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구단 감독 모자' 쓴 김성근 '파란만장 야구인생'

김 감독은 재일교포다. 일본 교토 가쓰라고를 졸업한 뒤 일본 사회인야구팀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고교 시절 재일교포 모국 방문 경기를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가 동아대에 스카우트돼 한국 야구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실업야구 기업은행에서 창단 멤버로 뛰었다.
1969년 은퇴 후 아마 야구 지도자로 활약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두산의 전신인 OB 투수코치를 맡아 한국 프로야구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뒤인 1984년 OB 2대 사령탑으로 취임하면서 프로 감독이라는 험난한 길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수많은 팀을 거쳤다. 1984년부터 5년간 OB 지휘봉을 잡은 뒤 1989~1990년 태평양, 1991~1992년 삼성, 1996~1999년 쌍방울, 2001~2002년 LG, 2007~2011년 SK 감독을 역임했다. 한화까지 포함하면 프로 7개 구단 사령탑에 오른 입지 전적 인물이다. 수많은 전·현직 프로야구 감독들이 프로와 아마를 가리지 않고 김성근 감독 휘하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SK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3년 동안 한국 최초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초대 사령탑을 맡기도 했다. '외인구단'이었던 원더스는 김 감독의 야구 인생에 또 다른 지렛대가 됐다. 원더스의 성과를 조명하는 영화가 제작됐고, 김 감독의 능력도 재평가됐다. 결국 최하위를 전전하던 한화가 김 감독을 다시 프로야구로 이끌었다. 2015년 한화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어렵게 돌아온 한화에서 감독 인생을 통틀어 가장 좋지 않은 성적을 냈다. 매년 외부 FA를 보강하고 거액의 외국인 선수를 영입했지만, 좀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2015년 6위, 2016년 7위에 그쳤다. 올해 역시 김 감독이 물러나기 직전까지 9위에 머물렀다. 결국 23일 한화 유니폼을 벗게 됐다.
공과가 확실한 지도자였다. 한때는 '우승하지 못하는 감독'이라는 불명예 꼬리표가 따라다녔지만, SK 감독 시절 세 차례나 우승하면서 묵은 한을 풀었다. 선수들의 기량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리고, 무너진 팀을 재건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지도자로 인정받았다. 해박한 야구 지식과 승리를 향한 집념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러나 그만큼 늘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옥 훈련'과 '희생' '투수 혹사'로 대변되는 김 감독의 특성이 현대 야구의 흐름과 맞지 않았다. 재임 기간 내내 구단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일도 잦았다. 앞서 감독을 맡았던 팀들과 모두 끝이 좋지 않았고, 한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부임한 박종훈 신임 단장과의 불화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은 삼성 감독 시절이던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LG를 꺾은 뒤 이런 말을 했다. "야구의 신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김 감독에게 붙은 '야신'이라는 별명은 바로 이 말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2015년 김응용 회장에게 한화 지휘봉을 넘겨받은 김성근 감독은 전임 사령탑과 마찬가지로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김 감독의 화려한 복귀는 2년 반 만에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배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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