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엽기적인 그녀>, '엽기'도 '그녀'도 없다
[오마이뉴스 글:우동균, 편집:곽우신]
'엽기'라는 말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기이하고 이상하고 다소 정상 범위에서 벗어난 일을 뜻하는 '엽기'는 한때 트렌드로 여겨질 정도로 많이 사용된 단어지만 어느 순간 좀처럼 쓰이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이 엽기 트렌드를 이끌었던 콘텐츠 중에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있었다.
당시 또 다른 트렌드였던 인터넷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기승전결로 이루어진 '내러티브'의 힘보다 주인공 '그녀'의 힘으로 성공을 거머쥐었다. 이야기는 유려한 기승전결의 힘보다는 에피소드 나열로 구성되고, 이 안에서 보이는 것은 캐릭터의 힘이다. '그녀' 역을 맡은 전지현은 발랄하고 엉뚱하며, 다소 과격한 캐릭터로 다양한 매력을 뽐낸다.
또한 이 캐릭터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남자 주인공 '견우' 역의 차태현의 캐릭터가 잘 받쳐준 덕도 크다. 그녀에게 당하면서도 제대로 반격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장면은 유머 코드로 받아들여졌다. 멋있고 잘난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평범한 남자 '견우' 캐릭터는 <엽기적인 그녀>에서 매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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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엽기적인 그녀>의 타이틀 롤, 오연서. 하지만 캐릭터의 매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
| ⓒ SBS |
그리고 결국,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가 제작되었다. 이번에는 장르를 아예 사극으로 바꿨다. 초반부터 <엽기적인 그녀>에는 잡음이 일었다. 주인공 오디션을 진행했으나, 방송사의 반대로 이미 오디션에서 선발된 주인공이 교체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주원과 오연서가 주연을 맡았고, 남은 것은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가 논란을 딛고 얼마나 재미있는 작품으로 기억에 남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뚜껑을 연 <엽기적인 그녀>는 영화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작품이었다. 제목이 왜 굳이 '엽기적인 그녀'여야 했는지조차 모호한 것이다. 일단 타이틀 롤을 맡은 '그녀'에게는 '혜명공주'라는 명확한 이름이 있다. 왈가닥 공주로 설정된 탓에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지만, 그것만으로 왜 '엽기적'인가는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그녀가 '엽기적'일 수 있는 이유는 그녀의 행동이 상식을 벗어날 만큼 엉뚱하면서도 코미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남자 주인공의 아이를 가졌다고 거짓말을 해 남자 주인공을 수업에서 빼내 놀러 가거나 뺨을 때리거나, 교복을 입고 나이트클럽에 놀러 가거나 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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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형적인 여주에 이은 전형적인 남주 '견우'. |
| ⓒ SBS |
캐릭터가 진부해지자 이야기도 진부해진다. 혜명공주는 공주지만 쫓겨난 어머니와 자리를 위협받는 아버지 덕에 바람 잘 날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서 그 자리를 위협하는 악역조차 전형적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주인공을 괴롭히는 존재들이고 위기를 불어넣는 존재지만, 그 이상의 캐릭터로서의 가치를 가지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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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외성이 없는 로맨스, 굳이 제목이 '엽기녀'여야 했을까. |
| ⓒ SBS |
이 드라마의 포인트는 그녀의 '엽기'스러운 여주인공에 있지 않다. 멋진 남자 주인공의 행동에 심장이 뛰는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안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엽기적'이라는 공주는 그동안 다른 드라마에서도 수없이 목격해 온 엉뚱 발랄한 여주인공에서 나아가지 못했고, 능력 있고 멋있는 남자 주인공 역시 전형적이다.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오히려 미스터리한 해결사 춘풍(심형탁 분)이다. 주인공의 캐릭터에 의외성이 없는 것은 물론, 스토리에도 의외성을 찾기 힘들다. 전반적으로 익숙한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의 배경을 과거로 옮기고 장르를 굳이 사극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나아가 결국 '엽기적인 그녀'라는 타이틀을 무리하게 이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그녀'가 보이지 않는 엽기적인 그녀. 히트작의 리바이벌은 비교가 되는 만큼, 위험하다.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 역시 그 위험성을 감수한 만큼의 결과가 보이질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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