명으로 전체 참여 교수의 38%다.

물론 원자력 전공 교수가 아니라고 해서 원자력 문외한은 아니다. 성명에 참여한 대부분의 교수들은 원자력 이외의 전공을 담당하고 있는 공대, 이과대, 의대 교수들이다. 부산대 기계공학과의 경우 무소속 윤종오 의원실 발표에 의하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미래창조과학부의 원자력 연구 개발사업에 가장 많이 참가한 곳이기도 하다. 다만 지능형 로봇, 광학, 생물약제학 등 원자력공학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분야 교수들도 상당수 이름을 올렸다. 법학, 디자인, 음악교육 등 공학 이외 분야 교수들도 10명이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성명서를 주도한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417명 중에 원자력과 관련된 분은 100여분이고, 다른 분들은 원자력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건 맞다. 이렇게 이름이 알려지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이미 의원실과 환경운동연합에서 성명서에 참여한 교수들이 어떤 연구용역을 받고 있는지 조사하고 있지 않나.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다른 전공 교수들이 동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원자력공학 교수들 중에도 성명서에 동의하지 않은 이도 있었다. 전문가가 할 일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토론을 하는 것이지, 정책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게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성명에 참여하지 않은 원자력공학 전공 ㄱ교수는 “저도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고 신규원전 건설 중지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이번 성명서는 너무 흑백논리로 나갔다”고 말했다. ㄱ교수는 “탈원전에 대해 원자력학계는 대체적으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진지하게 토론을 해보자는 식으로 나갔다면 모를까, 우리는 맞고 정부는 틀렸다는 식으로 해서는 대화가 안 된다.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교수들 중에도 저와 생각이 비슷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말을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원자력공학 전공 ㄴ교수는 “학자들이 대통령에게 ‘제왕적’이라는 정치적 수사를 사용하는 것부터 온당한지 의문”이라며 “연구 성과로 근거를 쌓고 설득하는 게 학자의 자세이지, 자신들의 뜻과 다르다고 반대만 하는 게 전문가로서 온당한 자세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기득권인 자기 먹거리 지키려는 것 같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이들이 과연 ‘전문가’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봤다. 그는 “원자력 전공 교수는 아니지만 원자력공학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417명 교수들은 공학분야의 전문가들이지 정책 전문가들이 아니다. 성명서에서 이들이 다룬 전기료, 전기수급 문제, 에너지 전환비용 등에 있어서만큼 이들은 ‘전문가’가 아니다”라며 “그동안 밀실에서 관료와 전문가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일들이 반복됐다. 이제 전문가들이 정확한 정보와 자료를 제시하고, 이것을 토대로 투명한 토론과 합의를 통해 정책이 결정돼야 한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자신들이 앞서서 정책을 결정하려는 식으로 가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편, ㄱ교수는 “성명서에 참여한 교수들이 말하는 것을 보니, 기득권인 자기 먹거리를 지키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분석은 이렇다. 오랫동안 특정 인맥을 중심로 구축해놓은 원자력 생태계가 있는데, 탈원전 방침으로 이 생태계가 무너질 것을 걱정해 격렬한 반발이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양이 처장은 “여러 규제기관과 학계, 산업계가 학교 선후배 사이로 얽혀 있다. 그 핵심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이기 때문에 예전부터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왔다”며 “다해봐야 200명 남짓한 집단이 대학교수, 정부 위원회 등 여러 자리에 이해관계와 인맥으로 얽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의 인맥은 어느 정도일까. 성명서를 주도한 주한규 교수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80학번이다. 주 교수의 학과 2년 후배인 나만균 조선대 교수도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나 교수의 학부 시절 지도교수인 박군철 교수도 아직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역시 성명서에 동참했다.

나 교수는 학부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지도교수는 지금도 카이스트에 재직 중인 노희천 교수다. 현재 나 교수와 노 교수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다. 같은 원안위 전문위원인 노태완 홍익대 교수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78학번이다. 노희천, 노태완 교수도 417명 교수 명단에 이름이 들어 있다.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들은 다른 학교의 원자력 전공 교수들과 달리 대부분 성명서에 참여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성명에 참여한 문주현 동국대 교수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86학번으로 현재 한국원자력안전재단 비상임이사로 재직 중이다.

한편, 각종 원자력 관련한 공공기관 이사진에도 원자력공학 학자들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서울대의 황용석 교수는 원자력문화재단 비상임이사, 최희동 교수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이사회 의장(비상임이사)이다. 한양대의 김찬형·김종경 교수는 각각 한국원자력의학원, 한국전력원자력대학원대학교 비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이들 역시 417명의 성명서에 참여했다.

“한수원 돈 지원받아 원전 홍보활동”

한양대 교수들은 서울대가 아니라 한양대에서 학부를 마친 경우가 꽤 있다. 하지만 서울대와의 접점도 있다. 일례로 김성중 한양대 교수의 경우,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94학번이지만 석사학위는 서울대에서 서균열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이 두 사람도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주한규 교수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마피아’란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며 4년 전 한 언론에 기고한 글을 참고하라고 했다. 주 교수의 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출신 전문가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왔던 주된 이유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학부에 원자력과가 있던 대학이 서울대, 한양대 등 4곳에 불과했다는 데 있다. 원자력 종사자들은 원자력 이외에 현실적인 친환경 에너지 대안이 없다는 신념에 근거해 행동한다. 원전 마피아라는 오명으로 원자력 전문가들의 사기와 의욕을 저하시켜서는 안 된다.”

한편, 양이원영 처장은 원자력 학자들의 진의를 의심하고 있다. 특히 그는 교수들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지원을 받아 원전 홍보에 나서고 있는 점을 비판한다. 양이 처장은 “한수원이 지난해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에 20억원을 지원했는데, 주된 내용은 원전 홍보다. 서울대가 한수원의 돈을 받아 원전 홍보활동을 하는 것”이라며 “원전 찬성 교수들이 자신들의 진심을 알아달라고 하지만, 돈을 받으면서 목소리를 내는 데에서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장인 주한규 교수는 원자력 홍보는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전에 대해 일반인들에게 잘못 알려진 것들이 너무 많기에 우리 센터는 여러 가지 오해를 바로 알리는 사업을 할 것”이라며 “예를 들어 지진이 나면 원전에 큰일이 난다는 말이 많지만 원전은 지진을 잘 견딘다.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출연금의 대부분은 연구비라며 “우리 센터의 핵심 사업은 ‘지속가능한 원전’이다. 원전의 안전성을 향상시키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 미래 원자로 기술을 향상시키는 게 우리의 임무”라고 말했다.

홍보보다 더 많은 돈이 뿌려지는 분야는 연구개발비다. 환경운동연합에 의하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22개 대학 94명의 교수(전부 성명서 참여교수)가 미래부 원자력 연구개발비 중 약 978억원을 수령했다. 부산대, 중앙대, 카이스트,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의 원자력학과가 연구비를 많이 받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부 외에도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공공기관은 여럿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등을 통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들의 연구용역 내용을 살펴봤다. 원자력 관련 공공기관이 발주했거나, 과제명에 원자력 관련한 단어가 들어간 것만 추렸다. 성명서에 참여한 서울대 교수 13명은 2013년부터 올해 6월까지 확인된 것만 127건의 연구과제에 참여했다. 1인당 10건 정도 참여한 셈이다. 연구기간은 대개 1년이지만, 연구비는 용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5000만원이 안 되는 사업도 있고, 3억원이 넘는 것도 있다.

발주처는 미래부가 64건, 원자력안전위원회·한수원·국가핵융합연구소 등 원자력 관련 정부기관·공공기관이 48건, 산업통상자원부나 교육부·지자체 등 기타 기관이 15건이었다. 주한규 교수는 “사실 탈원전이 진행되면 연구에 참여할 신입생들이 들어오지 않을 것이 가장 걱정된다”며 “연구 한 건당 한 달 인건비가 8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이것을 가지고 교수들이 연구용역으로 큰 돈을 버는 것처럼 오해하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ㄱ교수는 이마저도 ‘기득권’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명 대학의 교수들은 한수원에서 사업비로 20억원도 지원받고, 연구용역도 매년 꾸준히 따는 것 같은데, 1년에 한 건도 못따는 교수들도 많다”며 원자력 교수들 스스로 탈원전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원자력공학은 여러 공학 분야와 맞물리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탈원전을 걱정만 할 게 아니라, 학자들 스스로 다른 분야로 길을 개척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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